558호 불자의 눈



병술년 새해엔 냄비근성이라는 자조적인 외투를 벗어버리자. 인생은 자동차가 아니다. 마음대로 부품을 교체할 수 없다. 역사는 영속적이다.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굴러가야 한다.

이우상 교수.
우리 사회에는 전문가가 너무 많다. 아니 전문가인양 착각하는 비전문가가 너무 많다. 문제가 터지면 비전문가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결론을 내린다. 그 결론이 진리처럼 굳어진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입에 도끼를 물고 나온다. 그것을 녹여 무쇠솥을 만들자. 음식을 진득하게 익히는 무쇠솥을 만들자. 무슨 사건이든 한마디 거들겠다는 습관을 버리자. 공부든 수행이든 숙성이 필요하다.

변화와 개혁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에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기성복이다. 만들어진 것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신발에 발을 맞춰야하는 함정이 있다. 개혁만이 지고지선한 가치가 아니다. 느리고 답답하지만 품과 길이가 맞게 지어 입어야 한다.

무쇠솥은 인스턴트식품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인내와 숙성을 기본 재료 삼아 음식을 익히는 도구다. 언론은 세 발짝만 앞서가야 한다. 과욕을 부려 열 발짝 앞서가선 안 된다. 무리하면 자충수를 두게 된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우리 민족은 온돌이라는 걸출한 난방 시설을 발명했다. 천천히 데워지나 은은하게 오래간다. 파르르 끓는 양은 냄비가 우리의 본성이 아니다. 은근과 끈기가 우리의 민족성이다.

그런데 그 품성이 사라지고 있다. 호들갑과 조급증이 득세하고 있다. 진정으로 관심을 지속해야할 일들에는 망각의 탈을 쓰고 번다한 세상사에는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경박한 훈수를 즐긴다.

그냥 내버려두자. 궁벽한 토굴에서 치열하게 수행하는 스님, 밤을 잊고 사는 연구자, 새벽을 여는 상인들,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 이래라 저래야 훈수 그만 두자. 양은 냄비를 버리고 무쇠 가마솥을 가슴에 심어 푹 고아낸 발언만 토해내자. 망둥이는 뛰지 말고 숭어만 뛰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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