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법화사 학술세미나에서 주장



제주 법화사 학술세미나에 앞서 헌다하는 법화사 주지 시몽 스님.
신라 하대 바다를 제패하고, 국제무역을 주도했던 해상왕 장보고(?~846). 중국 산동 적산에 법화원이라는 큰 사찰을 짓는 등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지만 불교와의 관련성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10월 2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해상왕 장보고의 불교 신앙적 고찰’을 주제로 제주 법화사(주지 시몽)와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철)가 공동주최한 ‘제6회 제주 법화사 학술세미나’는 장보고의 해상활동에 가려져 잘 부각되지 않았던 불교신앙과의 관련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법화사는 장보고가 창건한 제주도의 유서 깊은 사찰로, 발굴성과를 토대로 정비가 진행 중인 곳이다.

학술세미나는 김문경 해상왕장보고연구회장의 기조발표 ‘장보고와 불교’로 시작해, 조범환 서강대 박물관 연구교수의 논문 ‘신라 하대 서남주군지역 선종산문의 형성과 장보고 집단’, 조영록 동국대 명예교수의 ‘제주 법화사 삼존동불상의 남경 이치(移置)와 천계사’, 최기표 금강대 교수의 ‘<화엄경>에 나타난 관세음보살’ 발표로 이어졌다.

발표자들은 장보고의 해상세력이 법화원을 중심으로 신봉된 관세음보살신앙에 의해 결속·지지되고, 이를 통해 더욱 강대해진 장보고 선단은 한반도 남부지방 선종발달에 기여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문경 회장은 장보고가 산동 적산촌에 세운 법화원에서 관세음보살 신앙이 성행했던 까닭에 대해 주목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33의 화신으로 곳곳에 나타나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은 항해선원과 무역상인을 중심으로 크게 유포됐다.

김 회장은 “법화원은 관음신앙과 이를 대표하는 <법화경>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 당·일본의 연해안에 산재해 있던 신라인들을 아울렀다”며 “이들의 화합이 장보고 선단 해상활동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세미나 장면.
조범환 교수는 장보고 선단이 선종산문 형성에 미친 영향을 조명했다. 조 교수는 구산선문 가운데 초기에 개창된 선종사찰들이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해 전라도 지역으로 외연을 넓혀갔음을 주목했다.

조 교수는 “실상산문과 쌍계사가 지리산에 위치하게 된 데는 이 지역에 북종선이 퍼져있어 선종 전파가 수월했고, 중앙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후 많은 유학승이 들어오는 길목이었던 회진이라는 항구에 가까운 서남지역에 선종사찰들이 세워지게 되면서 선종이 확산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보고와의 관계에 대해 조 교수는 “이들 선종사찰은 중앙의 진골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사원전과 염전 등 경제기반을 확보하게 되는데, 선종사찰들이 이 같은 경제기반을 도적의 침탈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장보고의 청해진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기표 교수는 <화엄경>을 통해 관음신앙을 면밀히 검토했으며, 조영록 교수는 사료를 근거로 조선조 태종 당시 제주 법화사에 있던 아미타삼존불이 중국 남경으로 옮겨진 경위를 추적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