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한담】혜산스님<내소사 회주>

“보시는 다른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구제하며
자신의 탐욕을 제거합니다”

“믿음 부족해서 중생살림 어려움 연속
믿고 참회하고 실천하면 고통벗어나”


*약력

·1933년 전북 정주생
·58년 서울대 농대졸
·63년 내소사에서 해안스님
은사로 득도
·73년 범어사에서 구족계 수계
·74년 해인사 해인총림 선원장
·75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종정 수석사서
·76년 조계사 주지
·77년 한일불교교류협 이사,
전등선림 선원장
·79년 동명불원 주지
·83~93년 내소사주지


혜산 스님.
지금은 부처님 출가절에서 열반절로 이어지는 참회정진 기간입니다. 새해에 맞이하는 첫 불교명절이라 불자들이 새롭게 각오를 하게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특히 출가는 그 자체로 의미가 큰 일이지만, 그 뜻이 어디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몸뚱이 출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출가는 마음의 출가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출가는 법다이 인연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학창시절, 학습이나 친구들 보다도 누가 존경할만한 선생님이신가 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수업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하나하나 표본으로 삼으려고 그 선생님 가까이에서 맴돌았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학교가 휴교를 했을 때도 방구석에서 ‘인생의 진실이란 무엇인가’하는 등 생각이 무척 많았습니다. 벽에 참 진(眞)자를 써 붙이고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가 몰두했던 것입니다. 대학졸업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직장내에서 “양심의 벗”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나의 ‘인생의 진실’에 대한 답을 찾는 행로는 계속됐습니다.

그후 원고쓸일이 있어서 조용한 곳을 찾던중 친구의 소개로 불갑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친구가 선물한 <우리말 팔만대장경> <불교사전>이 처음으로 읽은 불서가 된 것입니다. 당시 불갑사 주지스님은 훌륭한 강사이셔서 나의 궁금증에 많은 답을 해주셨습니다. 원고 쓰는 일보다도 의문을 푸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자꾸 계속되는 질문에 스님은 “도를 깨달은 분, 즉 선지식이라야 답을 할 수 있으니. 변산에 계시는 해안스님께 물으시오”하시며, 해안스님이 쓰신 <금강경 강의>책을 내주셨습니다. 나는 그 책의 서문을 읽고 반했습니다.

“가장 잘 살고 싶거든 금강경을 읽어라.”


내소사 전경.
이 대목에서는 실로 황홀해졌습니다. 그 즉시 노트를 사서 밤을 새며 그 책 한권을 다 베꼈습니다.


절에서 나와 부산에서 생활하면서 해안스님께 편지를 냈습니다. 여쭈어보고 싶은 질문을 올렸더니 친절하게 답신을 내주셨습니다. 또 다시 의문을 여쭙고 스님은 그때마다 자세히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서신왕래를 3년간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은연중에 이루어진 화두참구였던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의문이 시심마(是心마)로 귀착됐습니다. 시심마를 찾느라 스님께 더 편지를 드릴수가 없었습니다. 6개월여 지나 스님이 주석해 계시는 내소사 밑 지장암에서 하는 특별정진법회에 동참했습니다. 3주일의 과정을 다 마치고 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동안 병을 앓느라고 스님께 편지를 올리지 못했다고 여쭙자, 스님은 “누구나 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너는 병을 앓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제 됐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자리에서 나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스님이 살아 계실 때는 절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공부하는 수행자로 다른 스님이 어떻게 가르치나 궁금하고 호기심도 생겨 돌아 다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훌륭한 스님이라면 그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철에도 만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밖의 소식은 다니러오는 수좌들을 통해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혜산 스님.
그러다가 10년째 되는 해 어산에 능한 원명스님과 첫 만행 길에 올랐습니다. 걸망들고 탁발해 보리암과 오대산 보궁에서 기도하고 정암사로 가니, 은사스님께서 보내신 전보가 도착돼 있었습니다. “빨리 절로 오라”는 말씀에 즉시 돌아가니 스님께서는 “서울 장경호거사가 대중포교도량으로 대원정사를 남산에다 세우고 지도해달라고 하니 내일 당장 같이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서울 생활이 종단 행정일까지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수좌라는 생각에서 떠나 있지 않았습니다. 조계사 주지를 하면서도 하루평균 4시간 밖에 잘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포교 교화 수행을 모두 해내야 하니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고, 마음을 들고 사니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요즘 단기출가니 특별기도정진이니 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재가자들을 위한 단기 특별정진 수행은 은사이신 해안스님께서 이미 30여년전 원력을 세우셔서 널리 펴셨습니다. 지난67년 부처님의 등불을 전해받아 모든이에게 전한다는 취지로 ‘불교전등회’를 결성하셨고, 3주일을 단위로 특별정진법회를 여셨던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드러내놓고 “나같은 못난이도 선지식 밑에서 1주일을 공부해서 알게됐다. 내 체험이니 자신을 가지고 시작해라”하시며 직접 이끄셨던 것입니다.


보통 3주일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첫 1주일은 재가자들이 산란하게 살다가 갑자기 정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문을 들려줍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지’하는 발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1주일은 기도를 하게합니다. 마음을 한곳에 모아 모든 잡념을 제거하는 공부입니다. 일념으로 기도하는 순간은 다른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절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됩니다. 농도가 깊어지면 울기까지도 합니다. 이렇게 깨끗한 본심을 드러내게 하고는 마지막 1주일을 화두참선하게 합니다.


당시 불교전등회를 거쳐 일대사 도리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불자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처럼 은사스님은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수행자들을 지도하신 훌륭한 조실이셨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고 하지만, 특히 부처님 공부는 원래 본인이 하려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내도록 해주는 것은 조실의 역할입니다. 물을 마시는 것은 결국 본인이 할 일이지만 물을 마시도록 우물가로 데려가는 것이 조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수좌들이 방심하지 못하게 살피셨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수좌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 주시 관찰하시고 잠시도 마음을 멍하게 놓고 살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내소사.
나는 이제 세수로 봐도 스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늘 죄송스럽고 참회하게 됩니다. 스님께서 주신 법명이 너무나 예민해서 지금은 스스로 우암(愚岩)이라 법호를 지었습니다.


당초 10년 계획을 세웠던 내소사 복원 불사도 선방을 완성하고 사지작업을 마치면 모두 끝납니다. 설선당(說禪堂)이 원래 선방이어서 그자리에 다시 공부하기 좋은 선방을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소사는 전통깊은 선도량입니다.


지장암에서 출가해 처음으로 백파스님 제사를 모시러 내소사에 갔다가 어찌나 절이 퇴락했던지 대단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때 ‘인연이 주어지면 반드시 내소사를 복원해야지’하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83년 내소사 주지를 맡게 됐고 즉시 10년불사를 계획했던 것입니다. 건강 때문에 기간은 지연됐지만, 마무리를 하고 있고 출가 재가자들이 공부하는 선방으로 자리잡도록 뒷받침할 생각입니다.


불자들은 확실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100년살이 생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무한한 것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일선상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이 찰나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중생의 살림은 이것을 믿지 않으려 하고 부정하려 하는 것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모든 것은 자기 노력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좌절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부처님법을 만난 불자들은 자기 노력에 따라 성불할수 있다는 확실한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은 이미 부처님이 되겠다는 원인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오늘 어려워도 내일을 향한 우리는 희망찹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단박에 견성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습(習)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지는(成) 지혜를 터득하실 것을 권합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동전이라도 보시하는 것부터 실천해보라는 것입니다. 불자들에게 가장 귀에 익은 말이면서도 실천에는 비교적 인색한 편인 것이 보시입니다.


불자들은 대개 보시라고 하면 절에 시주를 한다거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재물을 희사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더러는 보시를 함으로써 그에 상응한 대가가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기대 속에서 하기도 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보시를 행함에 있어서 그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보시를 하더라도 보시를 하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서 공덕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는 그 목적이 원대한 만큼 그 과보 역시 큰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는 연민 때문에 하는 보시, 남을 안락하게 해 주고자 하는 보시, 모든 성인의 도를 실천하기 위해서 하는 보시, 온갖 번뇌를 깨고자 하는 보시, 열반에 들어 생존을 끊고자 하는 보시를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밑바탕에는 모두 이런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불심(佛心)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강도라도 어린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살인강도의 마음속에도 불심, 즉 비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즐겁게 해주고 남의 고통을 없애주는 마음이 합쳐져서 자비심이 됩니다.


자비심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야 자비심이 밖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자비의 신념은 너와 내가 서로 다르지 않은 똑같은 중생, 아니 똑같은 사람이라는 근본적인 인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마음은 이기심에 가득찬 어리석은 사람에게서는 결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배움이 많은 사람이라도 자비심이 없으면 어리석은 사람이요, 일자무식이라도 자비심이 많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비록 무식할지라도 자비심이 많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지 결코 유식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옛 성인들 가운데는 물질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아낌없이 보시함으로서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마침내 도를 이루신 분들이 많았고, 부처님께서도 과거세에 굶주린 짐승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몸을 버린 일도 있으십니다. 이처럼 거룩한 행을 본받아 이를 실천함으로써 자신도 도를 이루겠다는 각오로 하는 보시가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입니다.


보시는 인간을 괴롭게 하는 욕망 번뇌를 없애주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갖고자 하는 마음으로는 아무리 채워도 다 채울 수 없지만, 주는 마음으로는 곧 자신의 마음을 채울 수 있습니다.


참다운 보시는 밖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안으로는 자신의 탐욕을 제거함으로써 부처님과 똑같은 본원성품을 깨닫게 하는 일석이조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요즘 너무 많은 재산을 가진 탓에 직장에서 쫓겨 나고,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아주 좋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그 많은 재산을 지혜로운 보시에 쓰라는 것입니다.


보시는 단지 재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 재물이 많아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밥 한그릇을 보시한 부인에게 하나를 심어 열을 낳고, 열을 심어 백을, 백을 심어 천을, 천을 심어 만을 낳아 마침내 진리의 도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보시라도 그것이 씨앗이 되어 마침내 상상할 수 없는 큰 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선과 보시의 생활화로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그 씨앗이 인연이돼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정리=위영란 기자(yryui@buddhap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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