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의 탑은 왜 강가에 서 있을까. 서울 호압사라는 절 이름에 '호(虎)'자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가야 땅의 산과 절 이름에 ""어(魚)""자가 왜 유난히 많을까.

<도선 국사 따라 걷는 우리 땅 풍수기행>(시공사)은 이러한 의문을 풀어주면서 자연의 공간과 삶을 조명한 책이다. 최원석 씨가 풍수를 테마로 전국 사찰과 유적을 찾아다니며 도선 스님의 풍수사상과 사찰의 연관성을 파헤친 여행기이다.

일반적으로 풍수라고 하면 잡술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풍수의 본래 의미는 단순히 선조의 묘 자리를 살피고 터를 골라 집을 짓는 명당풍수(明堂風水)가 아니다. 글쓴이는 온 땅을 사람의 몸과 같이 보는 비보풍수(裨補風水)를 한국풍수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그 비보풍수의 주역이 바로 도선 스님이다.

통일 신라 말의 선승 도선 스님은 선(禪), 풍수, 밀교, 사리탑 신앙을 종합하여 국토산천을 깨달음으로 보는 국토선(國土禪)이라는 새로운 풍수사상을 창안했다. 그 실천방안이 사탑비보. 이 책은 글쓴이가 93년부터 도선 스님의 행적을 따라 구산선문과 화엄 10찰 등 여러 사찰을 답사, 도선 풍수의 맥을 산천비보, 자연미학, 국토산천의 깨달음 세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땅이 곧 사람'이라는 말로 귀결된다.

땅도 사람처럼 좋지 않은 기운이 있는 곳, 그리고 아픈 곳이 있다. 도선 스님은 이런 곳에 절을 짓고 탑을 세워 그 땅을 치료하고자 했다. 그래서 거센 호랑이 산세를 제압하기 위해 호압사라는 절이 세워졌고, 날뛰는 용과 말에 굴레를 씌우기 위해 여주 신륵사의 전탑은 대웅전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에 자리잡게 됐다. 또 달아나려는 개의 형상을 한 산세를 눌러 앉히기 위해 경북 청도에는 떡절이 있다. 이것이 바로 '비보(裨補)', 도와서 모자람을 채워 주는 것이다. 즉 자연에 기대어 기생하려는 인간이 아니 라 아픈 땅을 돌보고 치유해서 끌어안으려는 적극적인 사고 방식이 바로 도선의 풍수인 것이다.

이 책의 1부 '도선의 국토선과 산천비보'에서는 도선 풍수의 현장 39곳을 둘러보고 쓴 답사기다. 탑이나 절의 생김새를 살피기보다는 멀리서 가까이서 바라본 산과 절, 탑의 지리적인 입지의 의미를 실피고 있다. 말 그대로 봉황이 머리를 드는 형국의 산세, 용트림하며 뻗는 산등성이, 연꽃 모양으로 솟은 산봉우리들의 모습이 맑고 고운 우리 땅의 성품을 잘 보여 준다. 산, 바위, 절, 탑의 조화에서 결함 있는 땅조차 불력으로 살기 좋은 터전(명당)을 만들려 했던 도선 스님의 풍수사상을 엿볼 수 있다.

2부 '도선의 풍수와 비보사탑에 관한 이해'에서는 비보사탑에 관련된 논문이 실려 있다. 도선 스님의 풍수이론을 보다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 문헌상의 출처를 일일이 살펴보고 비보사탑의 현장을 지역별 도표로 정리했다.

이 책은 도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며 우리 땅을 보는 바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국토산천도 성불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명당을 만들려 했던 도선 스님, 그가 땅을 보살핀 현장으로 함께 떠나보자. 값 9천8백원. <김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