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에 선 에이즈 환자를 돌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는 사찰이 태국에서 화제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있는 프라밧남푸 사(寺)가 현대판 흑사병으로 알려진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앓고 있는 태국인들에게 삶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

방콕 포스트 지에 따르면 프라밧남푸 사는 92년부터 이 일에 관심을 보여 왔는데, 특히 치료비는 고사하고 생활비조차 없는 빈민계층의 환자들에게 먹고 자는 문제의 해결을 넘어 태국의 행정당국, 부유한 태국인들과 후원 관계를 맺게 주선해 줌으로써 이들이 병원을 다니며 치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병세가 악화돼 임종을 맞는 환자들의 장례식은 물론 그 비용도 도맡고 있다. 태국에서는 불교장례를 치를 경우, 평균 1만 바트(약 28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는 태국의 저소득층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 일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스님은 프라밧남푸 사의 주지인 알롬콧 티카라뇨 스님. 스님은 태국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에이즈 환자 요양시설을 제안한 인물로도 유명한데, 프라밧남푸 사 역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개원했다. 현재 100여 명의 에이즈 환자들이 수용돼 있으며, 재원이 조성되면 태국 각 지역에 분원이 설치될 예정이다.

알롬콧 티카라뇨 스님은 호주에서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프라밧남푸 사를 중심으로 에이즈 요양시설 설립을 위한 7단계 계획을 세웠다. 현재 프라밧남푸 사 근처에서 제 1단계 건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공사가 완료되면 1만여 명의 에이즈 환자들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알롬콧 티카라뇨 스님은 “에이즈 환자들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태국 사회에서 이들에게 살 길을 마련해 주는 게 태국 불교계의 도리라는 생각에 이 일을 구상하게 됐다”며 “자급자족 체제로 운영될 에이즈 요양시설에서는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환자들은 노동과 함께 몸을 가누지 못하는 동료환자들을 위한 수발을 하고 농사를 짓게 된다”고 설명했다.

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태국의 에이즈 환자 또는 보균자는 80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에이즈로 사망해 생긴 고아만도 8만여 명에 달한다.

스님의 생각은 프라밧남푸 사가 있는 롭 부리 지역과 인근 무앙 파야요 지역의 스님들에게 호응을 얻고 두 지역의 사찰들은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성교육에 나서는가 하면 사찰들은 에이즈 진료소를 자청, 약물치료의 장소로 제공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지역의 사찰들은 에이즈 화자 치료에서 방지를 위한 계몽운동까지도 추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신심을 점검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특히 오랜 적으로 여겨온 기독교와도 손을 잡고 가톨릭 수녀들이 에이즈 감염 환자 실태를 조사하는 일에도 적극 협조하고 있다. 태국 내에서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던 무앙 파야요 지역의 경우, 이러한 노력 덕분에 지난 6개월간 새로운 감염자가 전혀 생기지 않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대해 방콕 포스트 지는 “에이즈로 바람 잘 날 없는 태국에서 불교계의 헌신적인 노력이 에이즈 환자에게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태국 불교계의 서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국민들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종욱 기자
gobaoou@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