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상의 감격적인 만남에 온 겨레가 열광에 휩싸여 있다. 이번의 만남으로 어디서부터 손을 써 나가야 할지 막막했던 통일 문제가 이제는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로 눈앞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상회담의 성과를 차분하게 현실적인 조건에 맞추어 풀어나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그 동안 분단상황 아래 체제 유지를 위해 서로를 비하하고 적대시하던 모든 필요악적인 요소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가는 일일 것이다.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에 대한 비방 선전을 중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고, 이쪽에서도 국가보안법의 손질을 준비하는 등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적대시하던 과거를 청산해나가는 우리의 길목에 바로 6.25가 놓여져 있다.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하는 6.25 노래의 가사에 드러나듯 그만큼 6.25는 적대감의 원천이요, 남북한 민족의 감정에 깊은 상처의 골을 새긴 아픈 과거이다. 이 아픈 과거를 되새기는 날에 통일의 앞날에 비추어 이 상처의 자국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슬그머니 덮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혹 현충일의 평양교예단 공연을 질타했던 모 일간지의 논조대로 한다면, 6월 25일 하루라도 북한의 죄과와 호전성을 새기고 경계하여, 앞으로의 통일 행보에 조심성을 더하는 그러한 자세를 지니자고 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정말 너무나도 오랜 분단이 가져온 편집적인 북한공포증이 드러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시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대결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 북한이 아직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세계적 흐름을 거스를만큼 힘이 있는 위험한 존재도 아니다. 민족의 밝은 앞날을 향한 전향전인 자세 아래서 보는 6.25는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이념의 대결이 빚은 민족사의 참혹한 비극일 뿐이다.

불교의 눈으로 본다면 6.25는 분별상에 대한 집착이 빚은 참혹한 역사에 대한 참회의 날이어야 하며, 민족의 하나됨을 통해 그 죄과를 씻기로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 수없이 스러져간 호국 영령들의 넋도 그러한 화합과 하나됨의 세계 속에서 진정한 해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25를 기해 불교계에서 계획하고 있는 많은 기념행사는 바로 민족의 하나됨을 통해 분별상에서 나온 과거의 죄업을 해탈케 하는 불이법문의 법회이어야 하며, 그를 통해 그 참화의 와중에 산화한 많은 영령들을 완전한 해탈에 들게 하는 법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