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과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8세기 당시 세계 4대 도시였던 신라의 수도 경주의 거리를 거닌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 덕분에 아날로그적인 문화재와 가상현실과의 이같은 만남이 가능해졌다. 박진호 시공테크 콘텐츠사업본부주임(29)과 박소연 원광보건대 영상애니메이션과 교수(30)가 문화재 디지털 복원을 통해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박 주임은 최근 발간된 정수일 박사(깐수)의 저서 ‘고대문명교류사’에 나오는 알렉산더 모자이크 벽화를 디지털 기술로 복원했다. 지난 여름엔 무령왕릉 내부를 3차원으로 복원했고 1999년엔 8세기 신라 왕경을 복원하기도 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한 박 주임은 1999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영상관 작업에 참가하면서 디지털 복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와 공동으로 경주를 신라시대 모습대로 복원하는 ‘버추얼 신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박 교수는 1990년 고교 졸업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주 사반나예술대에서 컴퓨터아트를 공부하고 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에서 ‘가상 현실과 미술’을 전공하면서우리 전통문화를 가상현실 속에 재현하고픈 욕망을 갖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와 설화 같은 것을 가상현실로 보여줄 때 놀라는 것을 보고 긍지와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디지털 복원학(Digital Restology)’은 디지털 미디어를 동원해 고대문화를 재현하는 새로운 분야. KBS1TV ‘역사스페셜’팀에서도 디지털 복원을 하지만 국내 전문가로는 박 교수와 박 주임이 단연 선두주자로 꼽힌다. 역사스페셜 디지털 복원의 일부는 박 주임의 작품. 특히 박 주임과박 교수는 단순한 디지털 복원이 아니라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실제 유적 속에 들어가 몰입할 수 있는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복원작업은 고도의 컴퓨터 테크닉도 필요하고 문화재에 대한 식견도 필요하다.

“디지털 복원은 고고학적 미술사학적 자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현재로선 사료의 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또한 경주 황룡사 디지털 복원처럼, 어느 학설을 따라야 할 지도 어려움의 하나입니다.”(박 주임)

“누군가 사료를 정리해준다면 컴퓨터만 잘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묻자 박 교수는 “아닙니다. 드로잉하는 것이나 단청 칠하는 것이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다릅니다. 관심과 애정이없으면 디지털 복원은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 테크닉만으론 절대 부족합니다”고 말했다.

박 주임도 “미디어는 나날이 발전하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중요한 것은 역시 아날로그적인 사료와 역사에 대한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꿈은 한국을 문화재 디지털 복원의 세계적인 메카로 만드는 것.

영국 미국 정도가 우리보다 앞서있을 뿐 현재 세계의 문화재 디지털 복원 분야는 전체적으로 시작단계다. 따라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가상현실연구센터와 공동 작업을하면서 내년 10월 서울에서 ‘가상현실 시스템과 멀티미디어’를 주제로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박 주임은 이 학술대회에서 장군총을 복원한 ‘디지털 장군총’을, 박 교수는 ‘버추얼 신라’를 세계 학계에 선보일 계획이다.

2001.12.04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