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미술사학계에서 고려 미술 연구는 그 동안 미완의 연구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경주를 빼고 신라 문화를 말할 수 없듯, 500년 고려 미술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려 문화의 중심지였던 개성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분단 현실이 남한 유물에 한정된 반쪽 연구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개성의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고려 미술 전반의 특징을 살펴보는 세미나가 열렸다. 12월 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성의 고려미술’을 주제로 (사)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가 한국불교미술사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개성의 고려미술’ 주제 학술대회는 이전 시대에 비해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고려 미술 연구의 기초를 닦는 자리였다.

문명대(동국대) 교수는 ‘고려 법상종 미술의 전개와 현화사 칠층석탑 불상조각의 연구’ 주제 발표에서 “현화사 7층석탑의 각 층 몸체(탑신) 사면에 새겨진 부조 조각상은 불회도 장면을 도상화한 우리 나라 최초의 탑상 조각”이라고 밝혔다.

석탑에 부조상을 새기는 것은 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지만, 법당의 후불화처럼 법회 장면을 조각하는 것은 1349년에 조성된 경천사 10층석탑에서부터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알려져 왔었다.

“1010년 조성된 개심사 5층 석탑에도 기단부에 8부중, 1층 탑신에 인왕상을 새기는 정도였는데, 1020에 조성된 현화사 7층 석탑에 법회 장면을 조각한 탑부조 불회도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나라 불탑 내지 탑상 조각에 획기적인 변모가 일어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

논문만 제출한 최성은(이화여대) 교수는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기에도 고려 미술은 여전히 중국 송대 미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살폈다.

개성 민천사터에서 출토된 금동아미타불좌상을 중심으로 원 간섭기 불교조각의 특징을 살펴본 최 교수는 “1313년 충선왕이 국가적 차원에서 일으켰던 대규모 불사의 흔적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인 이 불상은 현재 전하는 중국 강남 지방의 남송 시대 불화와 매우 유사한 표현 양식을 보이고 있다”면서 “몽고의 지배 아래서도 고려와 중국 강남 지역은 문화적으로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입증해 주는 예로서 갖는 조각사적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개성 공민왕릉 석인상 연구’를 제출한 임영대(중앙대 강사) 씨는 “공민왕릉의 무인상은 고려 후기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신장상과 동일한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다”며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공민왕의 무덤에 무인상을 조성하면서 불화 속 신장상의 갑옷 도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날 기조강연을 맡은 진홍섭(이화여대) 교수는 “고려시대 불교문화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과 같은 인위적 파괴와 자연적 훼손에 방치돼 왔다”며 “더 이상의 훼손을 입기 전에 남겨진 현상만이라도 보존하고 조사 연구가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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