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현재의 불교학을 신앙을 포괄하는 학문체계인 ‘승가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기존 불교학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승가학’은 지금까지의 불교학 연구방법론을 폭넓게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계에 적지않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스님은 11월30일 중앙승가대 대강당에서 열린 ‘승가학풍 수립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현재의 인문학적 불교학은 불교이념을 나타내는데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불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믿음, 실천을 강조할 수 있는 학문적 뒷받침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전통 불교학의 정체성을 계승해 불교를 전하고 승가를 육성하는데 적합한 불교학, 즉 ‘승가학’이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범스님이 제시한 ‘승가학’은 교설(敎說)과 학설(學說) 등 교학의 원리를 통합 연구하는 ‘교의학(敎義學)’, 선학을 문헌학적 방법이 아닌 선지(禪旨)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선지학(禪旨學)’, 수행과 체험과정을 실천적으로 논의하고 구현하는 ‘수증학(修證學)’, 중생교화의 방법을 연구하는 ‘교화학(敎化學)’으로 구성돼 있다.

김성철 교수(동국대 불교학)도 이날 세미나에서 “인문학적 불교연구로 인해 신앙으로서의 불교가 쇠퇴하고 있다”며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앙으로서의 불교학’과 ‘인문학적 불교학’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신앙으로서의 불교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체계불학(體系佛學)’을 정립시켜야 하며, 그 예로 티베트의 <보리도차제론>을 제시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정진홍 교수(서울대 종교학)는 “상당히 의미있는 시도며, 신앙 자체를 학문으로 포괄해야 한다는데 동감한다”고 평가했고, 차차석 박사(동국대 불교학 강사)는 “불교학과 수행(신행)이 제각기 따로따로인 현재로서는 ‘체계불학’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공감을 표했다. 또 정병삼 교수(숙명여대 사학)도 “이론 위주의 불교학에 대한 반성은 적절하며, ‘승가학’ 정립은 불교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인문학적 불교학과 승가학의 유기적인 결합이 필요하며, 인문학적 성과를 배척하는 방식은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승가학’의 범위를 ‘승가’로 제한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이견이 많았다.

정영근 교수(서울산업대 철학ㆍ불교학연구회 부회장)는 “승가학은 인문학을 도외시함으로써 불교학을 불교 안에서만 논의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류승무 교수(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는 “승가학은 출가수행자에게만 적합할 뿐 인간의 외적 조건이나 사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게 될 것”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한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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