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개창조(開倉祖) 대각국사 의천 스님 열반 900주년과 이 달의 문화인물 선정을 기념하는 제 4회 한·중·일 천태 국제학술대회가 ‘대각국사 의천과 동아시아 불교’란 주제로 11월 16일 서울 관문사에서 열렸다.

천태종과 천태불교문화연구원이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국내 전문가는 물론 중국 인민대학 불교종학이론연구소 장풍뇌(張風雷) 교수와 일본 다이쇼 대학 가와가츠 겐료(川勝賢亮) 교수 등 7명이 나서 의천 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집중 조명했다.

특히 이번 학술 대회는 의천 스님의 불교 사상에 대한 연구가 전환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화엄종의 개혁, 천태종의 창립, 불교경전의 수집 및 간행, 동아시아 각국 불교계와의 교류 등 각각의 업적에 대한 단편적 이해에 머무름으로써 의천 스님의 불교 사상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현실을 반성하는 자리였다. 때문에 화엄종과 천태종의 관계, 천태종과 선종의 관계 등 아직도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제에 관심이 모아졌다.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교학사상 초탐’을 발표한 장풍뇌 교수는 “<대각국사문집>을 살펴보면 그가 종종 교관(敎觀)을 언급할 때 가리키는 것은 화엄교학이지 천태교관이 아니었다”며 “의천이 비록 해동 천태종의 개산조이지만 그 자신은 전통적인 천태 교관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고, 화엄을 주로 전하며 천태를 함께 전했다는 것이 의천 불학의 총체적인 성격이다”고 밝혔다. 의천 스님이 송 나라에 들어가 구법하려 한 것은 물론 천태교관을 널리 펴겠다는 서원 때문이었지만 지자(智者) 대사의 육신탑에서 이를 발원할 때도 자기가 화엄종의 문도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사상’을 발표한 지창규(동국대 강사) 씨는 “<문집>을 보면 화엄종 색채가 두드러져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대각국사의 사상을 화엄사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며 “천태사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록 크지는 않지만 유·불·도 삼교융합과 교관쌍수 같은 천태의 융합적 특징이 의천의 불교 사상의 중심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지 씨는 또 당시 교종의 대표적인 종파로 화엄종이 있었는데도 천태종을 개립하였던 것은 선종의 계도를 위해서라는 주장을 폈다. 지 씨는 “기존의 화엄종이 선종을 포함하기에는 관문(觀門)이 빈약하므로 관문이 떨어지지 않는 천태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리영자 동국대 명예교수는 대각국사 이후의 법권을 고찰한 주제 발표에서 “선종의 다섯 산문의 고승들이 초기에 7백여 명이나 참여했고, 의천 문하에 직접 참여한 무리도 3백 여 명이었다”며 “의천의 법을 계승하려는 천태 법권은 이들 1천여 명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리 교수는 이어 금석문과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의천→교웅→덕소→요세’로 이어지는 법맥을 정리했다.
‘대각국사 의천의 불교사적 위치’를 발표한 최병헌(서울대) 교수는 요세 이후 고려 후기로 내려가면서 의천의 불교 전통이 단절되고 만 이유에 대해 “천태종 창립과 4개 종단체제로의 불교계 개편이 엘리트 불교, 종파 불교적 성격을 띄다 보니 지방사회의 저변에 뿌리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종철 동국대 명예교수(‘의천의 시문학’)와 이병희 한국교원대 교수(‘대각국사 의천의 주전론’)는 각각 문학인과 경세가로서의 의천 스님을 조명했다. 일본 다이쇼 대학 가와가츠 겐료 교수는 <고려속대장경>으로 간행한 불경의 목록 격인 <의천록>이 일본 불교에 끼친 영향과 의미를 되짚었다.

권형진 기자
jinny@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