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남북 정상이 경제.사회.문화 등 4개 분야의 교류를 합의 서명함에 따라 다방면에서의 남북간 문화교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불교계의 남북한 교류도 한층 앞당겨질 전망이며, 특히 불교유적지인 사찰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북한 사찰 가운데 상당수는 6.25전쟁 등으로 인해 소실되었지만, 현재까지도 60여 사찰이 남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휴전선 너머 북한 불교 사찰과 문화재를 직접 만날 그날을 그려보면서 남북정상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진 평양과 민족의 영산 금강산, 묘향산 등지의 사찰에 대해 알아본다.

<평양>
반세기만에 분단의 벽을 허문 역사의 현장인 평양에는 광법사, 정릉사, 법운암, 용화사, 영명사, 등 유서깊은 불교사찰이 명맥을 잇고 있다.

평양 대성산에 위치한 광법사는 고구려 광개토대왕(392) 때에 지은 고찰이다. 6.25전쟁 때 대부분 불탄 것을 90년 현상태로 복원하였다. 현재 북한 국보 유적 16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북한 승려양성소인 불학원이 이곳에 있다.

평양 외곽 룡산리 동명왕릉 입구에 있는 정릉사는 고구려 장수왕 15년에 창건됐다. 고구려 동명왕의 명복을 빌고 동명왕릉을 지키기 위한 나라의 원찰(願刹)이었다. 최근에 새로 지었는데, 탑을 중심으로 사찰의 기본 골격만 세워 전형적인 고구려식 가람배치 양식을 지키고 있다.

평양 룡악산에 있는 법운암은 문익환, 황석영, 임수경 씨 등 남쪽의 유명인사들이 거쳐간 이후 명소가 되었다. 특히 이곳에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다 하는데 <백범일지>에 나오는 평양에 와서 한 암자의 주지가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몇 개월 동안 지내다가 이내 환속했던 곳이 바로 법운암이라 한다. 이밖에 평양에는 대동강변에 위치한 고구려시대 고찰 영명사와 일제시대에 창건한 용화사가 있다. 영명사는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때에 250명이 넘는 승려가 수행하고, 2만이 넘는 신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현재는 내각초대소로 변했는데, 대동강변의 부벽루와 3층 석탑이 남아 있다.

<금강산>
1만2천봉 8만9암자라는 이야기가 말해주듯 금강산에는 예로부터 수많은 사찰과 암자가 들어서 있었다. 특히 표훈사, 마하연, 장안사, 신계사를 금강산의 4대사찰이라 일컬어 왔는데, 전쟁 등으로 인해 소실되고 지금은 표훈사와 마하연만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표훈사의 현재 모습도 6.25전쟁 때 반야보전만 남기고 불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 또한 표훈사는 금강산의 주불인 법기(法起)보살을 모신 곳으로도 유명한데, 500척의 놋시루와 53부처님을 새긴 철탑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없다.
내금강 만폭동에 자리잡은 신라 고찰인 마하연은 원래 사찰 강당으로 지은 건물로 규모와 구조가 웅대하다. 부근에 만회암, 불지암, 연화대 등 옛 사찰건물과 유적이 남아 있다.

유점사는 금강산 지역의 대본산이었다. 이 사찰에 있는 여러 전당 중에도 능인보전(能仁寶殿)은 최고의 자랑이었고, 신라 말에 조성한 53불이 있었으나 소실되었다. 장안사는 원나라 순제의 황후가 된 기씨가 지었다고 하는데 건축 기법이 정교하기로 유명한 사찰이다. 6동의 전당과 일곱 전각, 네 개의 누각과 함께 보물 제120호로 지정되었으나 6.25때 전소되었다.

또 법기봉 허리부분의 깍아지른 절벽바위에 1개의 가는 구리기둥으로 3층이나 되는 암자를 떠받들고 있는 입지가 특이한 보덕암이 있다. 관음보살의 화현인 보덕각시의 설화가 전하는 이곳에는 백색의 관음상이 모셔져 있는데, 영험있기로 유명하다 한다.
내금강에 위치한 정양사 또한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전후 복구해 현재에 이르렀다.

특히 약사전은 조선 후기에 복원된 것인데, 육각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들보와 못 하나도 쓰지 않고 지었다.

<묘향산>
묘향산에 위치한 보현사는 북한에서 가장 큰 절로, 북한불교의 본산격이다. 고려 현종 때에 창건했는데, 6.25전쟁 때 반 이상 파괴된 절을 복원해 오늘의 모습을 이루었다. 보현사 경내에는 고려시대 석탑을 대표하는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보현사 8각 13층 석탑을 비롯 불교역사박물관을 세워 전국 사찰에서 나온 많은 불교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보현사의 산내 암자로는 상원암이 현존한다. 묘향산 제일암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묘향산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암자다. 16세기에 지어진 암자로 기도처, 수도처, 공양간에 수각까지 있는 제법 큰 규모다.

서산대사가 수행하던 곳으로 이름높은 금강굴은 칠성동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바위틈에 만든 토굴인데 숨은 듯이 겸손하게 지어져서 수행자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암자입구에 청호방문(淸虎方文)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묘향산 만폭동으로 오르는 초입에 위치한 거대한 안심사 부도밭. 총 44기의 부도와 19기의 비석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고려말 대선사 지공스님과 나옹스님의 부도, 서산대사의 부도 등이 있다. 지금은 부도만 남아 있는 안심사는 보현사의 할아버지가 되는 고찰이다.

이렇듯 북한에는 아직도 많은 사찰들이 남아 있다. 법타스님이 올 초에 펴낸 <북한불교연구>에 의하면 북한의 사찰은 60여 곳이 현존하고 있으며, 1만여명의 불교신자와 300여명의 승려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신앙 공간으로서의 북한 사찰은 55년이라는 분단 세월 속에 많이 변모돼, 관광 휴양지화 된 경향이 짙다. 절을 지키고 있는 스님도 대처승으로 불교 성보를 관리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며, 정기적인 법회가 열리는 사찰은 거의 드물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부처님 오신날 만큼은 수많은 불자들이 절을 찾아 등불을 밝힌다고 한다. 앞으로 남북의 스님과 신도가 자유롭게 오가는 사이 오랜 세월동안 단절됐던 불교적 전통이 되살아나고, 부처님 품안에서 또 하나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은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