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2년 불광사(서울시 송파구 소재) 개원을 기점으로 도시의 중심이나 변두리에 현대식 사찰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사찰 건축 및 조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수행, 예배, 포교라는 사찰 본래의 기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건축 양식으로 지은 도심 사찰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은 1월 13일 '현대 도시 사찰의 이해와 불사 방향'을 주제로 열린 동국대 부설 사찰조경연구소의 제4회 정례학술회의에서 '바람직한 현대 도심사찰의 조경'을 발표한 홍광표(동국대 조경학과) 교수에 의해 밝혀졌다.

이 논문에서 홍 교수는 "건축 자재만 현대적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지적하고, "따라서 전통사찰의 상징과 기능 외에도 도심 공원으로써의 역할을 담아낼 수 있는 도심 사찰 건축의 원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도심 사찰은 건축물의 내부뿐만 아니라 외관과 그 공간 활용에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도심 사찰 대부분 외부 공간을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지금의 도심 사찰들은 수행과 예배 이외에 도심 속의 휴식처써, 불자의 모임이나 활동의 공간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하기 힘들게 되고, 이것은 결국 포교 활동의 위축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사찰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수 있는 건축 자재나 조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과 다를 바 없이 철근콘크리트나 화강석으로 지은 사찰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개선해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날 '도시 사찰의 위상 정립을 위한 건축적 접근'을 발표한 조정식 교수 역시 ""도심 사찰은 기존의 전통사찰이 갖고 있는 예배와 수행의 장소라는 성격 외에 공공성과 사회성이 필연적인 요구조건"이라며 "도심 사찰의 수가 계속 늘어가고 있어, 이에 대한 설계의 원형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도심 사찰을 짓기 위해 우선 고가(高價)의 토지를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건축 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고층'만을 선호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도 초래하고 있다. 즉 "사찰이란 넓은 장소에 다양한 상징물이 있는 곳"이라는 일반인들의 개념과 상반되는 방향으로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에 건축되고 있는 도심 사찰들은 기와 지붕이나 열주 등과 같은 전통사찰의 양식을 답습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도심 사찰 건축의 모델로 삼기에는 실용성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조 교수는 "현대 불교 건축의 원형은 전통적 불교 교리에서 추구하되 단순한 복제나 모방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도시사찰이 조기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찰의 현대화에 대한 관련 학계의 논의가 있어야 하고, 또한 스님들이 학계의 의견에 귀기울이는 정서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김개천(이도건축 대표) 씨의 '현대 도심 사찰의 공간계획에 관한 연구', 최응천(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씨의 '도시사찰의 불교 공예', 손연칠(동국대 미술학과) 교수의 '불교 미술의 현재와 미래' 등이 발표됐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