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은 통일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에 장육전(현 각황전)을 건립하면서 판석에 화엄경을 새긴 석판으로 뒷벽을 둘렀다고 전해지는 유물이다.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조각나 지금은 파편으로 전하지만 통일신라의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불경, 서체 등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화엄석경을 탁본으로나마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29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열리는 '한국서예 2000년전'은 한국 서예사 2000년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내년 2월 1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유물은 모두 160여 점. 우리 서예사의 큰 흐름을 밝히는 데 기준으로 삼을 만한 작품들만 엄선해서 내놨다. 각 시대별 서예의 특질과 중국의 영향관계를 중심으로 7개의 주제로 나누어 전시한다. 삼국∼통일신라 시대 작품은 주로 금석문 탁본이며, 고려시대는 사경, 조선시대의 것은 묵적이 주종을 이룬다.

이 가운데 금석문 탁본과 사경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서예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김생의 '태자사낭공대사탑비명' 최치원의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탄연의 '청평산문수원 중수기' 이환추의 '수미산광조사진철대사탑비명' 등 희귀 고탁본들이 출품됐다.

화엄사화엄석경과 함께 남아있는 대표적 석경인 경주 창림사지 출토 법화석경도 첫 선을 보인다. 이 석경은 동국대 박물관과 국립 경주박물관에 따로 전하는 법화석경 파편이 원래는 같은 석경임이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이밖에 안평대군의 '엄상좌찬' 퇴계 이황의 '퇴도필법' 석봉 한호의 '천자문'과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예서대련' 당대의 문장가, 명필들의 주옥같은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동국 예술의 전당 전시사업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예술사와 문화사 전반에 걸쳐 붓글씨와 서예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실감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02)580-1300

권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