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나아가 아시아 불교 문화의 원형과 변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혜초 스님과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12월 8일 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불교문화연구원(원장 목정배) 주최 특별강연회에서 실크로드 관련 국내 최고 권위자인 정수일(前 단국대 사학과 교수) 박사가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 나타난 인도의 불교의 모습과 풍물 그리고 중국으로 되돌아간 육로 여정 등을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와 비교·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된다.

이날 '고대 실크로드 불교문화의 교류에 대한 접근-혜초를 통해 본 서역불교'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정 박사는, 혜초 스님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던 인도 불교의 일시적 부흥기인 8세기 전반기에 인도를 순례하고, 다시 육로로 서역을 지나 중국에 도착해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는 데 주목했다.

불교의 전파는 그 과정에서 교리뿐 아니라 의식, 학문, 건축, 공예술 등과 같은 불교의 문화 역시 전하기 마련인데, <왕오천축국전>에는 △불교 전파 루트 △불교의 대승화 추세 △흰두·이슬람교의 잠식 등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19세기 말까지도 대장경에 수록된 <일체경음의>에 서명과 일부 내용만이 소개된 정도여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908년 중국 돈황의 천불동에서 두루마리 사본(寫本) 형태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사본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떨어져 나가고 227항 분량의 중간 부분만 남아 있다.

정 박사에 따르면 "이 책은 8세기를 전후해 인도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가능케 하지만, 지금까지 혜초 스님의 생애며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우선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에 대한 보다 깊은 분석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사본 원문을 판독하고 정확하게 번역하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1908년부터 1999년까지 국내에서 펴낸 <왕오천축국전>의 원문 교감과 주석 관련 연구서는 1권. 일본이나 중국에서 6∼7권이 나온 것과 비교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국내에서는 일본과 중국과는 달리 6권의 번역서가 출간되었으나 학술적인 가치가 부족하다는 게 정 박사의 평이다. 이러한 풍토에서 같은 기간 8편의 논문만이 쓰여진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정 박사에 따르면 혜초스님의 이러한 활동은 신라불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스님의 생애와 <왕오천축국전>을 포괄적으로 검토해야만 통일신라의 불교의 면모를 바르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불국사에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이 나란히 봉안되고, 석불사의 감실에 10구의 보살상이 <불정존승다라니염송의궤범>에 근거한 팔대보살이라는 점에서, 신라 불교 속에 적잖게 밀교의 색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해 왔다.

정수일 박사는 결론에서 "혜초 스님이 신라로 돌아오지 못해 그의 사상이 한국 불교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따라서 연구의 폭을 신라의 밀교 연구로 확대해, 혜초 스님이 정통 밀교를 계승한 사상가로 자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