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역사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졌던 근대 불교사를 다룬 논문들이 학술대회에서 잇달아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6월 15일 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 서굉일)가 개최한 '한국 근대 민족운동과 종교' 학술발표회는 민족운동의 한 부분으로 불교를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불교, 기독교 민중종교 등 3부로 나누어서 진행된 이날 발표는 소장학자들이 이끌었다. 그러나 일제하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불교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엇갈렸다.

한동민 중앙대 강사는 '일제 강점기 화엄사의 본산승격운동' 주제발표에서 "화엄사 본산 승격운동은 일제의 사찰령 체제에서 30본산이라는 고정적 틀을 깨는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본산 중심적인 틀을 고정화시켰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씨는 선암사의 장기림, 김학산과 화엄사의 진진응은 임제종 운동의 주역이었으나 선암사와 화엄사의 본말사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선암사가 화엄사 주지로 임명한 김학산을 화엄사 승려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폭행, 치사케 한 사실은 일제가 의도한 대로 조선불교계가 분열된 채 본산 이기주의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에 비해 '불교계의 3·1운동과 대한승려연합회선언서'를 통해 불교계의 3·1운동에 관해 발표한 김순석 고려대 강사는 "불교계가 전개한 3·1운동의 의의가 결코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불교계의 3·1운동 참여는 천도교나 기독교 세력에 비해 상대적 열세를 면치 못했고 교단지도부의 인식 또한 부정적이었다"고 밝혔으나 "1919년 11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승려연합회 이름으로 발표한 선언서는 조선의 모든 승려들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상대로 해방이 되는 그 날까지 피로써 투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의 작성자를 둘러싸고 이종욱이라는 김씨의 주장에 대해 이종욱, 신상완, 백초월 등 여러 사람이 거론되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6월 16일 '(한국 강점 전후를 중심으로)일제의 한국침략과 종교'를 다룬 한국사연구회(회장 최병헌) 학술회의에서는 불교를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한국 불교계의 대응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최병헌 서울대교수는 '일제의 침략과 불교' 주제 발표를 통해 "일본 불교를 한국침략에 이용한 일제는 한국병합이 일단락되자 한국불교를 장악하며 식민통치의 전면에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30본산제도는 바로 불교교단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직할체제로의 편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불교의 내용이나 성격이 친일적이고 어용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당시 한국 승려들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정체나 일본불교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당시 한국 승려 대부분이 사찰령과 본말사제 시행을 불교발전과 중흥의 계기로 인식했다는 것은 당시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전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근대에서의 일제 침략사는 정치적·경제적 침략의 문제만이 강조됐을 뿐 종교, 특히 불교를 첨병으로 한 정신적·문화적 침투 사실은 간과되어 왔다"며 "불교를 앞세운 일제의 정신적·문화적 침략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우리 학계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