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주류를 형성해온 선의 역사를 앞으로 8년에 걸쳐 시대별로 재조명할 학술대회가 첫 걸음을 떼어놓았다. 특정시기의 선에 대해 살펴보는 세미나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장기적 계획아래 시대별로 그 역사와 사상체계를 조명하고 한국선의 정체성을 찾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라 교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선학회는 "8년간에 걸쳐 한국선을 개괄·정리하는 한편 이후 한국선의 방향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세미나 첫 해인 올해는 한국선의 출발인 되는 신라시대의 선을 점검했다. 학국선학회가 지난 5월 18∼19일 동국대 학술문화관 덕암세미나실에서 개최한 '한국선이란 무엇인가-신라시대를 중심으로'는 통일신라시대를 중심으로 나말여초의 한국선에 대해 집중 논의하는 자리였다.

전국 대학의 선불교 관련 연구자와 스님 등 12명이 기조발제에 나섰다. 한국선학회 회장 현각 스님의 '신라선의 역사적 의의'에 이어 이종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선종 전래 이전의 신라의 선'을, 차차석 동국대 BK21 연구원이 '남종선의 초전자 도의선사의 사상과 그 연원 탐구', 고영섭 동국대 강사는 '신라말 선문화의 형태와 발전'을 주제로 발표했다.

또 김방룡 영산원불교대 교수가 '신라말 제산문의 선사상', 보조사상연구원 연구실장 인경스님이 '신라말 교종교단과 선종의 제문제', 조범환 서강대 박물관 학예연구원이 '신라말 유학자의 선종불교 인식', 고려대 이덕진 강사가 '신라말 동리산문에 대한 연구', 한기문 상주대 교수가 '신라말 선종사원의 형성과 구조', 임병권 대전대 교수 '선어록에 나타난 신라선사', 송인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가 '<조당집> 신라 선사 기록 부분의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821년 도의국사에 의해 선이 전래된 전후의 역사 점검으로 출발했다. 쟁점은 신라선의 성격에 모아졌다. 현각 스님은 "우리 나라는 중국과 달리 자발적 수용의 형태를 띠고 선이 들어왔다"며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선법을 수용하면서 독자적 모습을 띠어갔다"고 말했다. 이종철 교수는 원효의 말년 저작으로 생각되는 <금강삼매경론>을 바탕으로 중국 선종이 통일신라 후기에 별다른 마찰 없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 교수는 "진선(眞禪)이란 표현을 통해 원효 당시에 이미 선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선종을 받아들일 만한 사상적 풍토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신라선의 성격을 규명하는 자리인 만큼 기존의 상식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인경스님은 "선교의 공존이나 일치라는 견해는 선종의 도입 이후 선 중심의 연구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화엄종의 사상적인 변화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내린 결론"이라며 "신라말 의상계 화엄의 논의를 볼 때 신라말 화엄이 이론적으로 현학적이라는 기존의 시각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또 신라 선사상을 전해준다는 <선문보장록> 등을 검토한 결과 "신라말의 선사상은 결코 송대의 불립문자나 교외별전의 사상이 아니다. 또한 선교일치에 관한 어떤 논의도 발견되지 않아 신라말의 선사상을 선교일치로 설명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방룡 교수도 "고려 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구산선문의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다보니 신라말 제 산문의 사실적인 모습을 파악하는데 혼란을 주고 있다. 또 제 산문 선승들의 사상을 밝히는데 있어 지나치게 법맥에만 집착함으로써 선승들의 사상에 대한 총체적이고 개방적인 접근을 방해하고 있다"고 기존 연구를 비판했다. 김 교수는 "산문의 개념과 성격이 무엇을 기준으로 성립된 지에 대한 연구와 중국 선종 사상의 흐름과 연결시켜 신라말 선사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맥과 관련하여 이덕진 씨는 동리산문의 대표적 선사이며 우리 나라 풍수지리설의 원조로 받들어지는 선각국사 도선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그는 "도선은 동리산문 문도가 아니며 나아가 그 실재가 의심스럽다. 설령 실존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인물이지 동리산문 계열의 인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동리산문에는 혜철-도선-경보로 이어지는 옥룡사 계열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선의 정체성 모색'이라는 목적으로 진행될 이번 작업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고 근현대 부분까지 포함해 매년 한 차례씩 정기학술대회 형식으로 열릴 예정이다.

권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