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렬 (극작가.현대불교 논설위원)

사형제도가 ‘모든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구현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 부합할 수 있는가.

1994년 10월 10일의 강주영양(9세) 살인사건과 관련 구속.기소된 피고인 4명중 3명에게 95년 2월 24일 오전에 부산지법은 무죄를 선고했다.

주범으로 지목돼 구속.기소된 원**(24세), 공범 옥**(27세), 남**(19세 D여전 비서과) 피고인 등 3명은 살인누명을 벗었고 죽은 강양의 이종 사촌 언니이자 앞의 3명과 함께 범행을 했다고 최후 진술 때까지 주장했던 이**(19, 여) 피고인에게는 살인죄를 적용,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형(무기형)보다 높은 사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137일만에 제 1심이 모두 끝났다.

결국 검.경 실적위주의 짜맞추기식 수사였음이 드러났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ㆍ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흉악범으로 몰아 공소유지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사건에서 형사법이 이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얼마나 지켜주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미국에서도 1976년 사형제도가 부활된 이후 800여명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그중 102명이 무고한 시민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사형수의 대부분이 가난한 서민들이었으며 일부는 정신질환자 였다는데 우려와 불안이 교차한다. 한마디로 말해 부처님의 생명존중사상에 어긋나는 사형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형제도가 폐지되고 있는 추세이다. 전 세계 105개 국가에서 이미 사형제도가 폐지되었고 국내에서는 현재 사형수가 서울 구치소를 비롯해 부산.대구.광주 교도소에 60여명이 분산 수감되어있는 실정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인권정부’에 들어와서 단 한번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번 대선 이후 김영삼 정권말기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던 점에 비춰 올 대선 이후에도 대거 사형이 집행될 우려가 크다.

지난 10월30일 국회의원 154명의 서명으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입법화과정을 밟게 되었다.

이날 제출된 특별법안은 ‘모든 법률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과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관이 흉악범을 재판할 때 범죄의 종류와 죄질에 따라 복역 후 15년까지는 가석방, 사면, 감형을 금하는 선고’를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과 인간이 인간이기를 스스로에게 부여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경시하는 자기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세이다.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가 흉악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한마디로 말해 아무 효과가 없다.

살인범죄는 계속 늘고 있으며 이 사회가 범죄를 모방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으며, 사형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따라서 사형제를 종신형으로 대체해야 한다. 사형제도란 범죄의 원인을 따져야 하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직설적이고 간단하게 풀어가려는 정치적 해결책 이상의 의미는 없다.

11월 30일은 전 세계 인권단체들이 정한 ‘사형제도 폐지의 날’이었다.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앰네스티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도록 촉구하고 특히 사형제도 폐지를 권고하는 내용의 권고문을 발표했다.

이즈음 우리도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증오의 문화를 사랑과 자비의 문화로 바꿔가야하는 사회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