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씰’.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비록 서구에서 들어온 것이긴 하나 우리네 ‘십시일반’의 전통과 맥이 통한다.

크리스마스 씰은 산업혁명 이후 전 유럽에 결핵이 만연했을 때,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이었던 아니날 홀벨이라는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연말 우편물에 동전 한 닢 짜리 실을 붙이면 결핵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살릴 수 있겠다는 발상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인 1932년 12월에 캐나다인 선교사 셔우드 홀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성금 운동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53년에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파는 방식. 아직도 학교를 중심으로 강매에 가까운 판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런저런 이유의 모금이 많은데 더 이상 이런 방식이 계속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인색함에서 나오는 것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더욱이 인터넷의 발달로 우표를 붙이는 편지를 거의 써 본 적이 없는 세대에게는 황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또 문제는 ‘씰’의 판매 목적이 지극히 선한 데 있고, 그 액수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판단의 중심이 흔들리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양쪽의 ‘일리’를 다 고려해 볼 때, 요즘 같은 시대에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결핵 환자는 전적으로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성금을 모으는 방식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두레와 품앗이의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다음 세대들에게 성금 자체를 혐오하거나 자발성을 잃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윤제학 취재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