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현상에 신비롭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른 봄 차가운 눈 속에서 파란 싹을 내미는 머위 등, 봄나물들의 생명력 또한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식물에게도 주변온도에 따라 발열량을 조절할 수 있는 체온이 있다 한다. 식물은 그 체온으로 모진 겨울 추위를 견뎌내기도 하고, 이른 봄철에 열을 좀더 냄으로써 주변의 눈이나 얼음을 녹이기도 한다. 최고 섭씨 40도까지 열을 내는 식물도 있으며 연꽃의 경우 주변온도 섭씨 10도 정도면 32도 안팎의 열을 낸다한다.

겨울추위를 견딘 들풀들이 좀 더 열을 내며 눈을 녹이기 시작하는 때는 언제쯤일까. 그들은 햇볕의 따사로움에서 그 신호를 받을 것이다. 생명력에 보내는 햇볕의 따사로움. 식물들은 그 따사로움에 생명의 발열로 화답하는 것이리라.

봄나물의 대표겪인 냉이는 겨울에 강한 식물로 열도 많다. 따라서 더운 여름엔 잎이 말라 흔적을 찾기 어렵다. 초여름에 낙엽 지는 풀이라 할까. 가을에 생겨난 잎은 겨울로 접어들면서 검은 보라색으로 변해 땅에 납작 달라붙는다. 이 겨울 잎이 겨우내 뿌리를 키우는 것이다. 이렇게 겨울 잎이 뿌리를 길러내고 이른 봄이 되면 그 뿌리가 새순을 밀어 낸다. 새순이 나면 겨울 잎은 시들어 버리는데, 바로 그 겨울 잎이 길러낸 뿌리와 새순이 싱그러운 향과 함께 그윽한 맛을 낸다. 바로 모진 겨울이 길러낸 맛과 향이다.

그래서 냉이의 맛과 향은 지난겨울의 추위와 비례하는 것인지 모른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인 이 땅에서 봄철 냉이 맛은 어쩌면 환경의 건강 도를 잴 수 있는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고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앞으로 우리들에게서 냉이의 깊은 맛을 뺏어갈지도 모른다.

올해, 유난히 빨리 오는 봄을 맞으며 ‘냉이의 맛’을 생각해 본다.

김징자(언론인.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