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징자(언론인. 본지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를 살면서 좀 헷갈리는 단어가 여럿 생겼다. ‘준법’이란 단어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의 노조가 파업을 할 때 ‘준법투쟁’이란 말을 가끔 쓴다. 노조가 법을 지키겠다는데 당국이나 회사, 또는 이용자들로서야 ‘정말 잘됐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고 혼란만 오니 헷갈릴 수밖에. 결과적으로 보면 그동안 그들은 ‘법을 지키지 않았음’을 고백한 것이 되는데, 왜 그들은 법을 지키지 않아야 했던 것일까.

그래,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운다지 않는가. 한국사회에서 법과 현실은 같이 가는 것이 아니고, 법은 법, 현실은 현실, 이렇게 서로 제가끔 따로 가다가 크게 한번 잘못 부딪치면 ‘꽈당’ 큰소리 나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배워온 것이다.

최근 민주당 김근태 고문의 ‘불법 선거자금 사용 고백’ 역시 그런 정치적 ‘준법 현실’을 생각게 한다.

‘아니, 김 고문이 그런 불법을 저질렀어?’ 이렇게 놀라는 사람은 드물다. 김 고문이 비교적 청렴한 정치인이라 해도 ‘정치자금’이란 으레 그런 것이며, 정치적 현실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이제 모르는 국민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인터넷 네티즌들의 반응도 스스로의 불법을 고백한 그의 편에 서는 사람이 많다. 아니, 어떤 이는 ‘과연 그의 불법자금이 그게 다였을까?’ ‘혹시 +알파는?’ 이처럼 순수성을 의심도 한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 가운데 뇌물의 상납구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 이 ‘고백’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정치인이나 언론을 보며 냉소를 날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소년의 90%가 한국을 ‘부패한 나라’로 보고 있으며 언제든 그 대열에 합류 할 용의까지 있다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썩을 대로 썩었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동ㆍ서양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말에 불과하다.

돈을 손으로 만져서는 체면이 아니라던 ‘선비정신’으로 무장돼 있었던 조선시대에도 왕조실록에 보면 뇌물비리가 3천 건을 넘어 헤아린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패방지법’에 해당할, 뇌물방지를 위한 상소문도 수 백건이 발견된다. 구미 선진민주주의 국가라 해서 부정부패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으로 외신은 그들의 온갖 부정부패 사건들을 날마다 전해준다.

그럼 ‘세상 다 그런데 뭐’하고 눈감고 말아야 할까. 그런 냉소주의가 한국사회의 고질적 부정부패 지수를 계속 올려 왔을 것이다.

김근태 씨의 ‘고백’은 이제 썩을 대로 썩은 그 정치현황 속에서 정화의 물꼬를 열려는 ‘참회적 고백’으로 보인다. 그런 참회적 고백은 진작부터 있었어야 했으며 많은 국민들이 기다려 온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고백의 주체가 보다 거물정치인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부정부패를 싹쓸이로 내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질은 사회의 투명성으로 보장된다. 우리는 정치자금에서부터 투명도를 높여 가며 이 사회를 조금씩 정화해 나가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부정부패와 싸우겠다.’는 지금의 김근태 씨에게 부처님이라면 ‘팔정도’의 가르침을 내리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