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사. 새벽 3시 30분, 알람시계가 어둠과 적막을 깨우며 기상을 재촉한다. 준비를 마치고 법당에 오른다.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룬다.오늘도 내 마음에 촛불을 밝히고 법계 한구석에라도 향을 사루게 하소서 발원한다.

고요한 숲속에서 간간이 산짐승의 잠꼬대가 들린다. 정각 4시, 도량석 목탁소리가 숲속의 나무사이를 비집고 멀리멀리 번져 나간다. 드넓은 새벽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맑은 눈들을 앞다퉈 반짝이고 있다. 별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춰보지만 모두 헤아리기엔 어림도 없다. 자신의 존재가 이렇게 작게 여겨질 때도 드물다.

어느 별에서 누군가 이곳을 바라다 보고 있는성 싶다. 소리없이 말을 걸어본다. "목탁소리가 거기까지 들리나요?" 대답이 와도 들을 귀가 모자란다.

이윽고 법당에 올라 종망치를 잡는다. "원차종성변법계...." 목소리를 가다듬어 구성지게 염불을 왼다. 자신이 듣기에 좋은 목소리는 시방법계에도 생기를 돋울듯 싶어 정성을 다한다. 다음은 대종 칠 차례.

"데엥~~, 데엥~~"여러 상념들이 번뇌를 안고 뇌리를 서성인다. 종소리가 계속될수록 상념들은 사라지고 종소리만 남는다. 종소리도 안들리고 종치는 사람도 없는 경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애타게 그것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냥 종을 칠 뿐이다.

예불을 올리고 나면 바로 기도로 이어진다. 정근때도 예외없이 생각의 풍랑이 인다. 풍랑이 심할수록 기도는 더 간절해진다. 얼마가 지났을까. 정근이 매우 빨라질 즈음 축원을 마지막으로 기도는 끝이 난다.

법당을 나서면 이미 아침이 환하게 열려 있다. 숲 사이로 멀리 파아란 바다가 호수처럼 길다랗게 떠있다.부지런한 오징어배는 벌써 환한 불빛으로 수평선을 밝히고 있다.

과일껍질을 내다버린 웅덩이에 가보니 어젯밤에도 어김없이 산돼지가 밤참을 자셨다. 산사로 오르는 길목에는 고라니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새끼 두마리를 데리고 한가히 노닐고 토기와 다람쥐도 아는체를 한다.

방에 돌아와 잠시 선정에 든다. 잔잔한 행복감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이윽고 삽과 괭이를 들고 어제 갈다 만 밭으로 나간다. 흙냄새가 좋다.

흐르는 땀을 느끼노라면 벗어놓을 욕심과 교만도 이미 없다. 계곡물에 젖은 몸을 씻고 나서는 읽다 만 책을 편다. 며칠전 수필가 맹란자선생이 보내온 '사유의 뜰'.읽다가 한 생각이 스치면 위의 여백에 짧은 낙서를 남기고 책장을 다시 넘긴다. 아침공양 목탁소리가 독서삼매를 시샘할 때까지.

도수(정업도량 회주.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