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이래 계속돼 온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올해 마무리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통령이 연내에 주5일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하고 노동부가 적극 나서고 있어 연내 도입의 기대를 갖게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내걸고 투쟁해 온 지 3년이나 됐기 때문에 격세지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반가움 보다는 우려감이 앞선다. 그 우려감은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방식으로 과연 노동시간이 단축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현재까지 나온 정부의 입장을 보면 실질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의지가 있는가에 대해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다. 7월 27일 김대중 대통령이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조속한 처리를 주문하자, 곧바로 7월 28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공공부문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행시기나 적용범위 등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확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재계는 임금문제 및 휴일휴가 문제 등 노사 간에 가장 첨예한 쟁점에 대해 개악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노동부는 11월까지는 법 개정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안은 작년 하반기에도 한번 제출된 바 있지만, 자본측 요구와 동일선상에서 각종의 노동조건들을 개악시킬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핵심적으로 정부는 단계적 적용, 휴일휴가제도 문제, 변형시간제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행 임금 수준의 인상이다. 현행 임금수준을 유지한다고 해서는 유지가 되지 않는 것이 현행임금 수준이다.

저임금 구조가 해소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노동자들은 임금소득 보전을 위해 초과노동을 감수해왔다. 기본급 수준이 총액임금의 절반 혹은 그 이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잔업 및 휴일휴가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임금이 삭감되는 것은 필연이다. 이때 어떤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을 환영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변형노동시간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재계 주장을 뜯어보면 과연 노동시간이 실제로 단축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큰 의문이 드는데, 정부가 이와 같은 주장들을 수렴하는 듯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에게는 노동시간을 왜 단축해야 되는지에 대한 목표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주5일제 도입을 왜 서두르는지 의문마저 든다.

노동시간이 실질적으로 단축되고, 임금수준이 생활 가능한 수준으로 보장되면 사회적으로는 대단히 많은 연관효과를 획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실업 및 반실업 인구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노동조건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방향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인 수준에서 볼 때 커다란 진보가 아닐 수 없다.

생활고 없이 사회 구성원 1인당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면 그야말로 삶의 질은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및 자본측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들은 이러한 방향과는 어긋나고 있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의 경험은 1989년 노동법 개정으로 1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이미 우리 사회가 겪은 바 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실질 노동시간은 1주 51시간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법의 단계적, 차등적 적용과 모든 노동조건 개악 시도들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또다시 그 당시의 오류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은숙(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