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평화의 요새는 인간의 마음속에 건설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UNESCO) 헌장의 서문이 요즘처럼 절절하게 들리는 때도 없다.

연일 아프가니스탄의 공중에는 포탄이 쏟아져 내렸고 탈레반의 주요 거저들은 초토화되었다. 이어서 지상군 투입과 탈레반 병력에 대한 직접 공격 등 다음 단계의 군사작전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이 신문이 독자들에게 전달될 때는 이미 지상전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공격을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빈 라덴 보호의지를 거듭 밝히며 미국의 공격이야 말로 테러라고 주장하면서 이슬람 세계가 미국에 대해 성전(jihad 聖戰)을 벌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 세계 여러 곳에서 반미(反美)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반전(反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반 테러 전쟁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명분과 실리가 반 테러에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도 민간인에 대한 공격과 대량살상을 금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오랜 규범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6천명이상의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한 반문명적 테러 행위를 응징하고 이를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는 명분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한편 이번 사태는 미국과 서방 세계의 아랍 정책과 이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반미 감정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10년 전 헌팅톤 교수가 예측하고 경고한 문명 충돌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전쟁이 직접적으로 문명충돌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미국이 테러를 응징하면서 이슬람 종교나 이슬람 국가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않도록 무척 고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번 전쟁이 테러에 대한 응징일 뿐 이슬람을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이스라엘에 편중돼 왔던 미국의 중동정책이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이슬람 쪽에서도 합리적인 지도자와 국민은 이번 테러를 이슬람과 연관시키는 것은 오히려 세계적 종교로서의 이슬람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따라서 테러 조직과 그 배후 세력의 제거라는 반 테러 전쟁의 목적이 적은 희생으로 빠른 시간 안에 성취될 수 있다면 반미 테러에 이슬람 세계 전체를 끌고 들어가려는 탈레반 정권과 알카이다 조직의 반미성전(反美聖戰) 구호는 호소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성공여부는 미국이 얼마나 이슬람 세계를 성공적으로 포용하느냐에 있다. 이번 전쟁을 시작하면서 부시 미 대통령은 "테러 속에 평화는 없다.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은 이를 위협하는 자들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반 테러 전쟁을 정당화 하였다. 그는 또한 이번 작전명이 "항구적인 자유"(Enduring Freedom)라고 하면서 미국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무차별 테러공격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임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의 반테러 의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전쟁이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는 볼 수 없다. "평화를 위협하는 자를 추적"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보다 더욱 미국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왜 그들이 미국에 대한 자살공격에 나서게 되었는지를 살펴 그 원인치유에 노력하는 일이다.

미국은 아랍세계의 이익과 자존심을 손상시켜온 중동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한 첨단 군사력을 배경으로 미국의 국가이익과 서구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외교정책 전반을 재고하여 다른 국가의 이익과 다른 문명권의 가치도 함께 존중하는 화합과 상생의 외교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테러를 낳게 한 증오심을 잠재우고 미국이 평화적인 세계 건설에 있어서 자신의 지도력을 확립하는 길이라 본다.

정 천 구 (정치학 박사, 영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