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의 동서 정반대의 지점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서진과 동진을 시작했으며, 어디에선가 충돌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160여년 전 불란서의 정치학자 A. 도 똑빌의 전망이었다. 결국 그 충돌 지점이 한반도였으며, 19세기 말에서 오늘날까지 한민족은 계속 그 여파에 시달려왔다. 일본은 재빠르게 국제역학의 흐름을 감지하고 1905년 미국 대통령 태프트(Taft)와 밀약을 맺어 일본이 조선을, 미국이 필리핀을 점유할 것을 다짐했다.

일본은 한반도가 강한 통일국가가 될 것을 은근히 두려워하며, 오히려 방해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미국의 전 대통령 클린턴이 평양 방문을 서둘고 있을 때 일본은 납치 일본인의 문제를 구실 삼아 클린턴의 평양 방문을 방해했을 정도다. 대북한 강경노선을 취하는 부시 정권의 수립은 일본과의 강한 유대를 전제로 한다. 최근 미국 행정부의 교체는 남북문제에 민감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부시는 NMD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 분명하고, 일본 또한 군비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좋은 구실이 된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도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교과서의 개악은 일본 군국주의를 찬미하고 조선의 식민지화를 합리화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보수화와 일본의 우경화는 100년 전의 미일간의 밀약을 상기시키는 구도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의 민족임을 자각해야 한다. 대국적 견지에서 100년의 미래를 내다보고 역사 흐름의 방향을 직시하고 행여나 지역 차별이나 남북한 문제를 정치적 도구로 삼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인류 문명사는 거대한 정보화·국제화의 흐름이며, 때로는 역류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국엔 상생의 길을 걷게 된다. 역사의 시대적 상황 구도는 같아질 수 있어도 결코 시간의 흐름을 무의미하게 되풀이하지 않는다. 순간마다 새로운 선택의 여지가 남겨져 있다. 1세기 전의 한국인과 오늘의 한국인은 같을 수 없으며, 그간 우리는 민족적 역량을 길러왔으며, 미래를 직시하는 이성을 갖추고 있음을 확신하다.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