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碑)가 어디 있는지 소재를 알수 없는 것도 많았고, 또 알게되어 탁본을 부탁하면 잘 해 주는 사람도 있고 관심없는 사람도 있고... 탁본을 어렵게 구해 그것을 원고화 하는 작업에서 한 자라도 잘못 될까봐 직접 비문 글자를 일일이 확인해 원고에 옮겼어요. 교정만도 10번 이상 봤고 다른 본과 대조도 여러번 해 보고..." 지난 7일 한국의 집에서 열린 '1600년 한국불교역대고승비문 총간 회향법회'에서 편저자인 지관스님(가산불교연구원장)이 하신 인사말중 일부분이다. 지나가듯 가볍게 하신 말씀이지만 지난 91년 시작해 10년 가까이 계속한 한국금석문 교감작업이 마침내 완간을 보았지만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至難)했는지를 능히 짐작케 하는 말이다.

이날 법회에 참석한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 김순길 종무실장, 정병삼 숙명여대 교수, 서돈각 진흥원 이사장, 고려대 김정배 총장 등은 종단, 학계, 문화계, 정부 등을 대표해 "역대 고승비문 총집 발간은 불교계 뿐 아니라 학계에도 획기적인 자료로 우리나라 민족문화를 현창할 대작불사"라 찬탄하고 조선시대 불교와 문화사 연구에 획기적인 사료가 완성된데 대해 이구동성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98년과 지난 해 가을, 연이은 조계종 분규로 불교의 위상과 체면은 정말 말이 아니게 구겨졌다. "또 싸워?" 냉소적인 이 한마디로 불교에 등을 돌려버린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올 가을을 앞두고 또 안좋은 일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한 불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가을에는 참으로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불교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난 느낌이다. 성보문화재연구원이 10년간의 작업을 거쳐 한국의 불화 20권을 1차로 완간해 11월 2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사찰의 불화가 도난당해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어느 시기에 만들어졌는지 조차 몰랐던 것이 제반 현실이었던 점에 비추어보면, 사찰의 탱화 보존이라는 점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불화를 한데 모음으로써 사찰을 찾지 않아도 불화에 대한 연구가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또 12월 6일이면 수년간에 걸쳐 진행된 고려대장경 전산화가 마무리되어 디지털대장경시대가 열린다. 이 모두는 그 자체가 어느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대작불사'이기도 하지만 불교, 나아가 민족문화를 풍부하게 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를 활발하게 해줄 소중한 기초자료들이 완성됐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훌륭한 문화 대작불사를 이끌어온 선각자들인 지관스님, 종림스님, 범하스님... 재정, 인력 등 뭐 하나 충분하지 못한 가운데 오로지 원력 하나로 수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회향까지 이끄신 이 스님들에게 국민을 대표해 정부에서 문화훈장으로라도 보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