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신협에 결국 파산 선고가 내려지고 말았다. 법원이 조계사신협의 파산관제인으로 선임한 예금보험공사 직원의 말로는, 조계사신협처럼 전혀 관리가 안된 곳은 처음이라 하니, 파산이 결코 우연이 아니요 너무도 방만한 운영의 결과였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가? 또 앞으로는 어찌 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또 다시 던질 기력이 없을 정도로 불자들의 실망과 좌절감은 심각하다. 이제 단지 신협 뿐이 아니라 불교계가 하는 일은 어찌 이렇게도 곳곳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좀 과감하게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보자. 교계에서 벌이는 사업에서 자주 문제가 터지는 까닭으로 스님들이 불교계의 모든 문제에 운영의 최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스님들은 본질적으로 세속사의 운영에 치밀성을 가지기 어렵다. 아무리 세속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출가자의 속성에는 세속사는 안 되면 버리면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그런 의식 속에서는 어떤 일을 책임지고 끝까지 완벽하게 이루기는 불가능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세속적인 일에서 일체 스님들이 실제적인 책임자의 자리를 맡아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신협도 비록 따로 관리 체계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조계종 종단의 속성상 스님들의 통제 아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관행을 벗어던지고, 일단 어떤 사업 결정이 이루어져 시작하면 철저히 독립된 위상을 가지고 시행되는 체제를 정립해야 한다.

하루 빨리 스님들이 세속사를 관여하는 방식을 벗어던져야 불교계의 사업이 제대로 된다. 그리고 스님들은 어떤 일을 벌여야 하는가, 또 어떻게 불교적으로 벌여야 하는가를 지도하는 본연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사업선택과 사업의 큰 방향에 대한 이념적인 지도 역할에 철저히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역할이 분명히 그어질 때 불교계에서 벌이는 일들이 진정한 불교적 틀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불교계의 사업들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어중간한 출세간의 입장이 세속적인 사업에 끼어들어 얼버무려지기 때문이다. 결코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이 바로 출세간도 살고 세간도 함께 사는 길이요, 불교의 특성이 올바로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