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지나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거듭하여 한 해가 지나간다. 시작할 때는 희망을 가졌는데,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아쉬움이 적지 않다. 후회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새 천년을 맞으며 큰 꿈에 부풀었던 순간이 어제 같건만 덧없이 흘러간 1년을 돌아보며 뉘우쳐 보는 시간을 갖자.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출발선상에서 웅크리고 있듯 그런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과연 불자로서의 신앙심이 얼마나 돈독했으며, 신앙생활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기도는 얼마나 했으며 불서는 몇 권이나 읽었는가. 보살행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남을 위하여 무엇을 베풀었으며, 내 노릇은 얼마나 했는지, 무엇을 어떻게 인내하여 긍지있는 자신을 지켰으며, 과연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마음의 선정으로 부처님의 지혜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 점검해 보자.

출가승려로서의 본분을, 재가신도로서의 의무를 얼마나 제대로 수행했는지 되돌아보자. 각 종단에서는 교육, 포교, 역경의 3대 사업에 얼마나 정진했는지 반성하고, 뜨거운 감자처럼 달아오르던 종립학교관리위와 동국대·중앙승가대 문제도 굉음만 울렸지 여전히 무(無)대책인 것 같다. 교육원의 교육예산마저 줄어들었다는 상황이고 보면 과연 교육 성과를 논할 수 있을까? 화합의 한 방안으로 제기되었던 사면은 진지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새해의 과제로 넘기고 말았다.

신도로서의 의무와 포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되지 못한다면 교세확장은 기대할 수도 없고, 불교의 교리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불교교양대학이 늘어나 신도교육과 포교사 양성에 약간의 고무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으나 연중 논란이 되어 왔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의 발전방향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청년포교의 황금어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군표교에 있어서는 군승 수급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란 가르침에 비추어보니 우리 모습이 참으로 왜소하다.

가장 괄목할 만한 사업은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우리 민족의 보배인 고려대장경을 전산화하여 색인을 갖춘 CD로 제작하여 최첨단 법보를 완성했음이다. 한 출가 수행승의 발원으로 이처럼 거룩한 불사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은 동참자의 인연도 찬탄해야겠지만, 지성껏 발원하면 불사는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출가종단과 재가 신행단체가 모두 자기를 비판하는데 인색하지 말고, 스스로 채점을 해보고 새해를 맞을 수 있다면 한국 불교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