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양국의 교류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 지도적 위치에 있는 스님들을 공식 초청하였다.

한 중 불교교류가 우호의 차원을 넘어 “한국불교를 배워 전통불교를 복원하겠다”는 중국정부 차원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여겨진다.

중국불교는 역사상 여러 번에 걸쳐 한국불교를 수입하여 불교부흥을 도모한 바가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체관스님이 천태관련 전적들을 지금의 항주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던 오월국에 전해 불교부흥에 이바지한 일이다.

고려 의통보운스님 역시 중국에 들어가 지금의 절강성 영파지방을 중심으로 교화활동을 하며, 중국천태종 제15대 조사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과 두 나라 모두 한자문화권에서 문화와 역사를 창달하였기에 그만큼 이질감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중국은 동양사회의 중심국가였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행하는 문화나 사조는 이내 우리 나라에 수입되어 한국역사의 발전에 응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문화의 본류(本流)를 우리가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특히 21세기의 중심지역이 동북아시아가 될 것이며, 이 지역의 공통분모 중의 하나가 불교사상이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불교를 중심으로 인류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망각해선 안될 일이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사회주의 국가에선 종교가 언제나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이 중국문화의 정수로 생각하는 선문화는 한문을 중심으로 하는 한족의 문화이며, 이것의 고집은 국수주의에 흐를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근대불교운동의 기수를 담당했던 구양경무가 “중국불교 패망의 제일 원인은 선종에 있다”고 절규하면서 순수인도불교 이론을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쳤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불교도 자신의 현재모습이 과연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골동화된 한족문화의 박물관임을 자랑하기에 앞서서 다종교사회의 종교현실 속에서 한국불교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게을러서는 안된다.

양국의 불교계가 합심하여 21세기 새 문명을 창달하는 기수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