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헌법재판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이 결정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사후처리의 짐과 향후의 과제를 던져주면서 여러 측면에서 만만찮은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누구도 그 법적 효력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양한 의견과 평가’가 있을 것이라는 언급에서도 그 전조를 감지할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치판에서의 여야 대결은 상생보다는 사생결단으로,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의 싸움으로 일관하는 것이 일종의 관성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러한 충돌과 대결 양상이 여야라는 정당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전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어 과거와는 그 양상이 확연히 달라진 하나의 정형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집권층이 안정을 선호하고, 야당은 변화를 요구하였지만, 오늘날은 대
차라리 조금 배워 도리(뜻)를 이해할지언정, 많이 배우기만 하고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과외교사 8백여 명과 학생 3천여 명을 회원으로 모집, 과목당 1백만 원 이상의 고액과외를 알선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여기에 유명 인터넷 과외알선 사이트가 검정고시 출신을 명문대 졸업자로 둔갑시키는 등 교사들의 학력은 물론 학원 강의경력까지 위조했다. 그야말로 삐뚤어진 사교육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뻔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있다. 한 문제라도 더 맞춰서 좋은 대학, 직장에 취직해야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다. 교육이 지나친 입시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교육이 ‘돈
■논설위원 기명사설 성태용(건국대 교수) 이명박 서울시장이 수도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서를 낭독하여 규탄을 받더니, 이제 또 정장식 포항시장이 포항시를 기독교 도시로 만들자는 모임의 창립을 주도하는 등 종교편향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참으로 공직자들의 기본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과 공직자가 그 공적인 지위에 있는 한 종교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이를 어기는 공직자는 단순히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공직자의 기본 윤리와 강령을 어겼다는 점에서 엄한 징계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문제들이 종교 사이의 갈등과 오해의 깊은 골을 만드는 것은 모든 종교에 다같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혹
■불자 세상보기 김징자(칼럼니스트) '순결을 소중히 하는 고귀한 성품을 지닌 여성과 천박하고 타락한 여성이 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여성을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누었다. 어처구니없는 편견이 아닐 수 없다. 여성들조차 여기에 익숙해져 이를 의심해 본적이 드물다. 아내에게는 순결을 강요하고, 밖에 나가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타락한 여성’을 필요악이란 이름으로 두어왔던 남성중심 사회가 만들어 낸 이중규범의 억지였다. 현대에 들어 페미니즘이 등장, 이 뿌리 깊은 편견을 바로잡으려 노력해 왔다. 도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이제 '그것이 편견'임을 사회에 널리 인식시키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전의 '윤락행위 방지법'이며 얼마 전 시행에 들어간 '성매매 금지법'도 한국 페미니
성수대교 참사 10주기 “복이 화를 낳는다는 것은 편안하고 느긋할 때 사치와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교만하고 게으름이 극도에 달하기 때문에 재앙이 생긴다는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온 국민을 충격과 혼란 속에 빠뜨렸던 ‘성수대교 참사’가 10주기를 맞았다. 느닷없는 다리 붕괴사고로 3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던 참사의 피해자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희생자 출신고교의 학생들은 21일 참사현장에서 추모행사를 열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남겨진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아, 이들은 추모행사 내내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이날 유가족들이 추모사를 통해 밝힌 바람은 한 가지. 바로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범부들은 소견이 잘못된 까닭에 사견을 바로잡지 못하고 오직 어리석은 짓만을 생각해 무익한 일을 구한다. 우리나라 고교생 3명 가운데 1명은 ‘한민족의 첫 국가는 고구려’로 꼽고, 4명 중 1명은 ‘한국이 사용한 문자는 한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유기홍 의원(열린우리당)이 전국 고교생 1052명과 재일교포 고교생 2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확인된 결과다.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이해도도 극히 낮게 나왔다. 173명(16.4%)은 9세기에 고구려에 버금가는 영토와 문화를 이룬 ‘해동성국’ 발해를 당나라의 속국으로 답했고, 15.1%(159명)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 ‘잘 모른다’거나 ‘확실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웰빙 바람이 불면서 ‘행복’이 삶의 핵심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과 테러로 지구촌의 긴장이 높아가고 나라의 경제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아 ‘행복’에 이르는 길은 아직 멀고 힘들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불교신문은 창간 1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전국 사찰의 신도회, 청년회, 신행단체, 직장직능단체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자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재가불자들의 평균 행복지수는 63.9점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2003년 호서대 김명소 교수팀의 조사에 의해 밝혀진 한국인의 평균 행복지수 57.7점 보다 제법 높은 수치이다. 이 두 수치의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긴 하지만, 행복지수를 산출하기 위한 등급 분류 방식이 같고,
2001년 처음으로 시행된 조계종 3급 승가고시가 올해로 4회를 맞았다. 그동안 승가고시에 합격하여 고시산림을 마치고 중(정)덕 법계를 품서한 스님들은 1000명에 달한다. 처음 승가고시를 시작할 당시의 우려와는 달리 대부분의 스님들이 수희동참하여 고시산림이 원만히 시행되고 있다. 이는 종단의 구성원들은 물론 신도들과 사회 일반에서까지도 종단의 미래에 희망적인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이라 할 만하다. 승가고시산림이 실시된 이후 통과의례적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으나 회를 거듭하면서 평가방법이 강화되고 산림의 체계도 보완되면서 탈락자가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종단과 고시위원회가 엄격하게 수행질서를 세워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도 지난 번 고시산림을 보완·개선한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가장
남이 내 어여쁜 누이동생이나 아내를 욕보인다면, 내 마음이 기쁘지 않을 것이다. 온갖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보살은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남의 여인에 대해 그릇된 생각이나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마련이니, 항차 어찌 간악한 일을 행하겠는가.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일주일간 240건의 성매매영업과 468명의 성매매사범이 단속에 걸렸다. 단속에 적발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면, 특별법 시행 이전이나 이후나 성매매에 대한 인식과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국민들 역시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인 엠파스가 ‘특별법으로 성매매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가’를 주제로 진행 중인 인터넷 투표 결과 9월 3
경제위기 확산, 과거사 청산 공방, 수도이전 논란, 병역비리 파문, 남북 핵문제 등등 대한민국은 지금 수라장이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나라가 온통 벌집 건드려 놓은 것 같아 머지않아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러한 국가·사회적 위기가 모두 대통령과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산사에 까지 들려온다. 물론 국가적 어려움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과 정치권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대에 어긋나고 있는 대통령과 정쟁으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을 변명해 줄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정치 혼돈과 경제 난국 앞에서 누가 과연 그 책임을 비껴갈 수 있는가.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
문화의 시대라 한다. 우리에게 있어 문화라 하면 세상에 자랑할 것이 있다. 바로 불교문화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 불교문화처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또 그에 걸 맞는 화려한 성과를 낸 부분이 있을까. 그 깊이와 넓이, 이를 당할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들에게 불교문화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거의 무한대와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불교문화하면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만 간주하려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불교는 과연 과거형인가.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일렁거리는 현재형과는 무관한 것인가. 나는 한산한 불교계를 생각하면서 하나의 정책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키워드는 '감동'이다. 감동을 주어야 한다. 감동이 없으면 움직이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감동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하여
독일의 교육제도는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국민학교(Volksschule)가 4년 과정이고 이 과정이 끝나면 인문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과 직업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 하우프트슐레(Hauptsschule)로 나뉜다. 인문학교에서는 학문연구나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기초부터 배우고, 대개 법대, 의대, 상대, 기초과학관련 대학으로 진학한다. 또 직업학교에서는 페인트칠, 자동차 수리, 목공 등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분야의 기초와 실기를 배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인문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이 21% 내외라는 것이다. 인문학교와 직업학교에 배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국민학교 4학년 담임교사에게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직업을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하여 중2, 고2 때 학교를 바꾸
제 8회 대한민국 종교예술제가 미술제를 시작으로 개막했다. 관람
곳곳에 현수막, 확성기예불 어지러워 불사권선 지나쳐 거부감 현대의 고도화된 산업사회, 물질만능사조의 팽배, 핵가족화 등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면을 갈수록 황폐화 시키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종교가 제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윤택함을 누리고, 주5일근무제가 확대됨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가선용과 정서함양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산중(山中)불교가 민중불교, 생활불교화 되어가고 있으며, 일반 국민들이 사찰문화와 음식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때, 사찰의 문턱을 낮추어 국민과 호흡하는 정신문화적인 중심체로 거듭났으면 한다. 사찰은 그동안 참배 관람객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던 그동안의 관행을 정비하고, 맑고 향기로운 본모습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첫째, 경내에 어지럽게 걸려있는 현수막
참으로 장하고 자랑스럽다. 또한 면목없고 부끄럽다. 한 고등학생의 학내 종교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처절한, 그러면서도 의연한 투쟁이 결실을 맺어 자신 뿐 아니라 전교생의 예배 참석 자유를 확보해 주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느낄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느끼면서도 그저 어물쩡 넘어갔던 문제에 단호하게 자신의 양심에 따라, 또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나설 수 있었던 그 용기가 이러한 쾌거를 이루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왔던 기성세대들, 그 가운데서도 종교 지도자들은 과연 무엇을 해 왔는지 돌아보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종교 간의 갈등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마치 포교의 자유
지금 한국 사회는 커다란 싸움판 같다. 싸움의 종류와 방식도 다양해서 ‘무규칙이종격투기’를 보는 기분이다. 이라크 파병, 과거사, 국보법 개폐, 행정수도 이전, 고교등급제 파문, 사립학교법 개정, 서울 강·남북간의 격차 등 얼추 생각나는 것만 꼽아도 복잡한 전선(戰線)이 그려진다. 복잡한 전선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다원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과거처럼 민주대 반민주처럼 선명한 대립관계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생략된 뒤늦은 성장통으로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보면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으로 치닫는 측면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과 집단간의 다양한 이해를
설문조사 결과 조계종 스님들의 대부분이 사회복지시설 운영에 뜻을 지니고 있고, 또 사찰이 사회복지시설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들어났다 한다. 불교계의 사회복지 참여와 활동의 위상이 교세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이 현실에서 이러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여러 가지 시사를 준다. 우선은 이렇게 높은 사회복지에 관한 관심이 현실화되지 못하였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의욕은 높은 반면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든가, 사회복지시설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 스님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은 아직도 불교계의 사회복지가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원인을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스님들이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고, 또 많은 전문가가 배출될 수 있도록 종단에
싸움터에서 백만을 이기기보다 나 하나를 이기는 자야말로 최상의 이긴 자이니라. 알콜중독, TV 중독에 이어 이제는 인터넷이 중독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인 싸이월드(www.cyworld.com)는 미니홈피라는 아이템으로 ‘싸이폐인’ 양성소가 됐다. 하루라도 싸이월드에 접속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날 정도로 광적인 네티즌들이 ‘싸이폐인’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은 것. 디씨인사이드의 ‘ 자’로부터 출발한 인터넷 중독집단은 일종의 유행처럼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 중에 이들이 양산해내는 콘텐츠를 접해보지 않은 이들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사진에서부터 합성 사진, 패러디 영상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교 현대사에서 큰 오점으로 남은 ‘폭력성’이 여전히 우리 내부에 잔존하고 있다. 최근 큰 사찰 주요 소임자 스님들과 관련된 두 건의 폭력사건 소식이 들려와 충격을 주고 있다. 전라남도의 한 유력 사찰에서 한 스님이 술을 마신 뒤 재가종무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이 발생했다. 그 스님은 이후 참회를 하고 피해자에게도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힘없는(?) 사찰 종무원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경상북도 소재한 큰 사찰의 스님도 최근 경내에서 다른 스님에게 폭력을 가해 코뼈를 부러뜨렸다고 한다. 지난 2001년 조계종 내에 ‘종단폭력 근절대책 소위원회’가 꾸려져 자성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여전히 불교계 내에서 폭력이 ‘현재진행형’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불교계의 한
“사나이답게 싸우다 장렬하게 죽는다. 알겠나?” “예!” “전원 유서를 써서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 넣는다. 실시!” “실시!” 갓 임관해서 전입온 소대장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데프콘2 발령, 전투개시 직전 상황이다. 제대 특명을 받아놓은 고참병들도 예외 없이 완전군장을 하고 비장한 얼굴로 소대장의 지시를 듣고 있다. 이른바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1976년)이 터졌을 때의 상황이다. 입대 5개월 째, 신병 티를 벗지 못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찢어 몇 장의 유서를 썼다. 우린 모두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어 최전방까지 팔려온 노예였다. 그러나 용감히 싸우다 장렬하게 죽겠다는 결의는 바위처럼 굳고 단단했다. 그러나 전쟁은 터지지 않았고 유서는 불태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