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엽 스님(1869~1971)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스펙트럼이 다채로운 인물이다. 스님은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 현대적 글쓰기와 연기로 성공한 한국 최초의 작가 김명순과 더불어 1세대 자유주의 신여성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해 신식교육을 받았던 김일엽 스님은 언론인이자 작가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1933년 수덕사로 출가해 구도자의 길을 걷는 비구니 스님이 됐다.그간 김일엽을 연구한 학자들은 신여성으로서의 김일엽과 스님으로서 김일엽을 별개의 인물로 놓고 연구하거나, 출가 이후 김일
계간 〈시와 세계〉 겨울호에 ‘어매의 어매’ 외 5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여태동 불교신문 논설위원이 첫 시집 〈우물에 빠진 은하수 별들〉을 펴냈다.시집에는 기쁜 일도 많고 곡절도 많은 우리의 일상을 활달하게 노래한 시 65편이 실렸다. 상념은 감추지 않고 상념 그대로 드러나고 그러면서 선취와 파격이 있다. 또 자연의 시은에 감사하는 소박한 농심이 있고, 고향의 언어는 실감나고 따뜻하다.언론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 불교의 자비와 이타심 그리고 농부로서 생태와 환경에 관한 고민이 어우러졌다. 여태동 시인은 시를 통
2014년 〈시와경계〉로 등단한 진효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지독한 설득〉이 도서출판 애지에서 출간됐다.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픔과 슬픔이다. 일상의 도처에서 아픔이나 슬픔을 감지하는 시인의 감각은 집요하고 예민해서 아픔이나 슬픔이 감상이나 비애로 추락하지 않고 긴장감을 획득하면서 아름다운 시로 빚어진다. 이를테면 빗물 속에 떨어진 칸나꽃을 보면서 “바닥에 떨어진 자기 혓바닥을/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거나 바람에 밀쳐진 빨래를 보면서 “구겨진 빨래가 젖은 얼굴로 포개져 있었다”고 표현하는 식이다.동료 시인으로부터 “자기
서울 성북구 흥천사(興天寺)는 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능침사원으로 1397년에 조성된 후 왕실 원찰, 조계종 본사, 선종 수사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조선 초기 최대의 불교 대찰로 너무나 유명했다.흥천사의 능침사원 기능은 태종 때 신덕왕후 능인 정릉이 성북구로 옮겨지면서 새로운 흥천사인 신흥사에 계승됐고 연산군 때 황화방 흥천사가 소실되면서 왕실사원의 기능까지 계승돼 명실상부 성북구 흥천사(신흥사) 시대가 된 것이다. 그후 숙종 때의 중창을 거쳐 고종 때 대원군의 흥천사 사명(寺名)의 복원으로 흥천사는 완전히 옛 흥천사 왕실사원의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 5월 23일부터 1598년 12월 16일까지 약 7년간 이어진 전쟁이다. 흔히들 왜적이 침략해 지난한 전투를 벌이다가 이순신 장군으로 인해 왜적이 패퇘한 전쟁으로 알고 있으나,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이라는 통일국가가 가용한 유·무형의 자산을 총동원한 최초이자 유일한 총력전이자 동북아 최초 국제전이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한·중·일 삼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그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전개가 드라마틱하다보니 임진왜란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현재까지 제작된 임진왜란 영
만남, 동행, 기다림, 사랑,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최명숙 시인의 목소리가 따뜻한 감성의 언어로 탄생했다. 〈사람이 사람에게로 가 서면〉에는 한 계절을 절집에서 보낸 노 여행자 이야기,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들과 귀향 이야기, 화두처럼 찾던 길에 대한 단상들, 잊지 못한 사랑 이야기, 몽골평원에서의 이야기와 귀가 들리지 않는 몽골 소년과 맞은 저녁의 그리움 등 시인의 곁에 왔다 간 것들이 시로 담겼다. 그저 평범해 보였던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시인의 마음에서 꽃처럼 피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노래가 돼 다가온다. 선한 시심
“작은 빛 하나가 온 하늘을 밝힐 순 없어도…작은 시작이 되어 줄 거야!”는 어둠을 다루고 있다. 그 어둠은 불을 다 끈 뒤 아이 혼자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와 같은 말 그대로 어둠일 수도 있고, 풀이 죽거나 외롭거나 절망하거나 위험할 때 아이 마음에 깃든 어둠일 수도 있다.어떤 어둠과 맞닥뜨리든 언제나 희망이 있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희미하게 깜박거릴지라도 분명히 빛이 있다고, 그 작은 빛으로도 자신감을 기르고 자기 앞의 세상으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 안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작은 빛을 기억하기만
세상 모든 소리를 듣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33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자비의 상징, 관세음보살. 모든 질병과 삿된 기운을 물리쳐 주는 양류관음부터 어민이나 항해하는 상인들을 보호하는 아뇩관음까지 에는 33관음응신이 담겼다.관세음보살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명호만 불러도 큰 덕이 온다고 한다. 붓다아티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기란 작가의 관세음보살은 조금 더 특별하다. 친근하고 편안한 모습의 관세음보살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다독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남에게 털어놓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이 밑바닥까지 내려간 이야기라면 더욱더. 자전 소설 〈빛과 소녀〉를 내놓은 최다경 작가는 어릴 적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20년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한국과 독일을 오고 가며 여러 번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잊으려 해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고, 덮으려 해도 당최 덮어지지 않는 그 시간대를 그저 인생의 침체기, 무덤, 함정, 암 덩어리라 여기며 의식 저편으로 밀어 넣고 달리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던 작가는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상처는 희미해졌지만 다시 꺼낼 용기
“겨우내 난방하지 않은 천막에서 옷 한 벌로 생활하며 하루 한 끼 공양하고 14시간 이상 정진한다. 정진이 끝나는 날까지 묵언해야 한다.…이를 어길 시 조계종 승적을 반납하겠다는 각서와 제적원을 제출한다.”2019년 11월 11일 기해년 동안거 입재일. 위례 신도시에 자리한 상월선원 부지에선 상월결사 회주 자승 스님을 비롯한 아홉 스님이 풍찬노숙 천막정진에 들어갔다. 하루 14시간 이상 정진, 하루 한 끼 공양, 단벌 정진, 삭발·목욕 금지, 외부인 접촉 및 천막 출입 금지, 묵언이라는 혹독한 청규를 세우고 한겨울 목숨 건 수행에
누군가는 전국 곳곳에 자리한 사찰을 ‘숲속의 박물관’이라 칭한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불상과 불화, 전각 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절집에 자리한 보물은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가 ‘문득’ 찾은 사찰에서 ‘으레’ 지나쳤던 것들, 이를테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를 절 마당의 돌기둥이나 단순한 장식으로 보이는 지붕 위의 오리 조각, 불상 앞에 놓인 탁자는 물론 절집의 일상을 보조하는 계단, 석축도 우리 역사 속의 보물이라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
종교에서 ‘의례’는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행·신앙 체계를 구체적 실천행위로 보인 것이다. 넓게 보면 예배행위를 비롯해 해당 종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상용의식, 생활의례 등이 포함된다. 이 같은 의례에 참여함으로써 신자들은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며, 교단에 대한 소속감과 동질의식들을 형성하게 된다. ‘의례’가 바르고 정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계종 어산종장 혜천 정오 스님(한국불교전통의식전승원 학장)과 우천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 교수가 공역한 〈불교상용의식해설: 예식의궤를 중심으로〉는 바른 불교 의례를 위한 노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