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하면 신랑얼굴이 바뀐다.’ 어떤 TV광고에 한 학교의 급훈으로 이런 내용이 떴다. 아울러 지독히 못생긴 신랑과 결혼하게 되는 꿈을 꾼 여학생이 기겁을 해서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것보다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 무척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이 광고를 보면 남자들만 예쁜 여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잘난 남자를 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가 환영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기야 예뻐 보여서 손해 볼 건 없다. 얼마 전 자동차가 고장 난 것처럼 길가에 세워놓고, 지나가는 차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반응실험을 본 적이 있다. 옷 잘 입고 예쁜 여자와 대충 헐렁한 옷에
{image1}_c현대불교신문이 계속 발간된다. 운영 주체인 한마음선원이 커다란 용단을 내었다. (주)현대불교신문사는 12월 23일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신문사측의 자구책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주)현대불교신문사 이사회는 경영상의 비효율과 누적되는 부실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폐간을 결정한 바 있다. 지난 12년간 ‘현대불교’가 포교와 불교문화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었기에 이런 사태를 아쉬워하는 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폐간 유보결정을 들으니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현대불교’가 원력과 그간 축적한 노하우로 더 좋은 신문으로 불교계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며 새 출발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새 길을 모색하고 있고 한마음선원 역시
오랫동안의 독일유학을 끝내고 5년 전에 우리나라로 돌아왔을 때 불교계에 있어 가장 눈에 띄었던 현상 중의 하나가 불교미디어의 활발한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불교계가 사회의 변화에 눈을 막지 않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처럼 느껴져 고무적이었다. 나는 90년대 말에 불교계에서 여러 부끄러운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음에도 왜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이 미약하나마 불고 있고 그나마 신자수가 격감하지 않았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감시자로서의 불교언론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라고 보인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만큼 일반인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워그룹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비록 불교계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불교계 언론이 재정적으로 아직 독립되어 있지는 못
현대불교신문이 신판 대장경입니다 2년 반의 긴 횡설수설을 어떻게 마감할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여왔습니다. 현대불교신문을 폐간하겠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등불 하나가 위태롭게 깜박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그리고 사부대중 여러분, 그래도 될까요. 1. 왜 현대불교신문인가 터놓고 물어봅시다. 지금 불교는 어디 있습니까. 불교가 어디에서 시퍼런 생명력을 얻고 있다고 보십니까. 사찰입니까, 점에 진열된 불교책들입니까, 스님들이 들고 있는 간화 속에 있습니까. 사찰은 다만 경배의 공간이고, 책들은 일방적 훈계이며, 간화는 일초직입의 예외적 말후구(末後句)입니다. 여기 공통되는 것은 ‘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오직 ‘소통’하는 것, 그 현장에만 살아있습니다. 나머지는
불교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있다. 오색단청의 사천왕상과 괴기한 명부전, 칠성각과 산신각 등 고색창연한 불교의 이미지이다. 천년 전에 성장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한국불교. 샤머니즘과 결합된 불교, 따라서 한민족의 무의식에 면면히 흐르는 정서로서 자리잡고 있는 불교. 외국인들이 한국 방문에서 가장 한국적인 문화 체험으로 한국의 고즈넉한 사찰을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허지만 전통문화의 보고요 지킴이로서 불교의 현재 얼굴은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고 있고 자랑하고 싶지 않은 천덕꾸러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국 불교를 현대화시켜 한국인의 삶에 다시 뿌리내려보겠다는 서원을 세운 분이 한마음선원의 대행 스님이다. 사찰 건립이나 불상 제작 등이 불사의 전부인 줄 알던 시절에 그 분은 선각자처럼 기
창간 12년을 맞는 ‘현대불교신문’이 폐간의 기로에 서 있다. 1994년 ‘불교의 생활화, 현대화’를 기치로 출범하여 불교언론의 새 장을 열어왔던 그 ?기개?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 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불교신문’의 운영주체였던 한마음선원은 지난 12월7일 신문의 해산결의를 통보하였고, 그로부터 3주후에 자동폐간 된다고 언명하고 있다. 지난 12년동안 ‘현대불교신문’이 이룩한 문화적 업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 정도로 지대하다. 제호(題號)처럼, 정법(正法) 불교의 정착과 불교의 현대화를 향한 값진 발자취였음을 이천만 불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폐간조처는 비이성적일뿐 아니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몰상식적 처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폐간선언의 과정을
12월 1일 열린 조계종 제3차 간화선 세미나에서 조명제 박사(부산대 강사)는 ‘간화선의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발제하면서 고려 ㆍ중국 송대ㆍ일본ㆍ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간화선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진단하고, 전근대 동아시아 간화선의 역사적ㆍ사상적 한계와 불교 근대화의 과제와 조계종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이상호씨(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는 조명제 박사의 발제 내용에 몇 가지 문제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며 이에 대한 기고문을 본지에 보내왔다.[편집자주] {image1}_c조명제 박사의 논문(이하 논자)은 중국 송대, 고려,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간화선과 사회적 관계에 대하여 깊은 고찰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논문은 지금 이 시대의 간화선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도 시의
{image1}_c지난 2개월간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빛고을의 무명을 지혜의 빛으로 밝혔던 2006 빛고을불교아카데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 부처님의 십대제자를 주제로 했던 05년 아카데미에 이어 올해는 를 대주제로 부처님의 생애를 팔상성도에 따라 살피는 강의가 8회에 거쳐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2005빛고을불교아카데미를 개강을 준비하며 모두가 가졌던 불안감을 생각하면, 이번 회향에서 느꼈던 자신감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아카데미가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불교아카데미를 준비하던 시기의 광주지역불교계는 불교대학들의 침체와 몇 년간 대규모 대중법회의 동참자 부진 등 불교대중들이 대규모로 동참하는 법회나 교육 과정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
지난 11월 15일 열린 재심호계원의 판결에 대해 ‘종정기구의 전횡’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수국사 전통사찰부지 매각으로 고발된 자용 스님에 대한 초심의 제적 결정을 뒤엎고 공권정지 2년을, 공권정지 10년을 받은 현도 스님에게는 공권정지 1년이 각각 결정됐기 때문이다. 또한 우이동 보광사 폭력 사태로 초심에서 공권정지 7년을 받은 현중 스님에게는 문서 견책으로 징계 수위가 낮아졌다. 이번 판결을 두고 ‘삼보재정 유실 방지’와 ‘폭력 사태 엄중 처벌’이라는 종단의 의지를 무색케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단체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 11월 23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호계원장이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권능을 이용해 원칙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심판을 내린 것은 호계원의 권위 실
수목장, 말도 참 많다. 실상 말이 많다는 게, 유행처럼 이야기된다는 게 문제이다. 한 문화권이나 사회에서, 돌아가신 분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모실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장법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거나 도입되어 시행되고 정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수목장에 대한 담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장법인 양 회자되기도 한다. 물론 여러 면에서 이상적이다. 문제는 이상적인 만큼 현실성에 대한 검증, 즉 많은 국민들이 수목장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며 행여나 또 다른 폐단을 만들어 내지는 않겠는가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선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이상적인 것도 관점을 바꾸어 보면 이상적이지 않을 수 있고 또는 처음엔 이상적
최근 MBC ‘PD수첩’이 ‘달마가 홈쇼핑으로 간 까닭은?’ 편을 통해 수맥 차단 효과를 강조하며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달마도가 수맥을 차단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방송위원회 역시 최근 비과학적 내용의 달마도 홈쇼핑 광고를 방송하는 홈TV방송의 채널 홈드라마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달마도의 상품화가 시작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때 일부 방송에서 수맥차단 효과를 공공연하게 떠들어 달마도의 판매 호황을 이루기도 했지만 불교에서 수행의 일환인 달마도를 신묘한 효능을 가진 부적취급하며 상품으로 다루기에 달마도의 본질을 외면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달마도 수행을 해온 범주 스님(속리산 달마선원장)이 달마도의 상품화를 우려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편집자주] {image
개인은 헌법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와 권리를 갖고 있다. 굳이 헌법을 들먹이지 않아도 자연법적으로도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천부적으로 타고 났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파 좌파, 라이트니 레프트니, 어떤 쪽에든 관심과 지지를 나타낼 수도있고 이의와 반대를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지난 11월 6일 모임을 가졌던 ‘불교라이트연합’ 준비행사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런 참견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그러한 모임에 공개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인 모습으로 종교인들, 특히 스님들께서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 광경에는 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직자들도 국적과 시민권을 가진 국민인 이상 개인적으로 어떤 정파(政派)에 대해 사적인 자리에서 개인의 의견을
제14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갔다. 종단 정치로부터 먼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왜 ‘회오리바람처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가? 이번 선거와 관련된 이런저런 소리들을 어쩔 수 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고 들은 소리들이 모두 종단의 앞날을 걱정해야 할 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선거과정을 말로만 전해 들었지만, 마치 회오리바람이 들판을 휩쓸고 가듯 선거가 그렇게 치러졌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선거와 돈, 세간의 선거든 출세간의 선거든 돈의 개입에 따른 부작용은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세간의 선거에서는 금품을 주고받으면 50배의 벌금을 물리는 등 강력한 법적인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러나 출세간의 선거에서는 금품과 관련한 제도를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승가의
전통 화엄경 해석의 문제점 이종린(홍익 소아과 원장, 보현행원 수행자) 은 대단히 난해한 경전이라 해석이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화엄의 대가들이 분류와 해석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필자가 보기에 전통 화엄경 해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엄을 ‘차제법문(次第法門)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때문에 광활한 화엄이 왜곡되고 화엄의 뜻을 제대로 전달 못하는 우를 범하는 되었다고 본다. 의 전통적 해석을 보면 은 모두 일곱 장소에서 설해진다. 즉 지상에서 천상으로, 다시 지상의 일곱 곳에서 설해지며 여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해석은 경을 이해하는데 대단한 모순을 자아내는데, 이런 식으로 보면 화엄은 당연히 ‘차제법문’이 될 수밖에 없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다시 지상으로 오신
{image1}_c얼마 전 참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보도 하나를 접했다. 불교교단은 물론 우리 사회에 이미 보편화된 보통명사의 ‘대학’명칭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인가없이 사용하는 일이 단지 고등교육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불교대학을 ‘가짜대학’이라는 이름 하에 문제있는 집단으로 매도한 지난 9월 마지막 날 밤의 sbs 보도가 그것이다. 특종 내지 속보경쟁을 업으로 삼는 그들의 속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사회를 계도하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언론의 본질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보도에 앞서 한번쯤은 취재대상의 정(正)과 사(邪)의 여부를 세밀히 살펴봄직한 시각과 지혜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헌데, 그날 접한 보도는 단순 가치기준에 모든 것을 짜맞추는 그야말로 ‘꺼리’를 찾는 그들의 속성을
{image1}_c송광사 광주포교당 원각사는 광주의 중심 충장로에 자리한 도심포교당이다. 평소 도심 포교는 물론 불자들의 올바른 신행을 위해 고민하던 중, 현대를 살아가는 재가자들의 신행을 재가자들의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원각사는 금년 들어 대웅전 중수, 누각 건립 등 숙원불사를 마치고 이를 기념해 ‘재가논강’을 준비했다. 원각사 재가논강은 ‘재가불자 신행생활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8월 11일부터 주 1회씩 육바라밀을 중심으로 6회에 걸쳐 펼쳐졌다. 이번 원각사 재가논강은 다른 지역에서 시도된 논강과 몇 가지 측면에서 면면을 달리하고자 했다. 먼저 승가 위주였던 논강의 논주와 토론자들을 재가자 중심으로 꾸렸다. 광주 전남에서 활동하는 각 신행 단체와 불자들이 직접 나와 자신의 신
{image1}_c미국 현지의 조계종 사찰들이 법인 형태의 ‘미주승가회’를 결성하고 조계종 ‘해외특별교구’의 모체로 삼겠다고 밝혔다. 현지인 포교 활성화와 사설 사암의 창건주 입적 후 재산 망실 등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만나서는, “재산관리나 행정지도 등 조계종의 관리 감독을 받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총무원장 스님은 “미주승가회의 제안과 사업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아귀가 딱 들어맞는 답이다. 그러나 지극히 옳은 답이 대부분 그렇듯, 현실적 실현 가능성과는 무관해 보인다. 포교 활성화와 삼보(三寶) 정재(淨財)의 호지라는 동기와 명분을 보면, ‘조계종의 관리 감독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해도 역시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
지리산 벽송사가 근래 한국불교에서 사라졌던 ‘선회(禪會)’를 9월 8~18일 산철 결제기간 동안 복원했다. 선회는 안거가 끝난 산철기간 동안에도 실참을 병행하면서 교학 강의와 논강으로 선과 교를 닦는 오랜 전통이지만 불립문자, 사교입선이 강조되면서 해방이후 한국 선원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벽송사 주지 월암 스님과 함께 ‘벽송선회’를 마련한 법산 스님이 ‘선회’개최의미를 담은 기고문을 보내왔다.[편집자주] {image1}_c요즈음 간화선 수행에 대한 새로운 열기가 확산되고 있음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고려시대 보조지눌(1158~1210)이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참선 정진하는 막바지에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마치 원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는데, 마침 송나라 대혜종고(1089~1163)의 을 보다가 깨달
{image1}_c우리는 현재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정보의 공유가 가능하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어우러진 복잡하고도 속도감 있는 다원(多元)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의 젊은 세대를, 바른 안목을 가지고 개인의 생명력을 신장(伸張)하며, 조화와 평화의 사회를 구현해가는 인재로 키워나가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과제이다. 종교는 인간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며, 인간으로서의 자긍과 자기발현을 돕고, 이웃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면 그 사명을 다한다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교와 선교를 위한 ‘종교교육’이 아닌, 종교를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종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일찍이 불교계에서, 인류최초로 인간존엄을 선언하고 자유로 이끄신 부처님의 정신에 따라 여러 학
{image1}_c최근 아랸야선원에서는 김장용 무 밭과 배추밭 일구는 일을 했다. 귀농생활 몇 년에 접어든 부부가 도와주어 쉽게 마쳤다. 부인인 보살은 어떻게 하든지 남편을 참선방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농부생활 몇 년째 접어든 그는 구릿빛 피부에 농사일도 예사 솜씨가 아니다. 땅을 파고 비닐치는 일이 프로급이다.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사에게 참선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점을 알았다. “농사일을 잘하는 사람과 함께 농사지으면 농사일을 잘 합니다. 마찬가지로 공부 잘하는 사람과 지내면 공부도 잘 합니다.” 소설가 김동리씨, 그는 한때 최범술 스님이 주석한 다솔사에 머문적이 있는데 이때 참선을 하려 했으나 다리가 아파서 못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인가 축구를 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