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분단이후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상당히 급하게 마련됐다. 현 정권의 임기가 불과 반년을 남기지 않았고 바야흐로 대선정국으로 흘러가는 시점이다. 이 와중에 급하게 마련된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국내 정치계는 정치적 계산이 앞서고 경제계는 좋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불교계는 정상회담 발표 이후 일제히 환영의 논평을 쏟아냈다. 종단협의회는 물론 각 종단이 각각의 환영을 표했다. 7년 전의 정상회담이 세운 비석은 ‘6.15정신’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근본으로 하는 6.15 정신의 실현을 위해 남과 북은 7년간 무슨 일을 해 왔는가 돌아보면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다. 남쪽은 여전히 많은 것을 오려 보냈고 북쪽은
제불 보살이시여! 올 여름 한국은 뜨겁습니다. 23명의 동포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의 인질이 된 순간부터 이 여름의 뜨거움은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납치 14일이 지난 이 시점, 남자 2명이 살해되어 시신으로 돌아왔고 나머지 21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사막의 기지나 동굴로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협상은 무기력하기만 하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주변 이슬람 국가 그리고 미국과 일본 등 우방들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억류된 동포들의 생명이 태풍 앞의 촛불입니다. 협상 시한이나 조건 등 모든 상황이 테러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고 보면, 우리 국민과 자유를 숭상하는 인류의 안타까움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입니다. 제불보살이시여! 온
“국립공원입장료 폐지 후 전년에 비해 탐방객이 50%증가 했고 불법무질서행위 단속 실적은 139% 안전사고는 37% 증가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지 6개월. 아직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위의 수치는 ‘입장료’와 운영실태의 함수 관계를 대변한다. 요약하면, 입장료 폐지로 인해 탐방객은 물었지만 각종 불법행위와 안전사고도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정부차원에서 국립공원 관리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하나의 개연성을 본다. 지금 일부 시민단체가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폐지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 폐지가 능사가 아니라 마땅한 대책을 먼저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덜컥, 입장료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매우 민망스러운 사진 한 장이 떠돌고 있다. 부산의 한 지하철 역 구내에서 십자가를 든 ‘빨간 조끼’의 남자가 탁발을 하는 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 속 ‘빨간 조끼’의 남자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지만 스님의 얼굴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경전을 읽는 스님 표정은 참담함 그 자체로 읽힌다. 반면, ‘빨간 조끼’의 남자는 스님에게 회개내지는 개종을 종용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기독교 내부의 정서와 상관없이, 갈수록 극성스러워지는 전도 행위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서고 있는 지경이다. 경기도에서 NGO 활동을 하는 한 스님도 인근 지역 교회의 책임자로부터 개종을 요구 받았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대학원도 보내주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가 서울 시장 시절의 ‘서울시 봉헌’ 발언과 관련, “송구스럽게 생각 한다”고 말했다. 7월 19일 국민들의 관심 속에 진행된 ‘예비후보 검증 청문회’에서다. 이 후보측이 배포한 청문회 녹취록 자료에 따르면 검증위원인 동국대 교수 보광 스님이 “(서울시 봉헌 발언은) 정서적 도덕적 문제이기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모든 종교가 오해 없이 화합할 수 있도록 하고 불교계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일 하겠다”고 답변했다. 사과를 요구했는데 자신의 심경만 밝힌 셈이다. 이 후보의 ‘서울시 봉헌’ 발언은 2004년 5월의 일이다. 3년이 넘은 지금, 이후보가 검증 청문회라는 피할 수 없는 관문에서
조계종이 강원도 고성에 대규모 국제템플스테이 센터를 설립하고 서울의 조계사 인근에는 템플스테이 종합정보센터를 세운다고 밝혔다. 모처럼 의미 있는 불사를 종단차원에서 기획한 것 같아 반갑다. 한국 불교의 세계화, 이 화두를 푸는 키워드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크게 보면, 해외로 나가 직접 한국불교를 알리는 방법과 외국인들을 국내로 들어오게 하에 한국불교의 맛을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경우 언어의 장벽을 비롯해 갖춰야 할 조건이 많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가장 한국 불교다운 면모를 고스란히 그들에게 체험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면 족하다. 그 방법으로는 당연히 템플스테이가 꼽힌다. 템플스테이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철저한 체험을 통해 불교가 추구하는 진리의 근원을 체득하는 것에 초점을
특정종교 예배의식 못지않게 교리교육을 강제하는 것도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심히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나마 대학교의 경우 여러 학기의 강제 채플과 달리 종교과목은 졸업 때까지 한 학기만 이수하면 되지만, 종교계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주 한 시간씩 3년에서 6년 간 본인의 종교와 무관하게 특정종교의 교리를 배워야 한다니 너무 가혹하다. 특히 개신교 학교의 경우가 강제성이 제일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교 수로 보아도 불교계는 기독교계의 1/10에도 훨씬 못 미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탄력적이고 도그마성이 적은 불교 교리의 특성상 타인에게 강제성을 띠는 것이 쉽지 않아 그 영향은 기독교에 비해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불교계 학교가 개신교 학교 흉내를
기독교 대학의 채플 강요에 반발해 대학생들이 종종 문제제기를 해왔으나 법원은 아직 학생인권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1995년 숭실대 법학과 고아무개 학생은 6학기 동안의 대학예배 참석을 졸업요건으로 정한 숭실대학의 학칙이 종교의 자유에 반하는 위헌적 학칙이라며, 채플 불참을 이유로 학사학위를 받지 못한 데 대해 학위수여 이행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하였다. 당시 1심(재판장 김황식 현 대법관)은 “예배 참석 의무를 학칙으로 정한 것은 학생들의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학생의 자유를 외면하였고, 1998년 대법원도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교교육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확정함으로써
조계종립 동국대가 신정아 교수의 학력 조작 파문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물론 망신스러운 일이다. 이번 동국대의 ‘망신’은 피할 수도 있었다는 게 학교 일각의 목소리다. 2005년 임용 당시부터 적지 않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아무도 학력과 관련한 ‘발언’을 강도 높게 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학교측은 ‘인재’를 모시기(?) 위해 제반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 때늦게 책임을 묻고 자탄을 하는 것 보다 때가 이르렀을 때 용기 있게 말하고 ‘적법한 조치’를 취하는 게 훨씬 낫다. 때를 놓치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리석음은 화살을 두 번 맞는 격이 아닌가. 신교수가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 직을 맡는 바람에 그의 가짜학위 문제가 온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그 전에
선거는 민주주의 실현의 꽃이다. 선거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가치가 가장 값지게 드러나는 축제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간혹 선거의 아름다움을 망각할지라도 국민들은 선거에 강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불교계에도 12월 대선을 겨냥한 각종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종교와 정치는 당연히 분리되어야 하지만 완전한 분리도 어불성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주자 혹은 정당에 코드를 맞춘 단체들이 불교계에서 하나 둘 발족되는 것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불교계가 사회 흐름에 발맞추어 불교계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고 발전을 위한 각종 현안들을 선거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것이다. 선거라는 주권행사를 통해 불교계의 목소리를 드러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발현인 것이다
조계종이 정부를 상대로 국립공원내 사찰 소유 토지 사용에 대한 보상금을 청구하기로 했다. 또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전통사찰 경내지를 관리하는 것의 위헌성도 따지기로 했다. 조계종과 정부가 상당한 긴장관계로 빠져들고 있다. 올 연초부터 공원입장료 징수가 폐지되고 문화재관람료의 징수와 관련한 문제를 푸는데 종단과 정부의 손발이 어긋난 결과다. 공원입장료 폐지 이후 6개월간 문화재관람료 문제에 대해 정부와 조계종, 환경단체가 묘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갈등으로 번졌다. 조계종이 강경수로 정부를 압박하는 형국인데, 사찰 소유 토지의 사용에 대한 권리주장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종교라는 신성한 범위를 침해한 관계법과 그간의 관례들을 근본적으로 고쳐놓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국립공
‘예스 평창’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도전은 아름다웠다. 7월 5일 201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가 러시아 소치로 결정되는 순간 불자와 국민들은 허탈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절망하진 않았다. 그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열심히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 도전을 통해 강원도는 세계에 알려졌고,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기억하는 세계인에게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열정을 보여주는 기회였다. 불교계도 이루지 못한 원력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국민들의 열망에 함께 손잡고 기원했던 아름다운 동참의 공덕을 갈무리 할 때다. 불교계는 서울 조계사에서 대형 법회를 열어 불자들의 기원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보여 준 바 있다. 무엇보다 강원도에 위치한 조계종 교구본사 신흥사와 월정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불자들의
현대사회는 자유ㆍ평등 같은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추세이다.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 사법(형벌)은 물론 의료ㆍ복지ㆍ교육 분야는 오히려 공공적인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해서 특별법을 제정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공공성 담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의료법ㆍ사회복지법ㆍ사립학교법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비영리법인으로 각종 혜택을 주고 있는 종교분야도 ‘종교법인법’을 제정, 반사회성을 감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학법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그리고 보수 종교계 간의 기싸움으로만 비쳐지거나, 일부 보수 언론까지 끼어들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동안 사학재단이 목청을 높이던 ‘재산권ㆍ자율성 침해’나 ‘종교교육 자유의 제
2005년 12월 9일 국민적 관심 속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이 1년 반이 지나도록 보수 정치권과 종교계의 반발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간의 사학법은 1990년 3월 거대여당이던 민자당이 임시국회 마지막 날 평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다른 20개 법안과 함께 일괄 통과시킨, 그 전보다 오히려 개악된 법이었다. 따라서 이번 개정 사학법은 15년간이나 싸워서 얻어낸 국민주권 되찾기의 소중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립학교 운영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한마디로 ‘부패와 전횡’이다. 교육은 돈만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과 공공성이 부족한 경우, 학교를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대신 개인사업 하듯 친족들의 일자리나 돈벌이 정도로 생각하여 독단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영하기
우리나라에서 사립학교는 고등학교의 절반, 대학교의 90%를 차지한다. 세계적으로 사립학교 비중이 높다는 미국이나 영국도 10%가 되지 않으며, 우리나라 다음으로 높은 일본도 20%가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가히 기형적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사학은 1948년 경 ‘농지개혁’ 때, 그리고 1990년 전후 사학 설립이 정부의 ‘허가’에서 일정 조건만 갖추면 관청의 허가 없이 설립할 수 있게 하는 소위 ‘준칙주의’로 사학법이 개악된 때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농지개혁을 피하기 위한 편법과 학교 운영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사학 난립을 부추긴 셈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데 왜 사학들이 맹렬히 반대하는지 이해할 것 같다. 간판은 ‘공익’을 내걸었지만, 속으로
대학의 기능은 교육과 연구이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정신이야말로 대학의 근본 바탕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도 종교에 관한 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꽉 막힌 공간인 것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계 사립대학에서 제도적으로 타종교인을 배제하는 대표적이 예는 채플과 종교과목의 강제, 특정종교인만의 교직원 임용 등이다. 종교지도자를 양성하는 특수학교라면 모를까, 일반종합대학에서 어떻게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수월성보다 특정종교의 선교가 더 중요시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학채플은 기도, 찬송 등 기독교 예배의식으로 졸업 때까지 대개 4학기에서 8학기까지 1주일에 한 시간 정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고, 단 한 학기라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타종교
박광서(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2004년 대광고 강의석 군 사건의 본질은 종교 강요로 인한 인간의 행복추구권, 특히 종교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인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교육현장을 고발한 것으로, 수십 년 동안 시한폭탄 같이 잠재해 있었을 뿐 언제든 터질 것으로 예견된 사건이었다. 한 고등학생의 엄청난 희생에 의해 그동안 숨겨져 왔던 학교 내 종교인권이 사회 이슈화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직장과 신분까지 내던지면서까지 제자를 감싸 안고 보호하려 했던 스승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생각되는 한 분을 잊을 수 없다. 바로 사건 당시의 대광고 교목실장 류상태 목사다. 류 목사는 개인의 이익보다 기독교와 사회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양심적인 지성인이요, 용기 있는 실천가였다. 성실한 교사이자 성직자였던 그가
{image1} 내가 사는 뉴욕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특히 맨하탄(Manhattan)은 어찌나 붐비든지 발 들여 놓을 틈도 없다. '맨하탄에 없으면 아무 데도 없다'는 이곳 속담처럼 '없는 것이 없는 곳'이 맨하탄이다. 많은 사람들이 맨하탄에서 일하고 맨하탄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맨하탄에 한번 이변이 생겼다. 일대 정전(停電)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불야성을 자랑하던 맨하탄에 전기가 나가자, 천지는 일시에 암흑으로 변했고, 맨하탄은 무법천지가 되었다. 어두운 밤이면 날뛰는 도깨비귀신 같은 범죄자들이 각종의 범죄를 자행했다. 범죄자들은 남의 눈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경찰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낮도깨비 같은 범죄자들은 자
학교 내 종교자유 문제는 교사나 학교장 개인의 종교성향도 문제지만, 그보다 종교 사립학교 내에서 제도화ㆍ관행화 된 강요나 차별이 폐해가 더 크고 고질적이란 점에서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인권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렇게 초법적으로 학교운영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이 기득권화ㆍ권력화 된 일부 종교계라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이 새삼 요구되고 있다. 종교 사립학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차별과 인권침해 행위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아 모르거나 간혹 문제가 불거져도 그저 교사나 학생 한 개인의 특수한 문제이겠거니 하며 남의 일처럼 생각해온 게 사실이다. 설사 일부 국민들이 경험했거나 알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다가 결국은 입시라는 중대사를 핑계 삼아 마음속으로 적당히 타
어린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부모와 같거나 그 이상의 존재다. 그런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종교적 차별대우는 학생들의 어린 시절을 어둡게 할 수 있기에 어른들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자식을 학교에 맡기는 학부모들은 학교나 교사에 대해 웬만하면 문제 삼지 않는다. 아니, 문제 삼을 수 없다. 그것은 아이가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서다. 선생님과 학생의 이러한 특수 관계 때문에 피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후유증이 크고 오래 간다. 문제 발생 시 학생의 전학이나 교사의 전근은 모두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 아이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마음의 깊은 상처는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기독교 국가도 아닌데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