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돼 점차 기승을 부리던 따뜻한 봄날에 산문 밖을 나섰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 법이라. 〈금강경〉과 〈법화경〉을 짊어지고 흐르는 물이 되어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고자 만행을 계획했다.하산하던 날, 온 대중은 만행을 결정한 나를 의아해했다. 선방이나 율원을 간다면 능히 격려하며 보내줄 터이나 홀로 만행을 한다고 하니 은사스님은 상좌가 풍진 세상으로 들어가 행여나 악업에 물들까 전전긍긍하셨다. 그럼에도 나의 결정은 단호했다. 번잡한 시장에서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곳이 곧 절이고 수행자라 하지 않았던가.화광
금정산(金井山)은 금빛 물고기가 내려와 산 정상의 샘(井)에서 놀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리고 그곳에 건립된 사찰이 범어사(梵魚寺)다. 해동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간된 범어사는 수많은 고승대덕들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이며, 지금도 부산과 경남 일원의 수행·전법 도량이자 총림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금정총림을 새로 이끄는 선지식이 여산 정여 대종사다. 새해를 앞두고 정여 대종사를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았다. 산중도 한파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선지식의 푸른 안목 때문인지, 무애한 그림자 때문인지, 출세간의 하루는 그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0년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경주 남산 64개의 계곡 중 60개에서 296곳의 사찰 터와 불상 등 불교 유물이 377점 발견됐다. 또한 경주남산연구소에서 발간한 남산 안내서의 책자에는 150곳의 사찰 터와 100여 기의 불탑, 130구의 불상 그리고 22기의 석등과 연화대 19점 등 700여 점의 유물과 유산이 있다고 했다. 이 외의 경주 남산 사찰 터와 불상 등 발견된 개수를 정리한 연구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자칭 경주 남산에 푹 빠진 연구자이며 또한 남산 불교 매니아(출가자)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지구가 아프다.물-땅과 물과 대기도 두루 아프고, 심-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앞날도 막막한 지금의 지구는 물심양면으로 아프다. 영하 40도 아래로 추위가 덮친 날씨가 계속되는 북유럽, 새해 첫날부터 지진으로 무너진 일본, 날마다 전쟁으로 죽고 죽이는 나라들, 그 기후위기와 전쟁의 여파로 무너지는 세계 경제와 평화.사람들은 가끔 사라지려는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데서 생명이 지속되리라는 위로를 찾는다. 더 이상 자연에서는 볼 수 없고 외교적 잇속 따져가며 동물원에서나 전시되는 판다에 대한 열광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친애하는 지구에게
몹시 추운 겨울 밤, 중국의 어느 사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유랑하다가 얼마 전부터 이 절에 머물던 스님 한 사람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지스님이 넉넉하게 땔감을 마련해주지 않았나 봅니다. 스님은 달달 떨면서 군불을 좀 땔까 하며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봤지만 땔감은 눈에 띄지 않았지요.하긴 수행하겠다는 사람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온기를 찾아 군불을 지필 생각만 한다면 너무 나약한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주지스님도 이런 마음에서 방에 불을 넣어주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지요.그런데 너무 추웠던 스님은 결국 일을 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꾸준히 나빠진 콩팥을 되돌리는 의학적 방법은 아직 없기 때문에 만성 콩팥병 ‘치료’보다는 만성 콩팥병 ‘관리’라는 말이 오히려 적절하겠습니다. 과거에는 사구체 신염과 같은 질환으로 인하여 만성 콩팥병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에는 고혈압, 당뇨와 같은 선진국형 만성 질환으로 인하여 만성 콩팥병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고혈압, 당뇨로 진단되어 약제 복용 및 관리 중인 분들은 만성 콩팥병으로의 진행에 대한 꾸준한 관찰을 필요로 합니다. 콩팥병에 대한 관리 방법 콩팥은 고혈압의 직접적인 원인 장기인 동
우리 시대는 거대한 환상을 마주하고 있다. 이 환상은 그럴듯한 좌표를 제시해주고 있다. 과학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환상은 과학에게 전능이라는 멋진 옷을 입혀준다. 과학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데이터와 실험실 증거들에 힘입어 설득력을 드높이고 있다. 과학에 대한 맹신은 기묘한 선험적 도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윤리와 철학을 뒷자리로 물러서도록 강요하고 있다. 세상은 과학의 답변을 해답으로 받아들이며, 다른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한다.얼마 전까지 욕망은 ‘타자의 욕망’으로 이해됐다. 이 타자와 관련된 질문
참다운 인생의 길은 간다는 것은질문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하는데 그럼 이렇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해야 참다운 인생의 길을 가게 되는지요. 답변 여러분은 그렇게 겪어 보지 않았고 또 실감 나지 않는 일이 돼서 모르시겠지마는 이런 걸 얘기로 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실감 날 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증명이 되고 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물속에도 그 돌에 있는 그 느끼, 또는 흙의 느끼 그런 것만 걷어 먹고 남하고 싸움하기 싫고, 또 연쇄적으로 잡아먹어 가면서
질문자1(남) 스님,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번 날 냉수를 제가 한 컵 마셨더니만 상당히 시원했습니다. 근데 그 기분에 온 세상이 다 시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에 ‘그 한생각이면 모든 것이 다 같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큰스님 본래 우리가 공생, 공심으로서 공용을 하고 돌아가고 있지요. 그건 대의적인 문제고요. 내가 한생각을 내서 옆의 사람도 못 보던 거를 알게 됐다, 또 내가 물 한 모금 마시면 내가 시원하니까 딴 사람도 다 시원할 거다 하는 것도 내가
올 새해에는 여러분께서 한마음의 도리에 더욱 정진하셔서 가정에 병고 액난이 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자면 좋은 일도 있고 언짢은 일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인간뿐이 아니라 만물의 살림살이가 다 그러합니다. 우리 가정만 그런 게 아니라 날아다니는 새도 그렇고, 기어 다니는 벌레도 그렇고, 우리 인간도 역시 그렇고, 고통이라는 것은 언제나 뒤따르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도 슬픔도 괴로움도 아닌 그 가운데서 내 마음을 발현해서 자유스럽게 살 수 있게 돼야겠죠. 하여튼 제가, 아
부처님 법(法)이 천강(千江)에 골고루 스미듯 세상을 얼려버린 추위도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움츠러들게 한다. 특히나 겨울바람이 매섭기로 소문난 가야산 동장군에게 자비란 없는 듯하다. 말 그대로 뼈를 때린다. 두 겹 세 겹으로 몸을 감싼 목도리가 자기소임을 제대로 못해 민망할 정도.해인사는 여전했다. 웅장하고 위엄 있는 가람과 각자의 위치에서 흐트러짐 없이 정진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비로자나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기 위해 해인사 대적광전으로 향했다. 이날은 마침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 스님의 22주기 추모다례가 있던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싶었다. 하얀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 겨울의 불영사(佛影寺).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사라진 순백의 설국을 마주하자 오랜 시간 그려온 이상향의 땅에 다다른 것만 같았다.“하지만 좋은 건 딱 3일이었어요, 그다음부터는 본격적인 행자 생활이 시작되었거든요.” 재미난 기억이 난 것처럼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여거 스님에게 그날의 기억은 오늘도 생생하다. 작지만 어엿한 한 사찰의 주지로, 또 사찰음식 전문강사로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는 요즘이지만, 지금도 그해의 겨울은 결코 잊지 못할 나날들이었다. 출가와 함께 어
2024년 푸른 용의 해반야용선 타고 피안세계로 건너가요. 지혜의 푸른 용 타고 올해는 모두들 장애없이 행복한 한 해를 발원해용~
전남 승주 야생차밭. 초의 선사는 산골짜기, 바위 곁에서 자라는 차를 최고로 쳤다. 동양문화권에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 음료는 그 종류만도 수백 종에 이르는데, 그 원료로 초목의 뿌리, 잎사귀, 줄기, 열매에서 동물의 일정 부위까지 확대 활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찌 보면, 광범위하게 음료를 만들어 낸 것은 삶의 필요 요건에 따라 가감되었다. 아무튼 차는 단순한 ‘마실거리’나 음식과 약의 범주를 넘어 정신음료로 발전됐으니 이는 차나무의 싹을 활용해 문화의 결을 일구어 낸 차의 이해자들이 이룩한 업적이라 하겠다.차란 원래 차나무
뼛속까지 사무친 뒤라야번뇌를 끊는 수행 예삿일 아니니 (塵勞逈脫事非常)소코뚜레를 고삐로 매어 길들이듯 하라 (緊把繩頭做一場)한 번은 눈서리 찬 기운이 뼛속까지 사무친 뒤라야(不是一番寒徹骨)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 맡을 수 있으리 (爭得梅花撲鼻香)출전: 고문집(古文集)‘깨달음의 노래’는 구도자의 오도송(悟道頌)을 뜻한다.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禪詩)를 문자 사리(舍利) 또는 문자반야(般若, 지혜)라고도 한다. 선시란 깨달음을 주제로 읊은 불교시도 넓게 포함해서 말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오직 깨달음을 일차적 수행 목표로 삼는 불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가야 하는 것이 아쉬워깊은 숲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를오랫동안 서서 멀리 바라보았지.(후략)”미국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는 두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 없어서 마음속으로 길 하나를 선택한 뒤 가지 못하게 된 길을 아쉽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집니다.인생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선택의 연속입니다.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가는 일을 내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할까, 하지 말까.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살까
혹시 아실까 싶다. 전 세계 유일한 산 전체가 불상이고 불탑이고 절터였던 경주 남산의 신비로움을. 산 전체에 하나하나 셀 수 없을 만큼 곳곳의 바위마다 돌을 다듬어 불상을 모시고 불탑을 세운 곳은 전 세계 불교국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경주 남산은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를 대표하는 산 전체가 불국정토인 사찰이다. 경주 남산의 입구 사방팔방이 일주문이고 구릉지가 사천왕문이며 불상과 마애불 앞은 해탈문이다. 무엇보다 경주 남산 모든 곳은 부처님이 계신 금당이다. 지금부터 신라인이 조성한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주 남산의
마음을 헤아려 뜻이 통하는 일은 지극한 일이다. 오죽하면 깨달음을 얻고 수많은 제자들과 대중에게 둘러싸여 있던 부처님 마음을 아는 이가 단 하나였을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대중에게 설법을 하시다가 가만히 꽃을 들어 보이자 아무도 그 뜻을 몰라 갸우뚱할 때 가섭존자만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말이나 글로 전하지 않은 마음이 고스란히 마음으로 통했기에 가섭존자도 말로 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답했다는 이 일화는 마하가섭이 불제자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게 된 근거이기도 하다.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인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에서
2023년 7월 통도사 대학생 전법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여름내 나의 화두는 영산대학교 학생들에게 불연을 맺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웅장원이 통도사포교소로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학생·청년 전법에는 제법 부담이 컸다. 그래도 불교의 희망을 만드는 불사라 생각하고 뛰어들었다.두 달여가 지난 2학기 개강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아침 8시에 교내로 들어갔다. ‘불교동아리 창립 회원모집’ 안내판을 걸어놓고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친절히 홍보하려던 참이었다.더위는 여전한 상황에서 교내로 셔틀버스 한 대가 매연을 뿜으며 들어
소원 씨(69·가명)는 지각이 잦은 편이었다. 지각을 하는 날이면 두통 때문에 병원을 다녀왔다며 힘없는 모습으로 상담실에 들어왔다. 소원 씨는 이른 아침 상담실로 출발했지만 “항상 이렇게 늦는다”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짓곤 했다.상담실을 방문하면서도 소원 씨 자신은 상담 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들에게 ‘문제없음’이란 소견을 받았지만 몸이 분명 아팠기에 계속 병원을 찾아다녔다. 병원을 1년 사이 200여 번을 갔고 새벽에 통증이 있으면 식구들이 급히 응급차를 불러야했다. 처음에 아프다고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