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法)이 천강(千江)에 골고루 스미듯 세상을 얼려버린 추위도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움츠러들게 한다. 특히나 겨울바람이 매섭기로 소문난 가야산 동장군에게 자비란 없는 듯하다. 말 그대로 뼈를 때린다. 두 겹 세 겹으로 몸을 감싼 목도리가 자기소임을 제대로 못해 민망할 정도.해인사는 여전했다. 웅장하고 위엄 있는 가람과 각자의 위치에서 흐트러짐 없이 정진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비로자나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기 위해 해인사 대적광전으로 향했다. 이날은 마침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 스님의 22주기 추모다례가 있던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싶었다. 하얀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 겨울의 불영사(佛影寺).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사라진 순백의 설국을 마주하자 오랜 시간 그려온 이상향의 땅에 다다른 것만 같았다.“하지만 좋은 건 딱 3일이었어요, 그다음부터는 본격적인 행자 생활이 시작되었거든요.” 재미난 기억이 난 것처럼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여거 스님에게 그날의 기억은 오늘도 생생하다. 작지만 어엿한 한 사찰의 주지로, 또 사찰음식 전문강사로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는 요즘이지만, 지금도 그해의 겨울은 결코 잊지 못할 나날들이었다. 출가와 함께 어
2024년 푸른 용의 해반야용선 타고 피안세계로 건너가요. 지혜의 푸른 용 타고 올해는 모두들 장애없이 행복한 한 해를 발원해용~
전남 승주 야생차밭. 초의 선사는 산골짜기, 바위 곁에서 자라는 차를 최고로 쳤다. 동양문화권에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 음료는 그 종류만도 수백 종에 이르는데, 그 원료로 초목의 뿌리, 잎사귀, 줄기, 열매에서 동물의 일정 부위까지 확대 활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찌 보면, 광범위하게 음료를 만들어 낸 것은 삶의 필요 요건에 따라 가감되었다. 아무튼 차는 단순한 ‘마실거리’나 음식과 약의 범주를 넘어 정신음료로 발전됐으니 이는 차나무의 싹을 활용해 문화의 결을 일구어 낸 차의 이해자들이 이룩한 업적이라 하겠다.차란 원래 차나무
뼛속까지 사무친 뒤라야번뇌를 끊는 수행 예삿일 아니니 (塵勞逈脫事非常)소코뚜레를 고삐로 매어 길들이듯 하라 (緊把繩頭做一場)한 번은 눈서리 찬 기운이 뼛속까지 사무친 뒤라야(不是一番寒徹骨)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 맡을 수 있으리 (爭得梅花撲鼻香)출전: 고문집(古文集)‘깨달음의 노래’는 구도자의 오도송(悟道頌)을 뜻한다.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禪詩)를 문자 사리(舍利) 또는 문자반야(般若, 지혜)라고도 한다. 선시란 깨달음을 주제로 읊은 불교시도 넓게 포함해서 말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오직 깨달음을 일차적 수행 목표로 삼는 불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가야 하는 것이 아쉬워깊은 숲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를오랫동안 서서 멀리 바라보았지.(후략)”미국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는 두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 없어서 마음속으로 길 하나를 선택한 뒤 가지 못하게 된 길을 아쉽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집니다.인생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선택의 연속입니다.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가는 일을 내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할까, 하지 말까.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살까
혹시 아실까 싶다. 전 세계 유일한 산 전체가 불상이고 불탑이고 절터였던 경주 남산의 신비로움을. 산 전체에 하나하나 셀 수 없을 만큼 곳곳의 바위마다 돌을 다듬어 불상을 모시고 불탑을 세운 곳은 전 세계 불교국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경주 남산은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를 대표하는 산 전체가 불국정토인 사찰이다. 경주 남산의 입구 사방팔방이 일주문이고 구릉지가 사천왕문이며 불상과 마애불 앞은 해탈문이다. 무엇보다 경주 남산 모든 곳은 부처님이 계신 금당이다. 지금부터 신라인이 조성한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주 남산의
마음을 헤아려 뜻이 통하는 일은 지극한 일이다. 오죽하면 깨달음을 얻고 수많은 제자들과 대중에게 둘러싸여 있던 부처님 마음을 아는 이가 단 하나였을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대중에게 설법을 하시다가 가만히 꽃을 들어 보이자 아무도 그 뜻을 몰라 갸우뚱할 때 가섭존자만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말이나 글로 전하지 않은 마음이 고스란히 마음으로 통했기에 가섭존자도 말로 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답했다는 이 일화는 마하가섭이 불제자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게 된 근거이기도 하다.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인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에서
2023년 7월 통도사 대학생 전법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여름내 나의 화두는 영산대학교 학생들에게 불연을 맺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웅장원이 통도사포교소로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학생·청년 전법에는 제법 부담이 컸다. 그래도 불교의 희망을 만드는 불사라 생각하고 뛰어들었다.두 달여가 지난 2학기 개강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아침 8시에 교내로 들어갔다. ‘불교동아리 창립 회원모집’ 안내판을 걸어놓고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친절히 홍보하려던 참이었다.더위는 여전한 상황에서 교내로 셔틀버스 한 대가 매연을 뿜으며 들어
소원 씨(69·가명)는 지각이 잦은 편이었다. 지각을 하는 날이면 두통 때문에 병원을 다녀왔다며 힘없는 모습으로 상담실에 들어왔다. 소원 씨는 이른 아침 상담실로 출발했지만 “항상 이렇게 늦는다”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짓곤 했다.상담실을 방문하면서도 소원 씨 자신은 상담 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들에게 ‘문제없음’이란 소견을 받았지만 몸이 분명 아팠기에 계속 병원을 찾아다녔다. 병원을 1년 사이 200여 번을 갔고 새벽에 통증이 있으면 식구들이 급히 응급차를 불러야했다. 처음에 아프다고 울
관음보살 계신 새해맞이 성지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떠오르는 해를 보고자 동해로 간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맞이하는 일출도 장관이다. 해수관음상, 의상대, 홍련암 근처가 최적의 장소다. 새해 첫날 일출에 의미를 두면 의미가 있겠지만, 굳이 첫날일 필요는 없다. 낙산사 일출은 언제나 좋다. 마치 관음보살의 자비광명 같다. 그 때문인지 ‘일출이 아름다운 낙산사 의상대’가 양양 8경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일출만이 전부는 아니다. 낙산사 의상대는 예로부터 관동팔경 중 하나였다.낙산사는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2023년이 저물어 간다. 사람들은 한 해가 덧없이 흘러갔다고 회한에 빠지면서 새해에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내년에도 농부는 밭에서 농사를 짓고, 상인은 가게에 나가 장사를 하고,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하루하루 시간에 쫓겨 그냥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당나라 때 목주 도명(睦州 道明 780~877) 선사는 젊은 운문(雲門) 스님이 깨달음을 얻고자 찾아올 때마다 “이르고 일러라”라고 소리치며, 대답을 못하는 운문을 한 손으로 밀어버리고 토굴로 들어갔다. 운문 스님은 어떻게 해서라도 목주 선사의 토굴
한 수행자가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더 이상 청정한 수행이 즐겁지 않다. 약에 취한 듯 사방은 희미하게 보이고 나태와 무감각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고 괴로워했다. 부처님은 그에게 “탐욕과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몸은 불안정하다. 지금 너는 괴로움과 슬픔이 일어나느냐?”라고 묻는다.책 에 나오는 부처님의 사촌 팃사(Tissa)에 대한 에피소드다. 팃사는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며 무기력함과 나태함 속에서 괴로워했다. 부처님은 그를 찾아가 법을 설하며 “팃사야, 기운을 내라.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내가
여여하게 살고 싶어요질문 저는 생각이 많고 분별심이 많아서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서 여여하고 자유스럽게 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열심히 참선도 해 보고 경전 독송도 해 보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고 참 부끄럽습니다. 저 같은 이들에게 채찍이 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그래서 사대 성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똥 누러 갈 때도 ‘내가 눠야 될까, 안 눠야 될까’ 하고 가느냐? 똥 마려우면 아무 생각 없이 ‘이럴까 저럴까’ 하는 생각도 없이 그냥 화장실로 가
태양계 지구별은 해가 뜨고 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맞춰 살아가는 뭇 생명들과는 좀 다른 생명체들이 번성하고 있다. 중심이 되는 태양을 기준으로 보자면 뜨고 지는 태양과 지구별 사이에는 약속된 연이 있어서, 날과 달, 계절이 바뀌고, 그 바뀌는 법칙을 헤아려 그 안에서 세상일을 새기는 일을 역사라고 하는 중생들이 바로 사람이다. 그러면서 어떤 날일시는 돌고돌아 다시 오는 해와 달과 지구 사이의 좌표에서 벗어나 그 날짜 자체만으로 고정되는 특별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 지표들은 중생들의 과보로 보자면 업을 지은 순간들일 것이다. 그리
십 년, 이십 년, 근 삼십 년을 두고 여러분을 접해 왔으나 여러분을 가만히 볼 때마다 참, 내 몸과 같이 아프고, 그 아픈 말은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의학적으로도 발전이 되지 않아서, 모든 사람들이 기도를 해서 나을 수 있게끔 하는 그런 도리가 있었고, 그 후에도 그런 도리가 많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의학적으로 발전이 돼서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지수화풍으로써 형성돼서 미생물이 생겨서 그 모든 미생물로 하여금, 그 생명으로 하여금 수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나투어서
우민(가명) 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로 복학하기 앞서 심각한 불안 증상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았다. 그는 비죽하게 마른 몸에 얼굴은 광대뼈가 불거질 정도로 홀쭉하고 마른 인상이었다. 키는 180㎝가 훌쩍 넘어 보였고 외모에서 무언가 아슬아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소소한 질문을 할 때에도 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답을 하다가 이내 말소리가 줄어들었고, 한참 침묵한 뒤 눈치를 살피듯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그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항상 살피게 되고 무엇이 맞는지 몰라서 자신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무엇이든 제대로 해내야
여러분이 자성 삼보에 귀의한다고 하시죠? 그 이름만 들어도 자성 삼보라는 그 뜻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나의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과, 움죽거리지 않는다 하면은 또 이상스럽게 듣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수레가 돌아가도 중심이 끼워진 주 중심 봉은 움죽거리지 않습니다. 힘만 배려해 줄 수밖에 없는 거죠. 힘만 배려해 준다 이겁니다. 움죽거리지는 않는다. 수레가 돌아갈 뿐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의 근본도 부동자세한 그 뜻으로서의 힘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을 배출하는 반면에 우리는 시공을 초월해서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1823~1860)는 철도 선로 쇳덩이가 얼굴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끔찍한 이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뇌과학과 정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1848년 9월 13일, 게이지는 철도 확장 작업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땅에 묻고 있었고, 갑자기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며 땅에 묻어둔 선로 쇳덩이가 날아가 왼쪽 뺨을 관통했다. 다행히 그리고 놀랍게도 게이지는 죽지 않았다. 뇌 좌반구에 큰 손상을 입었지만 게이지는 선로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고 목격자들은 게이지의 의식이 또렷했다고 증언했다.
모든 일이 자기 탓?질문 모든 일이 다 자기 탓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생에 지은 인연에 의해서 닥치는 것인지요.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답변 우리는 요렇게 짤막짤막하게 한 토막씩 찰나찰나 넘어가니깐 그렇지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바로 일생, 칠십 평생 팔십 평생 넘어가는 이 때에 우리는 그 물에서 떴다가 그 물에 가라앉을 뿐입니다. 가라앉았다 뜨고 떴다가 가라앉고 이렇게 하는 것밖에는, 인생이 그런 거밖에는 안 됩니다. 떴다 가라앉고 떴다 가라앉고 하는 그런 동안에 우리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