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장교에게 주어진 임무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종교활동, 교육활동, 선도활동, 대민활동이 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필자가 살고 있는 전방 철책부대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 네 가지 활동을 골고루 균형 잡기가 힘들다. 전방부대에서는 선도활동과 교육활동이 주를 이루는데 선도활동 중에서도 상담이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일이다. 얼마 전에 적응이 어려워 GOP에서 하강하게 된 병사를 상담하였다. 들어보니 너무 잘하려고 의욕이 앞서서 선후임간 마찰을 빚게 되었고 이로 인해 우발적인 사건이 발생해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부대로 찾아가 그 병사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병사는 자신의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이렇게 고마움을 전하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자, 다같이 구호를 외쳐봅시다. 오내활동! 오내활동!” 춘천 국군병원 군법당에서 병원 순회를 돌기 전 항상 외치는 구호다. ‘오내? 오내활동이 무엇이지?’ 오내활동에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는 환자들의 요청에 ‘오! 네!’하며 적극적으로 응대하자는 각오이며 둘째는 환자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눈 맞추고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들어주고 △내가 먼저 미소 짓자는 다섯가지 스스로(內)의 다짐이다. 필자는 2012년부터 1년 동안 국군춘천병원에서 군법사로 활동했다. 군병원에 부임하며 가장 먼저 느낀 점 포교현장에서도 친절 서비스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병원에는 몸이 아픈 장병들은 가족 등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주
매달 셋 째주 저녁 7시 낙성대입구 LMB싱어즈의 작은 음악당에 들어서자 마자 건장한 청년들의 힘찬 목소리에 흥이 난다. “스님, 안녕하세요?” 성악인들이라 목소리도 좋다. LMB싱어즈의 황영선 대표의 별명은 ‘대포’다. 왜냐하면 한번 결정하면 그냥 밀어부치는 뚝심이 있어서다. 그런 뚝심이 있었기에 열악한 불교문화의 후원 속에서 14년이라는 시간을 꾸려올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도 꼭 삼배를 한다. 하지 말라고 해도 굳이 한다. 아주 고집도 세다. 그러다 나에게 야단이라도 맞으면 “스님, 죄송해요. 제가 쓸개가 없어서 그래요”하며 빙그레 웃는다. 실제로 그녀는 과로로 인해 쓸개를 제거한 이력까지 가지고 있다. 불광사 어린이 법회 출신인 그녀는 찬불포교의 사명으로 똘똘
2005년 겨울. 인도네시아 해외포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팔공산 은해사 백흥암에서 동안거를 나고 있었다. 오후 입선에서 달려드는 수마는 망상과 친구가 되어 시간을 잡아먹는다. 모두 내쫓으며 화두를 드는데 갑자기 LMB 싱어즈가 떠오른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처님의 법음을 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불교계 유일의 혼성4부 중창단. 한 번의 공연을 보고 나는 그만 반해버렸다. 2~30대로 구성된 전문 성악인 불자들로 구성되어 현대감각에 맞게 찬불가로서 씩씩하게 법음을 널리 펴고 있었다. 그들을 만난 것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조금씩 그들을 알게 되면서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워 언젠가 내가 한말이 떠오른다. “혹시, 해체를 해야 하는 위기까지 온다면 나에게 꼭 연락해요.” 내가 왜
갠지스강으로 향하였다. 2명씩 각각 10대의 릭샤에 올랐다.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리고 거리는 힌두교 의식을 하러 강으로 가는 사람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뒤엉켜 빠른 물결을 이룬다. 가끔씩 도로에 소들도 나타나고, 자전거와 자동차등이 엉켜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아슬아슬하게 비껴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내가 탄 릭샤를 끄는 노인은 많이 말랐다. 그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우리의 안전을 체크하고는 씩익 웃는다. 미안하다. 내가 깡마른 노인이 끄는 릭샤를 타다니… 그래도 그는 행복해 보인다. 복잡한 시내를 요리조리 피하며 한참을 열심히 가는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릭샤를 멈추고 그가 뒤편으로 달려가서 주워 온 것은 릭샤의 안장이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 진다. 완전히 부러졌지
글로벌 템플스테이 서포터즈는 세계에서 모인 청년들이 프렌드십을 형성하며 템플스테이와 관련된 댜양한 체험을 통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외국의 청년들과 교류하며 자원봉사를 하는 활동이다. 이번에는 15개국의 56명의 청년들이 지원을 하였다. 이들은 무료로 불교에 대해 2달 동안 교육을 받고 2회의 템플스테이를 통하여 한국불교문화를 이해하고 템플스테이를 홍보하게 된다. 이번 행사는 용인 법륜사에서 열렸다. 1회 때는 불교 전반의 교리와 사찰예절이 중심이였다면 이번에는 한국불교 수행전반에 대해 경험해 보는 시간이다. 나는 지도법사로서 매주 수요일 저녁에 있는 교육은 물론 1회에 이어서 한국불교의 전반적 수행에 대한 이해와 체험을 담당하고 있다. 모처럼 사찰에 와서 수련복을 입은 청년들은 사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7명의 불자들과 함께 홍콩을 거처 거의 열두시간의 시간을 지나 도착한 곳은 델리. 델리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비행기로 바라나시로 향했다. 우리의 처음 순례지는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다. 먼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후 옛날에 같이 수행하던 다섯 동료들을 찾아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이 부처님을 맞이했던 곳을 기리는 영불탑을 참배했다. 주변은 공원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차분하고 아름답다. 흰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스리랑카인들이다. 2500년 전 평화로운 들판에서 다섯 비구를 만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니 환희심이 벅차오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초전법륜을 굴리신 녹야원으로 갔다. 우리는 합장을 하고 줄지어 들어갔다. 부처님이 처음 법륜을
비로자나 국제선원은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해 있다. 내가 이곳에 선원을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의 수행을 가족들과 나누기 위함이었다. 진정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마음 수행을 가족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들이 모두 불자라고는 해도 신심이 그리 깊지 않아 불교를 생활 깊숙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부모님만 빼고 모든 7남매가 서울에 살며 그중 첫째와 둘째는 서대문구에 산다. 거기에다 식구가 많다보니 조카만 해도 12명이다. 나름대로는 매주 일요일에 법회를 열어 삶에 지친 그들에게 마음속 평화를 찾게 하고 싶었던 것이 나의 의도였다. 어느 날 도반스님과 무악재역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누군가 “스님~”하고 반갑게 부른다. 돌아보니 첫째 조카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아이를
성철 스님 상좌로 국제포교에 헌신하다 10년 전 열반하신 원명 스님 추모집 〈나는 사람이 좋더라〉가 나왔다. 열반 당시 스님은 53세셨다.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도 젊고도 아까운 인재이기에 다비식에서 슬피 울던 불자들과 스님들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 하늘을 가득 채우던 슬픔들 그리고 하염없이 쏟아지던 눈물들. 스님과의 인연은 내 나이 24세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영어와 불교를 동시에 가르치는 곳이 있다기에 호기심으로 찾아간 곳 종로구 소격동 연등국제회관. 내가 찾아갔던 날은 묘하게도 창립 기념법회가 있던 날 점심이었다. 주신 차와 떡을 먹고 접시를 가져다 놓기 위해 부엌에 들렀다. 설거지가 싱크대에 가득하다. 문득 어려서부터 절에 가면 늘 설거지를
최근 홍콩에서 하모니라는 비구니 스님이 우리 선원에 도착하였다. 스님과의 인연은 작년에 미국불교를 연구하기 위해 샌디에고 근처 틱낫한 스님의 ‘디얼 파크(Deer park)’에 2박 3일 머물면서 시작됐다. 당시 나는 스님에게서 활달하면서도 승가를 건강하게 이끌고자 애쓰는 깊은 열정을 느꼈다. 스님은 홍콩센터의 주지로 있으면서 잠깐 다니러 왔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스님에게서 어느날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한국불교를 경험하고 싶은데 이곳 센터에 머물 수 있는지를 묻는 메일이였다. 시내라서 작고 시끄러워 불편한 점이 많은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그곳 스님들은 틱낫한 스님을 따라 세계 이곳 저곳에서 수행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도 머물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작아도 승가가 있는
토요일 오후 1시. 오늘도 어김없이 쿵쾅거리며 왁자지껄한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이어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고요했던 공간을 경쾌함으로 채운다. 가장 꼬마인 8살 태용이와 예지의 목소리는 어느새 내 귓가에 와있다. “스님~ 어디 계세요?”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절에 오면 우선 스님부터 확인한다. 스님이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무엇을 해도 한다. 태용이와 예지는 아기 때부터 친구다. 예지가 엄마를 따라 절에 먼저 오고 태용이도 친구 따라 오게 되었다. 특히, 태용이는 목소리가 아주 크다. 혼자 어린이 집회가를 불러도 백 명의 아이들이 부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영어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어린이 집회가, 삼귀의, 참선을 하고 부처님 일생을 듣는다. 이날은 부처님께서 성 밖을 나가서
병주의 엄마, 아빠는 모두 직장을 다니신다. 그래서 어느덧 1학년이 된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스스로 숙제도 하고 학원도 알아서 가야한다. 다른 또래 아이들 보다 덩치가 크고 의젓해서 누가 보든 듬직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아이다. 어느 날 좋아하는 태권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원차에서 운전기사 아저씨가 문득 말을 건넨다. “병주야! 너 교회 다니니?” “아니요.” “그래? 그럼, 우리 교회 다녀라. 너처럼 잘생기고 똑똑한 아이는 교회를 다녀야 하는 거야. 우리교회에 오면 맛있는 것도 많이 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재미있는 게임도 많이 할 수 있어. 내가 교회 집사거든. 그러니 이번 주 일요일에 우리교회에 와. 내가 잘해 줄게.” 기사 아저씨의 교회를 다녀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아이는
일곱 살 병주는 어린이 영어담마스쿨을 다니는 아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만난 사이로 언젠가 강화도 연등국제선원으로 템플스테이를 가는 홍보 글을 보고 참가신청을 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이 가족은 아주 경쾌하고 발랄했다. 병주 역시 비로자나국제선원 영어담마스쿨에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담마스쿨은 1, 2부로 나누는데 1부인 1시 30분부터 1시간동안 7세부터 10세까지 공부하고 2부는 10세부터 14세까지 공부하는데, 순서에 따라 어린이 집회가와 삼귀의를 한 후 참선을 하고 각자의 영어수준에 따라 수업을 한다. 또한 수업을 마치고 나면 다시모여 사홍서원과 산회가로 끝낸다. 그러니까 병주는 ABC부터 이곳 영어담마스쿨에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6개월 정도 다닌 병주가 어
나의 캠프에는 마니아들이 있다. 이들은 매년 여름이 되면 엄마를 졸라서 캠프에 참석을 한다. 가족들이 여름휴가 계획을 짤 때면 먼저 자우 스님 영어담마캠프 일정을 물어보고 잡으라고 한다고 전화가 곧잘 온다. “스님, 우리 아이가 자기는 꼭 영어담마캠프에 가야하니까 스님께 언제 하는지 물어 보고 가족 휴가 일정을 잡으라고 하네요” 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도 아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 어떤 아이는 말을 안들을 때마다 “너 이렇게 하면 내년 영어담마캠프 안보내준다“라고 협박을 하면 곧바로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른다고도 한다. 캠프마니아들 중에서도 인상적인 아이는 민지다. 민지는 이제 3학년이다. 민지는 1학년부터 캠프에 왔다. 다른 일반캠프보다 긴 일정을 1학년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1학년은
아이들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 집에서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지만 깨우면? 곧잘 일어난다. 졸리운 눈을 비비면서도 거뜬히 일어나는 녀석들이 기특하다. 하지만 오늘 개구쟁이 강주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이 깨워도, 스님이 깨워도, 친구들이 깨워도 모르는 채 자고 있다. 포기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설법전으로 갔다. 여섯 분의 스님들이 맨 앞에 가사장삼을 수하고 예불을 이끌어 가노라면 아이들도 목청껏 큰 소리로 예불을 올린다. 예불이 끝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혜윤이가 “스님 얘가 괴롭혀요” 한다. ‘아니, 새벽부터 친구를 괴롭히는 녀석은 도대체 누구야?’ 생각하며 보니 강주다. “강주! 너 언제왔니?” 그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녀석이 어느새 와 웃고 있다. 교사들 모두는 웃음보가 터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특히, 이번 별빛명상에서 그러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평소와 달리 영어일기를 먼저 쓰고 밤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설법전에 모였다가 나가서 한 줄로 조용히 도량을 걷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였다. 고요함이 무르익었을 때 쯤 미리 준비된 돗자리에 몸을 누이고 별을 보는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여름밤 가족과 밭일을 끝내고 터덕터덕 걸어오다 우연히 보게 된 별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깜깜한 하늘에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고 쏟아져 내리는 별빛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듯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밤에 하늘을 볼 때면 가족들과 보았던 영롱한 별빛이 생각나면서 미소짓게 된다. 그때 가족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아이들과 5박 6일 캠프. 그것도 70명 가량의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지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매년 3월이 되면 마력에 걸린 사람처럼 캠프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장소 물색에 나선다. 나는 왜 이일을 할까?? 사실 어른들 수련회 보다 열배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캠프에서 친구와 화해하는 법을 익히는 아이들,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래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본다. 말썽을 피우고 돌아서서는 아주 순진한 눈빛으로 “스님! 캠프 너무 재미있어요. 내년에도 꼭 올게요.” 하는 순간 나는 묘한 보람을 느낀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노력과 정성’이다. 정성을 쏟다보면 반듯이 상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재미
이번 영어담마캠프는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특히, 외국인 교사들의 밝고 적극적인 반응과 참여가 전체분위기를 설레게 한다. 교사 연수가 있는 날 그들은 누구보다 일찍 도착했다. 서먹할 수 있는 분위기가 캠프송을 배우자 흥겨워 지기 시작한다. 노래지도는 내가 지도법사로 있는 전문성악인들로 구성된 불교계유일의 혼성4부 중창단인 LMB 싱어즈의 단원이 해주었다. 서로 다른 인연으로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위해 모인 18명의 교사들과 12명의 봉사자들의 마음은 노래로 하나가 된다. 특히, 캠프의 주제인 마음모으기와 관련된 ‘Breathing in, Breathing out’ 노래를 배울 때 우리의 세포 하나 하나는 전율한다. Breathing in, breathing out.(숨을 들이쉬고, 내쉬고)/B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의 마음만큼 나의 마음은 설렌다. 이번 캠프에는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어느덧 7회째를 맞는 영어담마캠프지만 매년 아이들의 캠프 접수가 시작되는 2달 전부터 나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작년에 왔던 아이들은 또 얼마나 자랐을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나의 캠프에는 캠프 매니아들이 있다. 매년 여름 우리는 1년에 한번 만나는 날이 오면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의 모습을 그리며 잠을 설친다. 버스에 오르며 “스님! 저는 어제 밤에 스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서 잠을 잘수 없었어요”하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캠프의 말썽꾸러기는 어느새 나의 마음을 녹여버린다. 또한 특이한 것은 이전 캠프의 말썽꾸러기들은 꼭 다음 캠프에도 참가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일중에 묘한 일이
며칠 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전파됐다. 한쪽의 주장만으로 어설프게 쓰인 이야기는 향신료같이 오감을 자극하는 표현들로 가득했다. 중심을 잃고 내달리는 기관차처럼 한쪽방향으로 쏠린 방송으로 인해 상황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은 놀란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양심고백을 하겠다는 스님이 서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양심고백을 하는 모습이 마치 국민을 기만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던 위정자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수행자들의 일탈행위는 우리들의 영혼마저 메마르게 한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다. 한때 종단의 지도자라는 위치에서 남부럽지 않은 존경과 공양을 받았던 사람이 이제 자신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