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도 불교계에는 많은 이슈와 논란들이 발생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각 사찰들은 저마다 특색있는 활동을 펼치기 위해 분주했다. 본지에서는 매주 각 사찰들의 상반기 주요 활동에 대해 점검해보고자 한다.? ? 조계사(주지 토진)는 2011년 상반기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인 사찰 중 한 곳이다. 2월 11일에는 조계사 마당에 개신교인들이 난입해, ‘땅밟기’를 시도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조계사는 도심포교 100주년 기념관 설립, 선림원 개원, 다양한 봉축행사 실시, 내포 가야산 성역화 동참 등 불자들에게 힘이 되는 소식들을 많이 전달했다.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오체투지 삼보일배는 현재까지도 매주 토요일 마다 진행되고 있다. 조계사는 수행공간이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성역화 불사의
인류 최초의 종합대학인 인도 나란타대학(那蘭陀大學). 굽타왕조의 왕 쿠마라굽타 1세(415~454)를 시작으로 여섯 군주가 수백년 동안 불사를 이어갔던 곳이다. 오래전 석가모니 부처가 전법교화를 펼치기도 했던 곳은 대학이 들어선 후 많은 승려·학자가 했다.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 스님도 이곳에서 유학하며 불교를 배웠다. 나란타대학은 1915년 발굴된 규모만 남북 500m, 동서 250m에 이른다. 대규모의 사역(寺域)에서는 사각형의 수행처와 5동의 사찰, 10동의 승방(僧房)터가 발굴됐다. 한국에도 나란타대학 같은 곳이 있다. 대구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한국불교대학(舊 영남불교대학) 대관음사가 그곳이다. 대구시 남구 봉덕3동 대로변에 자리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연건평이 5000여 평에 이르는 매머드급 도
서울 봉은사(주지 진화)에서 진행하는 강주스님 초청 세 번째 법회가 송광사 승가대학장 일귀 스님을 법사로 6월 12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봉행됐다. 스님은 “한국의 미래를 부탁하기 위해 봉은사에 왔다”며 “봉은사 신도들은 미래의 한국이 지금처럼 위상을 잃지 않고, 한국 불교가 존경받는 세상이 되도록 지금부터 관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법문의 요지다. # 한국불자들 정신차려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강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곳에 사는 분들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축복받은 분들이다. 이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봉은사에 왔다. 강남이 한국의 1번지이듯이 봉은사는 불교의 일번지이다. 신라, 고려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시대까지도 봉은사는 불
소담스럽게 핀 꽃과 나무들을 지나 들어간 북 카페는 따스한 봄 햇살이 안락함을 더하고 있었다. 이호신 화백의 천불만다라로 장식된 벽면 덕에 북카페는 갤러리와 카페를 겸한 갤러리 카페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고양시 용두동 금륜사는 ‘현대적’이라는 수식어로는 설명이 부족한 사찰이었다. 1층은 북카페로, 2층은 법당으로 활용하고 있는 화엄의 공간이라고 해야할까. 금륜사 주지 본각(本覺) 스님은 “부처님이 주신 선물”이라며 곳곳을 친절히 설명했다. 두루두루 손이 안 간 곳이 없었다.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공간에서는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이 생겨날 듯싶다. 종교와젠더연구소 옥복연 소장, 연구원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 전나
‘놀토(쉬는 토요일)’가 한국불교의 신행형태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2012년부터 전국 초ㆍ중ㆍ고교에 대한 ‘주5일 수업제’ 도입에 따라 가정과 직장, 여가생활은 물론 종교생활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각 사찰은 물론 종단차원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정부는 6월 14일 2012학년도부터 전국 초ㆍ중ㆍ고교를 대상으로 주5일 수업제를 전면 자율 도입한다고 밝혔다. 월 2회 토요일 등교를 하던 학생들이 모든 토요일을 쉬게 되면 어린이ㆍ청소년 일요법회는 물론 성인들의 법회 시간과 주말 프로그램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동련 이사장 심산 스님(부산 홍법사 주지)은 “주5일제의 전면 시행은 한국 사회의 지각변동이다. 단순히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개인사찰의 변화가 아니라 종단 차원에서의 대안이
선거 때나 인사를 받을 수 있던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향해 절을 했다. 4월 19일 조계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불자 국회의원들의 상생과 화해 법회의 모습이었다. 법회에서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국회의원들을 향해 “불교계와 조계종에 잘못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잘못했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오늘 번지수를 잘못 짚은 셈”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ㆍ여당도 불교계와 조계종도 국민을 부처님으로 가슴 깊이 새기고,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번지수를 제대로 찾은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스님의 일갈 끝에 국회의원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100배를 했다. 도법 스님은 지난해 화쟁위원회를 통해 봉은사 직영지정 문제와 4대강 사업을 1000년 전 원효 대사의
황사와 비가 연달아 봄날 하늘을 찌푸둥하게 하더니, 4월 28일 아침은 유난히 화창하다. 바쁜 일상에서 탈출해 모처럼 고요한 산사에 주석하는 선지식을 찾아나선 탓일까.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에 위치한 석남사 가는 길은 313번 지방도로 주변에 벚꽃이 유달리 환하게 피어 나그네를 반긴다. 이윽고 마둔호수를 지나 상촌마을 뒤에서 산사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길옆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한껏 푸르름을 자랑하는 봄 풍경이 마음까지 저절로 맑히는듯 하다. 서운산(547m) 자락에 아늑하게 둥지를 튼 석남사는 어느 절 보다 편안함을 준다. 쌍둥이 처럼 귀엽게 서 있는 2기의 석탑(향토유적 제19호)과 무척 정감이 가는 보물 제823호 영산전을 지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을
서울 봉은사(주지 진화)가 5월 22일~ 6월 26일 전국 유명 승가대학 강주스님들을 초청해 일요법회를 5회에 걸쳐 진행한다. 첫 날인 5월 22일에는 해인사 승가대학장 해월 스님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법문을 했다. 이날 해월 스님은 인연 노름에 빠지지 말고, ‘상(相)’이 아닌 ‘성(性)’을 보는 공부를 할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 법회에서는 6월 5일 통도사 승가대학장 현진 스님이 법문을 한다. 세 번째 법회는 6월 12일 송광사 승가대학장 일귀 스님이, 네 번째 법회는 6월 19일 실상사 화엄승가대학원 학장 해강 스님이, 다섯 번째 법회는 6월 26일에 前 해인사 승가대학장 법진 스님이 불자와 일반인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달한다.? 젊은 시절 어느 날 전라
완연한 봄, 서울 도심 도로는 겨울처럼 삭막하다. 쉼 없는 정체. 가다서다를 반복하기를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서울 종로에서 군포 정혜사까지는 그렇게 지루했다. 불가에는 불도(佛道)를 찾아 부처가 되는 과정을 10단계의 그림으로 설명한심우도(尋牛圖)가 있다. 심우도는 수행자들이 불교에 입문해 수행을 통해 부처[佛]의 경지에 이르는 ‘각(覺 : 깨달음)’을 설명하고 있다. 심우도는 중국 송대(宋代) 보명(普明)과 곽암(郭庵) 두 스님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했다. 두 가지 이본(異本)이 있어 곽암의 심우도를 십우도(十牛圖)라 하고, 보명의 심우도를 목우도(牧牛圖)라 했다. 한국에는 곽암의 십우도가 전해져 오고 있으며, 보명의 목우도는 글만 전한다. 보명(普明)의 목우도(牧牛圖)는 △미목(未牧): 길들이기
1922년 조선총독부는 오대산 사고에 보관된 조선왕실의궤를 약탈하고 일본 궁내청 황실도서관에 기증한다. 사고를 지키던 스님들은 강하게 저항했지만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힘은 미약했다. 이후 85년의 세월이 흘러, 2006년 9월 14일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행동을 알렸다. 발족식 후 환수위는 일본 대사관에 ‘조선왕실의궤 반환요청서’를 전달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프랑스에 위치한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해 의궤 반환문제를 협의했다. 2007년 8월에는 일본 공산당에서 오가타 의원과 카사이 의원이 한국을 찾아 김원웅, 이화영, 손봉숙 의원과 면담을 갖고, 오대산 사고를 방문했다. 2008년 8월 경 환수위는 평양을 방문해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촉구하는 남북 공동합의서를 작성하
“의궤환수는 온 국민의 쾌거입니다. 일본에 흩어져 있는 1000여 점 이상의 우리 문화재들이 모두 환수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동참이 중요합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공동대표인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월정사는 조선시대 ‘오대산 사고’의 수호사찰로 월정사 주지는 오대산 사고의 수호총섭의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1922년 오대산 사고에 있던 실록을 일본이 강압적으로 약탈했고, 89년 만에 의궤를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의궤를 400년 간 수호해왔던 월정사로서도 기쁜 일이지만 환수를 위해 일본에서 노력해 준 여러 인사들과 국민들의 관심이 있어 가능했던 일입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의궤가 제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와 ‘한국문화재 일본 탐방단’은 5월 12~14일 일본 내 우리 문화재 현황을 둘러보는 탐방을 진행했다. 선조의 숨결이 스며있는 문화재들은 약탈된 채 일본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돼 있었다. 탐방단은 이런 광경을 보며 의궤환수를 시작으로 일본 내 우리 문화재를 지속적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 탐방단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에도성이었다. 그곳에는 탐방단이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조선왕실의궤’가 보관돼 있다. 에도성은 일본 최고 정무기관으로 에도 막부 시절 쇼군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다. 메이지 유신 때 황실의 교토 어소가 에도성으로 이전된 후 줄곧 일왕이 거주하고 있는 ‘황궁’이다. 탐방단은 일본 황실에 의궤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에서 일본이 의궤를 약탈물?전리품으로 생각
지역불교는 변방이 아니다. 우리나라 불자의 대부분은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영남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지역불교는 한국불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발전을 위한 초석이다. 본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도권, 강원ㆍ충청, 영남, 호남, 제주ㆍ섬 등 전국 5대 권역의 지역포교 일꾼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지역불교를 진단했다. 지역불교는 대부분 청년 불자 감소와 이를 극복할 교육 및 포교방안 부재를 공통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충청불교는 전국적으로 비교 했을 때 많은 수의 사찰들이 분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교 및 전법 활동의 구심점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충청지역의 조계종 교구본사만 해도 지역의 대도시인 대전과 거리가 멀다보니 포교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일례로 대전 시청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동쪽으로 보현봉, 서쪽으로 비봉이 절을 감싼 아름다운 경관. 저 멀리 남쪽으로 한강을 지나 관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삼각산 문수봉(715m) 아래 둥지를 튼 문수사. 1109년(고려 예종 4년)에 탄연(坦然) 스님이 창건한 천년고찰 문수사는 오대산 문수사, 고성 문수사와 함께 우리나라 문수보살의 3대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기도성지로 더욱 명성이 난 일화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개신교 장로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어머니가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명성황후가 봉안한 대웅전 문수보살좌상과 영친왕 이은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봉안한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것도 영험한 기도처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조계종의 중흥조인 태고보우 국사가 이 절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실은 문수사가 문수보
각 사찰들이 다양한 부대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불교적 정체성 강화를 위한 수익의 사회적 회향을 강화가 필요한 실정이다. 통도사 서운암의 된장 등 각종 장류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상품이다. 금산 삼덕사는 지역 특산물인 인삼을 가공한 홍삼액을 제조ㆍ판매하고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사찰들이 위치한 지역적 특색과 주변 자원을 활용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사찰들은 신도의 보시금에 의존해 운영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입액이 일정하지 않아 사찰 재정 운영의 어려움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산중이나 외지에 있는 사찰들은 신도들의 숫자도 적어 재정적 어려움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각 사찰들은 별도 법인을 설립해 부대사업의 다각화와 전문화를 꾀하며 사찰 재정 안정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혹자 중에는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면 사찰은 저절로 운영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출가수행자의 삶에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활고에 어려움을 겪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 또한 여법한 사찰의 운영에도 불구하고 폐사(廢寺)되는 사찰 혹은 포교당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사찰을 신행공간으로만 인식한 채 그 운영에는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재원이 소요됨을 간과하고는 한다. 그렇다고 종교조직인 사찰이 일반기업처럼 수익사업을 전개하기도 곤란하다. 사찰의 재원은 신도의 보시로 확보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종교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에 과거 초기불교교단에서 출가수행자의 경제행위는 일체 금지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계율로써 받아들여지고
전국 사찰들이 안정적 운영을 위한 부대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활성화를 위한 종단차원의 지원방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찰들은 수년전부터 신도들의 보시금 의존도 완화와 재정 안정화를 위한 부대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윤추구를 멀리하는 불교계 특성상 이런 활동을 지원할 전문 컨설팅과 운영 노하우가 부족한 형편이다. 결국 사찰들은 긴 세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사찰들은 또 대량 생산을 위한 자동화 설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면 생산량을 늘려 판매를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찰들은 고가의 설비를 마련하지 못해 수공업 방식이나 소규모 제조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화 선원사는 연(蓮)을 재배해 다양한 상품
? ? ? ? 이월의 하늘은 눈 시리게 푸른빛이었다. 볼에 와 닿는 바람은 차갑고 산색은 아직 겨울 빛깔이다. 정혜사로 가는 길은 하늘 길처럼 까마득해 보였다. 천팔십 개의
? ? ? ? 종교와 젠더연구소(소장 옥복연)는 매월 비구니 스님을 만나 현대 여성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듣는다. 불교여성리더의 역할모델을 찾아 비구니로서 교단에 최초로
2003년 창립한 인드라망생협은 불교계 생협 중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창립 초기 4억이었던 인드라망생협의 매출액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10억 수준으로 늘어났다. 현재 700명 정도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는 불교계 다른 생협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2009년 11월 창립한 대불청 ‘연꽃생활협동조합’의 연평균 매출액은 1억이며 조합원수는 340명 정도다. 2007년 7월 창립한 대전불교생협은 5000만원 정도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520명의 조합원이 참여 중이다. 그러나 10년 동안의 꾸준한 활동 속에서 성장한 인드라망생협 조차 스스로를 “시작단계”라고 자평한다. 불교보다 앞서 환경과 생명의 가치를 실천한 천주교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