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길을 나서다“그동안 나는 역사적인 붓다의 모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해 왔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알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부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는 한마디입니다. 모든 것을 현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 ‘붓다의 땅’으로 왔습니다.”-〈성지에서 쓴 편지〉 22쪽초기불교를 연구하는 학자 호진 스님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도반이신 지안 스님에게 쓴 편지입니다. 여행이라는 말은 낭만적이고 홀가분합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여행하고, 쉬려고 여행하고, 새로운
척추 협착으로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이 묻는 것 중 하나가 ‘왜 가는 병원마다 진단과 치료가 다른가’와 ‘척추에 퇴행이 생겼다는데 도대체 퇴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다. 흔한 척추질환(염좌, 추간판 파열, 협착증 등)은 대부분 퇴행으로 인해 발생한다. 목도 그렇고, 허리도 그렇다. 그렇다면 퇴행(degeneration)이란 무엇인가? 각자의 차이가 있겠으나, 발생학적으로 인체의 성장, 노화 과정은 세포에서 시작해서 출생 후 20세 경 신체적으로 완성되고 서서히 소모 시키는 과정일 것이다. 즉 새 기계인 상태에서 사용하면 할수록 닳듯
갑진년(甲辰年) 구정도 지나고 본격적으로 청룡(靑龍)의 해에 들어섰다. 용은 12지(十二支)의 동물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은 뱀, 비늘은 잉어,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용을 마귀의 상징으로 언급하지만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용을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 임금이 입는 옷은 곤룡포(茂龍袍), 임금이 앉는 의자는 용상(龍牀)이라 하여 왕권을 상징했다. 사찰에서도 용은 불법을 수호하거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는 반야용선(
큰명절 설날!오늘은 온 가족이 모이는 설레는 날 새해 복도 많이 나누고 올해도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남도를 대표하는 두륜산은 영축산과 흡사하다. 두륜산 정상에 누워 계신 부처님과 영축산을 지키는 적멸보궁이 다르지 않다. 그 앞에만 서면 얼었던 마음이 풀리고 만다. 넓은 품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쉬게 하는 것도 똑같다.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 될 것이다.”서산 대사의 말씀과 같이 두륜산과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법맥을 올곧게 이어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서산 대사의 의발이 전수된 뒤 수많은 수행자를 배출한 명찰인 대흥사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선해교림(禪海敎
저녁이면 전화가 울립니다. 며칠마다 오는 전화입니다. 받아야 하나 잠시 망설입니다. 그렇게 몇 번을 고민하다가 받습니다.“스님, 제가 ○○를 가져다 놓았는데 잘 드시고요. 저는 스님에게 저를 맡기고 삽니다.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연세가 많은 어르신의 당부입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주 이어집니다. 조금씩 오는 전화가 부담이 되어갑니다. ‘사랑 받는 자식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사랑을 받을 만큼 저는 그분을 위해 충분히 마음을 내어
강력한 진통 효과로 알려져 있는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morphine)을 맞아도 효과가 없었다. 몸에는 이미 모르핀보다 강력한 펜타닐(fentanyl)이라는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연결하고 진통 패치도 붙여둔 상황이었다. 지난 1월 3일 극심한 다리 통증으로 앉고 서는 것이 불가능해 결국은 앰뷸런스를 타야 했다. 그동안 다리에서 느낀 방사통을 참으며 나름대로 관리를 했지만 단순한 디스크가 아닌 ‘척추전방전위증(척추분리증)’으로 수술은 불가피했고, 심하게 눌린 신경으로 인해 수술 후에도 통증이 사라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통증과
선재길을 걷다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여 전국의 걷기 좋은 길에 이름을 붙인 뒤, 여유롭게 그 길을 걷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미 많은 사람이 걷던 길도 있고, 지역주민만 걷던 길도 있고, 새롭게 만든 길도 있다. 그중에 걷기에 힘들지만 큰 기쁨을 주는 길도 있고, 그저 그런 길도 있다.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10㎞ 선재길은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멋진 길이다. 전 구간을 걷지 않더라도 월정사 주차장에서 섶다리까지 계곡을 낀 오솔길은 참으로 좋다. 편도 3㎞, 50분 내외 거리다. 물론 초입에 있는 전나무숲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계의 그릇이 온전해야 선정의 물이 고이고 선정의 물이 온전히 고이면 지혜의 달이 뜬다.
살아서 마음 도리 알아야 한다는데질문 스님께서는 살아서 이 도리를 알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이 마음 도리를 모르고 몸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지요.답변 항상 여러분한테 생활이 공부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교재라고 했습니다. ‘불(佛)’이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말하고 ‘교(敎)’라는 것은 생활, 삶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공부하는 이유가 어딨느냐. 사람이 살면서 내 주인공의 줄을…, 이건 근본이기 때문에 움죽거리진 않습니다.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의 줄을 잡고 그 언덕을 넘어서야 된다는 얘기죠. 즉 말하자면, 천야만야한 산을
정차(精茶)는 잘 만들어진 좋은 차를 말하며, 이를 명차(名茶)라고 부른다. 명산(名山)에는 명차가 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차를 영초(靈草)라 인식했던 것과 상통되는 맥락이다. 차를 신령한 물질로 인식했던 것은 초의 선사(1786~1866)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그는 에서 “더구나 너의 신령한 뿌리는 신선산에 의탁했으니 신선처럼 맑은 차는 그 품격이 다르다(爾靈根托神山 仙風玉骨自種)”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차를 신선처럼 맑은 품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한 연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차의 천진무구한 천연성, 바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을(男兒到處是故鄕)나그네 인생 시름 속에 길게 헤매이네(幾人長在客愁中)깨달음의 고함 악! 하고 외치니 삼천세계 깨지고(一聲喝破三千界)눈 속에 붉은 복사꽃은 조각조각 흩날리네(雪裡桃花片片紅)이 시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39세(1917년 12월 3일 밤 10시경)에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서 좌선을 하던 중 갑자기 분 바람에 무슨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지은 오도송이다.칠언절구의 이 시는 전형적인 근체시의 시의 형식인 압운(押韻: 鄕, 中, 紅)과 대구(對句)가 잘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네 어머니 뱃속이 시원하더냐, 답답하더냐.”“답답하니까 나왔겠지요. 시원하면 나왔겠습니까.” 서암 스님을 뵈던 날, 이제 겨우 행자 시절을 보내던 젊은 스님은 선승의 질문에 스스럼없이 답을 던졌다. 막 걸음을 떼는 제자의 당돌한 대답에 타박 한마디 던질 법도 하건만, 노구의 선승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이어지던 그날의 선문답은 이제는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그날의 제자에게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눈앞을 밝힌다. 그날의 인생국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어요.” 경상북도 상주 남
얼마 전 최초로 영남지역 대학생 연합 템플스테이와 수계법회가 통도사에서 봉행됐다. 그동안 이 아름다운 도량에서 대학생들의 동아리 연합 템플스테이나 연수를 염원하고 희망했던지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나도 한때는 호기심과 열정,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용기로 청춘을 살았다. 배고픈 불교학도들에게 공양을 손수 챙겨주며 따뜻하게 보살펴주시는 스님들의 마음에 감화되어 그 시절에 금강경 육조단경을 접하고, 결국에는 출가도 하게 되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대학생들을 데리고 통도사로 들어가니 20대로 돌아간 마냥 들뜨기도 했다.74
한겨울인데도 마트에선 진공 포장된 옥수수를 만날 수 있다. 옥수수를 보니 몇 해 전 추억이 떠오른다. 밥보다 떡이랑 옥수수를 더 좋아하시는 친정엄마께서는 집 앞에 옥수수를 아주 많이 심으셨다. 풍성한 수확물을 기대하고 열심히 관리하면서,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을 기다리셨다. 드디어 내일은 옥수수를 따는 날이라고 하셨고, 커다란 옥수수 자루를 밭에 갖다놓으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루를 바라보며 엄마께서는 들떠 있으셨다.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나가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누군가 옥수수를 다 따서 자루째 가져간 것이다. 단 한 개의 옥
(지난 호에 이어서)우리가 이런 공부를 많이 한다면 세계 평화가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소립니다. 전부 바깥에서, 지금도 거기 싸우는 나라 어딥니까. 거기 대통령이 말하는 데도 “우리는 알라신이 이기게 한다.” 그러고는 “저렇게 악인들은 다 떨어진다.” 즉, 죽는다 이거죠. 조그마한 쿠웨이트가 기름으로 인해서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삼분의 일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그것도 적다고 그냥 뺏어 버린 거 아닙니까? 그렇게 욕심이 많은데 어떻게 부처님인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게 ‘페만’이 아니라 ‘패망’이죠. 마음 한생각에
선불장(選佛場), ‘부처를 선발하는 자리’라는 말로 사찰의 승당이나 선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충남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에도 ‘선불장’ 현판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부처를 선발하는 곳, 오등선원을 이끄는 선지식이 선원의 조실이자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학산 대원 대종사다.학림사 오등선원은 대원 스님이 1986년 옛 제석사의 터에 건립한 사찰이다. 10여 년 후 학림사 내에 오등선원을 세워 가람의 격을 갖추었고, 선원의 개원과 아울러 대원 스님을 조실로 추대했다. 2001년에는 오등시민선원을 건립해 일반 불자들도 정진할 수 있게 했다. 지
신라인은 불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경주 선도산(仙桃山)과 단석산 꼭대기 바위에 부처님을 조성했다. 신을 섬기던 신라인들에게 산 정상에 우뚝 솟은 바위는 신과 소통하거나 신성이 깃든 신령한 바위로 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불교가 들어오면서 신 또한 윤회하는 존재로 천상에 태어난 중생임을 알게 된다. 하늘과 산과 바위에 스며들어 있던 절대적 신의 권위는 불교문화에 녹아들어 육도윤회를 하는 중생이 된 것이다. 당연히 신라인들이 섬기던 하늘의 신은 윤회하는 중생이란 의미에서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고, 산과 바위의 성스러움에서
보리수서 일어선 젊은 부처님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자, 이제 그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붓다라고 불릴 뿐입니다. 붓다가 되기 이전과 되고 난 후 그 위상은 너무나 다릅니다. 예전에는 한 소국가의 왕자였고, 열반의 경지를 얻을 수 있을까를 모색하던 구도자(보살)였다면, 이제 그분은 붓다가 됐습니다. 붓다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진리를 나눠준 대상은 아시다시피 5비구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과 함께 고행을 하다가 자신의 고행포기에 실망해 다른 곳으로 옮겨간 다섯 수행자들입니다. 부처님이 그들을 찾아
많은 종교들은 종말을 이야기한다. 인간을 비롯한 세상 만물이 미래에는 모두 멸망하게 된다면서 그때 자기 종교만이 구원을 약속하리라는 종말론은 대중의 믿음을 이끌어내는데 아주 유효하다. 그런데 불교는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현세를 극복할 희망을 이야기한다.현상계는 생성과 지속, 소멸의 과정을 되풀이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윤회를 거듭하는데, 언제부터 윤회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행을 완수해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지 않는아라한이 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불이 있었든 미래불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