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진짜로 가는 곳곳마다 그렇게 웃고 사세요 그냥 막 우그러져서 즉, 조상이라든가 무슨 일이 있어서 집안이 낭가가 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빨리빨리 생각나는 대로 펴야지, 우물쭈물하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는 펴지도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문)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믿음을 갖고 참된 도의 길을 갈 수 있는지요? 답) 우리가 지금 종교라고 해서 믿고 다닌다 이런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종교를 믿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자신들, 이 껍데기인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살고 있고 이끌어 가는 내가 있으니까 꼭 그것은 서로가 상봉하고 받아야 되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믿어야 되겠다. 믿지 않는다
여러분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믿지 못하니까 모든 것을 거기다가 맡길 수도 없고 맡기지 못하니까 방황하게 되고 방황하니까 일이 잘 안되고 이런 거뿐입니다. 그러니까 알아서들 하십시오. (지난 호에 이어서) 한마디로 말해서, 요새 그 어디 화엄경에 보니까 뭐가 써있느냐 하면요, ‘이외에 공심(共心)인 부처님 세계에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광대무변이라. 광대무변하니라.’ 그게 이름이라는 거예요. 또 ‘보배장엄이라.’ 이 이름을 똑같이 써놓고 똑같이 그렇게 해나가는 거예요. 그러니 그 이름이 전체 부처님 이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광대합니까, 이게. 그러나 따지고 보면 형체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오는 것 막지 말고 가는 것 잡지 말고 아무리 우리 도량에 누가 소 한 마리를 잡아왔다 하더라도 공손한 마음으로 지극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이 그게 진짜 부처님 법입니다. 이 도량이 비좁아서 여러분이 바깥에 저렇게 전부 서 계신 걸 생각하니 죄송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식당이고 어디고 꽉꽉 들어차면서도 마당에 저렇게 섰어야 하는 여러분께 뭐라고 죄송한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마음공부 하는 데는 공부라고 하기 이전에 생활이 공부니까 이것 저것을 따지고 자리가 좁다고 해서 안 올 정도라면 그건 공부 다했죠. 진짜 100% 인간 될 수 있는 그 공부가 지금 시급한 시대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겁니다. 왜 우리가 정월이면 촛불재를 올리느냐 하는 것에 대
알고보면 하나도 나를 내세울 게 없는 겁니다. 나 아닌 나가 있으니까요. 나 아닌 나가 나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체 만법을 가지고 있고 일체 화현의 도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싶어요 문) 마음공부에 대한 욕심은 많은데 체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믿음이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여러분 개개인에게 불성이 있습니다. 불성을 한번 돌려서 말하면 성불이죠. 여러분이 그냥 보통 이렇게 최초부터, 생명이 생길 때부터 가지고 계신 보배이기 때문에 그 보배로 인해서 이렇게 움죽거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알고 이 법이 옳은가 그른가도 생각을 해 보게 되고, 팔정도로 말을 그렇게 해 놨으니까 여
한마음 속에 온 누리를 다 덮고도 남음이 있고 온 누리에 통신 안됨이 없으니 온 누리에 한마음으로서 바로 공심으로 돌아갈 때 그 조상의 마음도 그냥 거기 한자리를 하는 것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천도재를 지냈습니다마는 어느 도량에 가든, 돌아가신 조상님이나 살아 계신 분에게 천도를 많이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시고, 곁들여서 영(靈)의 세계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그 뭐, 그 얘기 하면 영도 들어가는데 뭐를 또 붙였습니까? 하하하…. 그것도 세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차원은 모를 때에, 모르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그냥 따라서 천도식을 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흉내를 낸다,
목마르면 그냥 물 마시는 것, 그게 바로 불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가 붙지 않는 데서, 나라는 걸 세우지 않는 데서 바로 구경경지를 이루어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1(남): 큰스님, 제가 질문 드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법의 공부 과정을 삼단계로 가르쳐 주셨는데 첫째는 참나의 발견, 즉 자아(自我)의 발견과 완성, 둘째는 모두와 하나가 되는 것, 즉 전체 속에 자기가 있음을, 셋째는 이런 수행을 거쳐 보살도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둔한 저희들은 평소 큰스님의 법문을 통하여 여러 번 가르침을 받아 왔지만 아직까지 미혹한 가운데 있습니다. 차제에 이 삼 단계의 공부 과정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여러분한테 항상 말씀드리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얼른 와 닿
? 주인공에다 모든 걸 놓고 하라,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구정물 들어오는 것도 맑은 물 들어오는 것도 탓하지 말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그 물로 바꿔 써라. 천도는 마음으로 마음을 녹이는 거라는데 문) 이제 새해를 맞이하면서 촛불재로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제가 어느 스님께 절에서 천도재를 모실 때 스님들께서 영가를 보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조상 영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마음을 녹여 주시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천도하는 조상의 모습을 못 보면서 어떻게 재사를 모시는지 궁금합니다. 답) 옛날에 이런 점이 있었죠. 어느 분이 재사를 지내러 왔는데, 처음 오시는 분인데 그 난리 때 어떻게 돌아가셨대요, 부모님이. 그랬는데 내가 왜 부모를 담요에다 이렇게
자기부터 알고 자기 중생부터 제도해야 합니다 내 몸뚱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말고 다 내놔라. 다 내놓게 돼서 다 나 아님이 없을 때에 비로소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지난 호에 이어서) 내가 그전에도 얘기를 했죠. 그 뜨물 한 그릇 얻어먹고 나뭇짐을 해다 주려고 그랬는데, 은사가 그냥 한 번 때려 제껴서는 쓰러뜨려 놓고 “이놈아! 나무 한 짐으로써 무주상 보시가 될 수 있겠느냐?”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행하고 난 뒤에는 “아차, 무주상 보시가 이렇게 광대무변한 걸 몰랐구나. 그 핵심적인 여기에서의 한생각이면 무주상 보시의 행을 할 거를 내가 이 나뭇짐을 하느라고 이렇게 끄달렸구나.” 하곤 그냥 무르팍을 탁 치고, 무르팍 깨진 거를 어루만지면서 “고맙다, 고마워.” 했다는 얘기 말이에요. 이렇게
세계적으로 지금 부패되고 하는 그 모두가 마음에서 나오는 염파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잔잔하게 하고 안정되게 하고 전 세계를 파악해서 올라가는 거는 좀 내리고, 또 내려가는 거는 좀 올리고 이렇게 균형을 맞추면서 세계를 조정할 수 있는 그러한 주장자가 바로 여러분의 핵심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생각 좀 해 보십시오. 안방에 앉아서 세계를 봅니다. 또 인공위성을 통해 여기 한국의 신문이 미국으로 떨어지는데 한 찰나에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가 가르치는 것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걸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오신통이라는 그 시스템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여러분이 잘 아시겠죠. 전자에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해 놓으신 것이 지금 실천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
생활 속에서 이 마음도리를 공부하면서 실험하고 체험해보세요. 얼마나 묘하고 광대무변한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어렵더라도 잘 넘기면서 직발 활을 쏠 수 있는 심력을 기르도록 하세요. 이것도 기복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 문) 저는 엄마와 두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요, 엄마는 아파서 드러누워 있고, 때문에 제가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서 관을 많이 하게 돼요. 그런데 가끔 이렇게 관하고 맡기다 보면 이것도 기복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하는데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답) 기복이라는 건 상대를 두고 믿는 거를 기복이라고 그러죠. 절대 상대를 두고 믿는다면은 그건 기복이에요. 그러나 이게 불성, 생명의 근본은 다 똑같은 것입니다. 다 똑같은데 마음 쓰는 거라든가 차원이라든가 모
집착을 하지 마시고 그대로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겸손하고 의리있고 도의에서 벗어나지 않게 자기를 자기가 다스리면서 모든 것을 부드럽게 해 나가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옛날에는 당나귀 끌고 다니던 마부가 많이 있었죠. 당나귀를 끌고 다니는 마부가 얼마나 때리고 일을 부려먹었는지 당나귀가 앙심을 먹고 죽어서 그냥 남편으로 태어나고 마부를 부인으로 해서 맞아들였어요. 하하하…. 그래 가지고는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그냥 때리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삽니까? 옛날에야 함부로 이혼도 못하고 시집도 마음대로 못 갔으니 말이죠. 그러니까 그냥 울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냐고, 자기가 지은 죄는 모르고요. 아, 이러고 울고불고 그러는데 어느 스님이 탁발을 하러 오셨더랍니다. 그래서
믿음이 진실하고 넉넉하다면 어떠한 것도 다 잊어버리고 허허 웃을 수 있습니다. 허허 웃을 수 있어야 웃을 수 있게끔 다시 돌아옵니다. 여러분과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 항상 한마음으로 행하시길 빌면서…, 즐겁습니다. 올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듯합니다. 우리가 배급을 탈 때 연방 돌아가서 뒤에 서고 또 서고 하는 거와 같이, 사람 사는 도리도 역시 그러합니다. 지구의 끝을 찾으려고 계속 가니까 처음 자기가 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는 얘기가 있듯이, 우리가 죽는다 하는 것도 아주 죽는 게 아니라 그 재료로 인해서 다시 형성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천당 지옥이 따로 숨겨져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 죽으면 사흘 이내로, 다시 어떠한 모습으로 형성되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