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부는 모든 걸 무효를 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겁니다. 잘되고 잘못되는 거를 다 그냥 무효를 시키면서 새로이 내가 원하는 모든 거를 개척해 나가는 거죠.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자기 님을, 즉 말하자면 과거에 수없이 살아오고 형성시킨 자기 자랑스러운 님을 ‘주님’이라고 하는 거죠, 본래는. 그런 건데 모두 기독교에서나 가톨릭교에서나, 나도 가톨릭교에 좀 있어 봤습니다는 말이에요, 내가 기껏 잘못해 놓고 고해 성사 할 때는 신부님한테 가서 다 옮기고 돌아서죠. 그러곤 편안하다고 돌아서는 거예요. 나도 그래 봤으니까요.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에누리가 없는 게 세상살이에요. 삶이에요, 모두가. 우연히도 없어요. 부부가 만났는데도 우연이 없어요. 이 세상에 나가 보세요, 전부 끼리끼리
자동차를 너라고 하지 말고 자동차 속의 운전수를 너라고 해라. 믿어서 너를 발견한다면 운전수와 자동차가 콤비가 돼서 항상 같이할 수 있어서 살기가 유유하느니라. 토론토 여러분과 함께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참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자리를 해서 우리가 어떠한 삶의 발전을 해야 옳을는지는 여러분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불교라는 단어는 어느 한군데 국한돼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불은 일체 만물만생의 근본을 불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근본. 또 우리가 태어나서 생활을 하는 이 자체가 바로 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우고 느끼고 물리가 트이고 지혜롭게 나가는 그 발전력은 바로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진행되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생활 속이 바로 교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달리 생각하시고 우리가 종교라는 이름
? 이?세상만사,?돌?하나?풀?한?포기도?내?스승?아닌?게?하나도?없고 내?생명?아닌?게?하나도?없고?내?몸?아닌?게?하나도?없으니 어찌?내가?했다고?하며?내가?잘한다고?하며?내가?말한다고?할?수?있겠습니까? ? 가르침의?요체가?무엇인지요? 질문?이?길?저?길을?헤매다가?이?마음법이야말로?최상승의?공부이고?개인적인?자아에서?벗어나?일체와?둘?아닌?대장부가?되는?가장?확실한?길이다라는?확신을?가지게?되었습니다.?단도직입적으로?여쭙겠습니다.?큰스님?가르침의?요체가?무엇인지요??어떻게?공부해?나가야?큰스님의?가르침을?온전하게?제?삶?속에서?실현해?나갈?수?있는지?여쭙고?싶습니다. 답변?우리가?공부하고?가는?거는?다른?게?아닙니다.?바로?여러분?몸속에?있는
? 병고가?오든?애고(哀苦)가?오든?어떤?환난이?오든?그?모든?걸?되돌려?놔라. 거기다?놓으면은,?불에다가?불을?넣으면?그냥?하나가?돼?버린다. 불덩어리에다가?그냥?놓으면?용광로에?넣듯이?그냥?녹아?버린다. (지난?호에?이어서) 이런?문제?등등이?나올?때?이게?보통?일이?아닙니다.?이?스님네들도?그렇고?여러분도?그렇고,?내가?이렇게?해?나가는?일은?자나?깨나?오직?정신을?거기다?두고서?이?삶의?보람을?자유스럽게?누리면서,?이렇게?다른?사람도?돌봐?주면서?다스리면서?나가야?되는?거지,?그것도?욕심이?과해서?그렇게?한다면?그건?이?세상에서?버림받고?또는?세세생생에?버림을?받아서?오간지옥에?태어나서?국내?밥내도?못?맡게?됩니다.?사람의?의식으로?살다가?벌레가
? 자기가?가는?곳마다?부처가?계신데, 여기서?정진을?한다고?해서?부처님이?자기를?돌보고 이?자리에?앉아?있지?않는다고?해서?안?돌보겠습니까? 여러분께서?이렇게?하늘과?땅이?둘이?아닌?도리를?공부하시는데?때로는?너무?힘들게?생각하시는?분들도?여러?분?계시리라고?믿습니다.?그런데?사실은?힘든?게?하나도?없습니다.?생활이?그대로?부처님?법이자?우리들의?법이기?때문입니다.?항상?말씀드리지만,?생활?빼놓고?무슨?부처님?법이?있겠습니까??여러분이?계시지?않는다면?이?종교라는?것도?없고?법당이라는?것도?없을?것입니다.?그리고?부처님의?형상도?없을?것입니다. 그래서?얘긴데?우리가?돈오(頓悟)라는?것은?위에서?그대로?깨쳐서?실천을?해?내려오는?과정을?말하고,?점수(漸修)라는?것은?밑에
순한 양처럼 되는 마음도 놓고 악하게 나오는 마음도 놓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한마음으로 순응한다. 항복을 받는다. 무의 공법이 어떤 단계인지요 질문?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스님 법문 중에 무의 공법이라는 말씀이 있던데 그것이 어떤 단계인지요. 답변?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미생물에서부터 진화되고 형성돼서 인간까지 왔으니만큼, 이 인간 중에서도 진짜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짜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모든 것을 벗어나야 한다.”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죠. 그러니까 이 마음의 주장자의 자리를 완벽하게 해 놔야 된다는 건데, 이게 결국은 보림하는 겁니다. 즉 말하자면 수억겁을 통해서 겪어 온 관습이나
본래 스스로서 청정하고, 스스로서 체계가 서 있고 계율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계율도 없고 질서도 없고 청정함도 없는 게 진리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모두 공(空)해서 찰나찰나 돌아가는 거니까 그냥 놔라. 이게 공해서 돌아가니까 거기다 놔라 이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놓으라면 놓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겁니다. 놓는 게 뭐냐? 왜 어떤 스님은 방하착(放下着)을 하라 그러고, 어떤 스님은 놓으라 그러느냐? 이것은 첫째 진실히 자기 자성(自性), 자체 불성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물러서지 않아야 하고 셋째는 그대로 믿고 활용을 하고 밀고 넘어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무전통신기도 눌러야 통신이 되죠? 불을 켜려 해도
자기 자신이 간을 타서 맞게 먹을 수 있어야 그것이 참사람이요, 그것이 바로 스스로서 계율이 따로 없고 스스로서 질서도 없고 스스로서 법칙도 없다 하는 거죠. 일체가 한마음 한뜻으로서 천(天)·지(地)·인(人)이 다 공용(共用) 공체(共體) 하면서 우리는 혼연일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색상(色相)이라는 것은 너 나가 있으니 오래도록 못 만났습니다. 이렇게 오래간만에 여러분과 같이 한자리를 하지만 우리 색상이 허무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색상이 실체라는 것, 또한 실질적으로 이 색상이 있기 때문에 공부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의 모습은 허무하다고 버리면서까지 이 도리를 알려고 애를 쓴다면 그거는 극히 오산일 것입니다. 수많은 스님네들과 더불어, 인도로 중국으로
관한다 하는 것은 쉴 사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관하는 거지, 관하는 장소가 따로 있고 기도하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관법으로 공부를 이끌고 계신지요 질문 큰스님께서는 수없는 세월을 통해서 저희 불자들을 이끌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 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차원의 신도들이 있기에 그들의 근기에 따른 수행의 방법도 또한 천차만별로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스님께서는 관법을 통해서 중생들을 제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관법인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답변 예, 행주좌와 관법(行住坐臥觀法)으로…. 우리가 말입니다, 부처님 법 아닌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왜 행주좌와 관법이냐 하면 자기의 관법이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
여러분 빼놓고 부처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부처가 어딨는지 봤겠습니까? (지난 호에 이어서) 한마디 더 하자면,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서산 대사와 사명 대사 때문에 불교라면 아주 자지러져서 아주 불교국으로 됐지 않습니까. 생활을 불교식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불교에서 따 간 것이 뭔 줄 아십니까? 이 장삼을 하오리로 만들었고, 오조 가사를 사무라이 총받이로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약습니까? 처음에는 행전을 당코바지로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각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발우공양을 공깃밥으로 만들었습니다. 글도 한국 사람들한테 배운 겁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도 정신을 잃지 않고 혼을 뺏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남이
부처님을 한 분만 모셔 놓은 것은 그 부처님이 여러분과 몸이 둘이 아닌 것이요, 여러분과 마음이 둘이 아닌 것이요, 여러분과 생명이 둘이 아닌 것을 꼭 아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도 울산 여러분과 같이 한자리를 한 바가 있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의 신심이 돈독해서 여기에 지원이 마련됐습니다. 내 집도 아니고 여러분과 똑같은 한마음 여래의 집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장소죠. 부처님을 한 분만 모셔 놓은 것은 그 부처님이 여러분과 몸이 둘이 아닌 것이요, 여러분과 마음이 둘이 아닌 것이요, 여러분과 생명이 둘이 아닌 것을 여러분이 꼭 아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옛날부터 “내 고깃덩어리를 보지 말라. 내 골수를 알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뿐만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상대성 원리가 어디에서부터 생겼습니까? 나로부터 입니다. 그러니까 내 탓으로 돌려야죠. 칠석과 백종이 다가왔습니다 질문? 처음 절에 1년 2년 다닐 때는 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이루기 위해서가 전부였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생을 마무리해야 되는 시기가 되면서는 매년 시기별로 지내는 행사들이 요식행위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밝아지고 더불어 조상이 함께 벗어나는 길이다라는 것을 새록새록 느끼게 됩니다. 올해도 무더위가 물러나는가 싶더니 벌써 칠석과 백종이 다가왔습니다. 스님,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을 어떻게 받들어야 저의 수행과 둘 아니게 챙겨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백종에는 또 어떻게 마음을 내야 조상님들의 마음에 불이 들어올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