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홀로 세운 돌탑 셋산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 치악산을 오르면, 대부분은 ‘진짜 이름 그대로 치가 떨리고 악이 바친다는 말이 맞구나’ 생각하게 된다. 치악산의 주능선은 북쪽 비로봉(1282m)에서 남쪽의 남대봉(1182m)까지 10㎞ 정도며, 설악산, 월악산과 함께 3대 악산으로 꼽힌다. 특히 치악산은 당일 산행만 허용할 만큼 험하다.어느 해 겨울 치악산 능선을 종주하고 비로봉에서 하산할 때였다. 비로봉 바로 아래 산장 직원은 우리의 늦은 하산길이 걱정되어 그곳에서 묵기를 청하였다. 비로봉 아래에서 하룻밤이라, 조심스럽
(지난 호에 이어서)질문자3(남) 저는 스님 법문에서 주인공에게 맡기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그러면 그 주인공은 제 몸속에 있는 것인지, 또 우주의 허공 법계에 꽉 찬 것인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과 주인공은 어떻게 다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그러면은 염불이나 기도는 꼭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주인공에게 맡길 경우가 된다면 그렇게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여쭤 보는 것입니다.큰스님 뭐, 문은 여기도 많죠. 염불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경을 읽어서 가는 문이 있고, 선을 해서 가는 문이 있고 여러 가지의 문
사람은 태곳적부터 땅과 접촉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면서 늘 지구와 전기적으로도 연결돼 있었다. 모든 전기제품은 접지선이 있다. 접지는 전기회로나 전기기기를 땅에 연결하여 이상전압이 발생했을 때 고장 전류를 대지로 흘려보내서 기계와 땅이 같은 전기적 상태인 ‘0’볼트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모든 생물도 마찬가지로 늘 땅과 접촉해 있으면서 ‘0’볼트의 전기적 상태를 유지해왔다.그런데 수십 년 전부터 사람들이 고무로 된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고무는 가장 대표적인 절연체이다. 게다가 땅에는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환경 전체가 절연체
긴장과 불안에 노출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켜줌으로써 숨 돌릴 여백을 만들어주는 물질 중에 차만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옛사람들도 동일하게 경험하고 공감했던 차의 오묘한 효험(效驗)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필자 또한 응송 스님(1893~1990)과의 인연으로 ‘초의차(草衣茶)’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차의 공덕을 깊이 공감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런 차의 공덕을 노래한 조선 전기 이목(李穆)은 차의 이로움을 오공(五功)과 육덕(六德)으로 분류한 바가 있다. 실로 사람들이 차를 통해 얻었던 공효(功效)는 어느 시대이건 간에 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참된 가치를 구현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진짜와 모조품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모방된 가상의 물건들이 진본을 능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만고에 푸른 연못에 비친 달, 두세 번 건져봐야 거짓인 줄 알게 되리.(萬古碧潭空界月 再三撈벀始應知) -대혜 종고(1089~1163)연못 위에 비친 달그림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진짜 달이 아니라는 대혜 종고 선사의 게송은 모조품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많은 것이 복사되고 복제되는 우리 시대에 곰곰이 새겨볼 내용이다. 우리 시대의
그리고 봄이 온다 ‘잘 주무셨습니까. 비가 내린 산사의 정취를 느끼며 무소유길로 살포시 걸어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천천히 올라오세요.’ 아주 오랜만에 받아보는 정성스러운 글 인사였다. 쉬이 쓰고 지워지는 가벼움도, 끝내 무미건조한 회색 벽돌을 주고받는 기분이 되고 마는 그런 대화도 아니다. 정중함 속에 다정한 마음이 스며들어 새처럼 지저귀는 순간. 비 내린 2월의 어느 아침, 승소를 찾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찰나였다.불일암 국수를 찾아서삼보종찰 순천 송광사. 서늘할 정도로 맑은 기운이 전해지는 이 천년고찰 곁에는 산속 암자를
〈본 투 런〉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세계 최고의 울트라마라토너(정규 마라톤 코스인 42.195㎞를 뛰는 경주자이지만, 여기에 나오는 경주는 보통 100㎞, 150㎞다)와 멕시코의 숨겨진 원시부족 타라우마라족이 벌이는 경주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런데 미국의 울트라마라토너들의 가장 큰 고민은 가장 비싸고 최고로 과학화된 신발을 신음에도 불구하고 발에 부상이 잦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여 타라우마라족은 아주 가볍고 얇은 ‘와랏치’라는 전통적인 신발(소가죽으로 만든 샌들)을 신고 달리지만, 부상을 걱정하지 않는다.이 두 부류를 오
경기도 남양주에 소재한 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는 교종(敎宗)의 종풍(宗風)과 선종(禪宗)의 선맥(禪脈)이 계승되고 있는 본사이다. 월초 화상(和尙)이 교종판사가 되고 나서 줄곧 주석하시면서 가람을 중수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던 까닭에 봉선사에는 한국의 구마라집이라고 칭송 받는 운허 스님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강백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교종본찰의 전통은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간한 역경보살 월운 대강백에게 계승돼 내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봉선사 대중이 선종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등한시한 것도 아니었다. 입산한 이래 여러 해 동안 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를 맞이해서 올해는 한층 더 분발해서 자유스럽게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 만물이 다 내 스승 아님이 없다 함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물에 가면 싱그럽고 물이 좋죠? 그러니 물은 말없이 날더러 물같이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꽃을 볼 때에 꽃도 나같이 살라고 하는 겁니다. 모진 풀뿌리를 봤을 때도 나를 보고서 지혜롭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체 만물은 다 나같이 살라 하니 내 스승 아님이 없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모로 봐서 지극하게 믿고, 믿는 것을 바깥으로
출가, 인생의 리셋인생의 리스타트
“스님! 스님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요. 잠시면 돼요.”“그래요? 그럼 지금 할까요?”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작된 팔순 노보살님과의 대화.“스님!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무슨 일이신데요?”내용은 대강 이렇다. 남동생이 요양병원에 가게 됐는데 이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괴로운 심정이고 잠도 편히 못 주무신다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시누이가 남동생을 요양원에서 나오게 하고 집에서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원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된다는 법이 있겠는가. 잠시 이야기를 들으며 노보살님의
살다 보면 서로 간에 마음의 문이 닫혀서 연락도, 왕래도 하지 않으면서 멀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마음의 문이 닫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상대방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식에 의한 내 판단이고, 나의 입장에서 생각한 오해나 착각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 사람이 잘못됐다는 착각과 내 고집 때문에 내 마음이 닫혀서 표현도 하지 않으니, 생명의 교류는 멈추고 사이는 더 멀어진 것이다.어느 명절에 한쪽에서 자신의 생각을 항복 받고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어떤 형태로든
단석산은 김유신이 화랑으로 있을 때 정상 부근의 바위를 칼로 내려쳐서 갈라놓았다는 유래가 전한다. 뭐 이 정도는 나중에 알았던 유래일 뿐 관심사는 아니었다. 내가 단석산에 오른 이유는 아주 특별한, 지금은 사라진 불교 예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중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용 향로의 모습 때문이다. 마애불상군은 바위 면을 깨거나 파서 불상과 보살상 등을 새겨 놓은 곳을 말한다. 이 중 신선사 마애불상군에는 신도가 부처님을 뵈러 갈 때 향로를 들고 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지금 한국불교 예식에서는 사라
요즘 특별한 이유 없이 피부가 가렵다고 하는 분들이 주위에 종종 보입니다. 대부분은 춥고 건조한 날씨로 피부 습도조절이 안 되어 생기는 소양증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나 많습니다. 가려움증은 너무 많은 질환에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원인을 몇 가지로 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는 질환 위주가 아닌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가려움증을 풍소양(風瘙痒) 또는 양풍(痒風)이라 하였는데 그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피부 가려움증 원인은첫째, 외부의 자극으로 인한 경우인데 이물질과 가벼운 기
불교는 차별에 반대하는 종교다. 그렇기에 불교는 오래전부터 종교, 성 정체성, 이념 등에 의해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해왔고,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실천행을 펼쳐왔다. 특히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은 2021년 10일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30㎞를 오체투지로 나아가기도 했다. 심상치 않은 시대적 상황과 팍팍한 개인의 실존 사이에서 자신의 능력과 성 정체성 가운데 하나는 포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남장 여자를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는 〈바람의 화원
스님, 길을 나서다“그동안 나는 역사적인 붓다의 모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해 왔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알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부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는 한마디입니다. 모든 것을 현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 ‘붓다의 땅’으로 왔습니다.”-〈성지에서 쓴 편지〉 22쪽초기불교를 연구하는 학자 호진 스님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도반이신 지안 스님에게 쓴 편지입니다. 여행이라는 말은 낭만적이고 홀가분합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여행하고, 쉬려고 여행하고, 새로운
척추 협착으로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이 묻는 것 중 하나가 ‘왜 가는 병원마다 진단과 치료가 다른가’와 ‘척추에 퇴행이 생겼다는데 도대체 퇴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다. 흔한 척추질환(염좌, 추간판 파열, 협착증 등)은 대부분 퇴행으로 인해 발생한다. 목도 그렇고, 허리도 그렇다. 그렇다면 퇴행(degeneration)이란 무엇인가? 각자의 차이가 있겠으나, 발생학적으로 인체의 성장, 노화 과정은 세포에서 시작해서 출생 후 20세 경 신체적으로 완성되고 서서히 소모 시키는 과정일 것이다. 즉 새 기계인 상태에서 사용하면 할수록 닳듯
갑진년(甲辰年) 구정도 지나고 본격적으로 청룡(靑龍)의 해에 들어섰다. 용은 12지(十二支)의 동물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은 뱀, 비늘은 잉어,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용을 마귀의 상징으로 언급하지만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용을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 임금이 입는 옷은 곤룡포(茂龍袍), 임금이 앉는 의자는 용상(龍牀)이라 하여 왕권을 상징했다. 사찰에서도 용은 불법을 수호하거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는 반야용선(
큰명절 설날!오늘은 온 가족이 모이는 설레는 날 새해 복도 많이 나누고 올해도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남도를 대표하는 두륜산은 영축산과 흡사하다. 두륜산 정상에 누워 계신 부처님과 영축산을 지키는 적멸보궁이 다르지 않다. 그 앞에만 서면 얼었던 마음이 풀리고 만다. 넓은 품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쉬게 하는 것도 똑같다.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 될 것이다.”서산 대사의 말씀과 같이 두륜산과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법맥을 올곧게 이어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서산 대사의 의발이 전수된 뒤 수많은 수행자를 배출한 명찰인 대흥사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선해교림(禪海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