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집, 집 속의 집한국산사 법당은 삼단으로 구성한다. 한 법당에 의식단을 상단, 중단, 하단의 세 곳에 마련해 둔다. 상단은 정면 중앙의 의식단으로 불상을 모신다. 불상 뒤엔 후불벽을 세워 영산회상도와 같은 후불불화를 건다. 중단은 향우측인 동쪽 의식단이다. 호법신중을 봉안한다. 하단은 향좌측인 서쪽 의식단으로 영가 위패를 올려둔다. 법당 상단에 최고 최선의 불교장엄이 결집한다. 불상과 불화, 불단, 닫집, 단청 등 법당장엄의 핵심요소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된다. 그곳에 당대 제일의 예술역량이 결합하여 종교예술의 꽃을 피운다. 예술은
〈원문〉“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네가 도량에 앉아서 모든 생각이 소멸되어 그 생각이 다하면 곧 생각이 떠난 거기에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아져서 동(動)·정(靜)에 달라짐이 없이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않거나 한결같거늘 마땅히 이곳에 머물러서 삼마제에 들어가면 눈 밝은 사람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정교한 성품이 미묘하고 청정하나 마음이 빛을 발하지는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색음(色陰)의 구우(區宇)라 하느니라. 만약에 눈이 밝아지면 시방이 훤히 열려서 어둠이 없어지나니 색음이 다한 것이라 하느니라. 이 사람은 곧 겁탁(
열한 번째로 세워지는 단(壇)이 회음 기점이다. 항문과 음낭 뒤 모서리를 연결하는 선의 중점에 위치한다. 임맥과 독맥, 충맥이 교차하는 자리이다. 임맥의 종지이고 독맥의 시작점이며 충맥으로는 백회 기점과 연결되어 있다.전립선의 치료점이고 성선신경총을 활성화시켜주는 자리이다. 남성호르몬 분비와 관련이 있고 뇌혈관의 수축과 팽창에 관여한다. 엄지발가락 경로와 검지 경로로 연결되어 있고 백회 아래쪽에서 피질 경로와 연결되어 있다. 백회에서 표출된 자기장이 다시 유입되는 자리이다. 눈 밑 쪽 상악골과 공명을 이루고 가로막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기 전에 수행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 있는 곳에서 집 없는 곳으로 떠나 수행승이 됩니다.” 아마 초기경전인 〈니까야〉를 읽어 보신 분이라면 왕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진리를 참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궁금할 것이다. “번잡한 곳에서 번잡하지 않은 곳으로 떠납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번잡한 일을 하면서 진리를 탐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
봄이 얼마 전인가 싶었는데 여름 가을이 지나고 어느새 또 겨울이다. 시간의 흐름. 세월의 흐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시간을 흐르고 세월은 쌓여간다. 그 시간과 세월 속에서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청년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그렇다. 만물은 항상 변하며 영원히 실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항상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나 명예에 집착하고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자신을
오늘은 마음의 평안과 행복이 절실한 현대 생활인에게 참선 명상을 쉽게 시작하는 방법으로 하루 5분 참선 명상하는 ‘나바오 명상(나를 바로 보는 5분 명상)’을 소개한다. 명상, 하루 5분으로 시작하기이제 참선 명상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종교를 초월하여 참선 명상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반갑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참선 명상을 시작하려는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바쁜 일상생활과 스마트폰과 동영상, TV, 게임 등 인터넷과 미디어의 자극에 익숙한 현대인이 고요히 내면을 바라
파울로 코엘료의 베스트셀러 소설 〈아처(The Archer)〉는 짧지만 강렬한 교훈이 있는 글이다. 〈아처〉는 저자가 궁도를 배우며 익힌 경험을 세분화해서 상술한 글이다. 화살을 쏜다는 것은 단순히 텅 빈 표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활을 통해 세상을 보려는 노력이라고 한다. 표적에 다다르느냐 다다르지 못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활, 화살, 표적 자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활쏘기는 시위를 놓는 순간 극도의 긴장에서 완전한 이완으로 전환된다. 활을 잘 쏘기 위해서는 우아한 자세와 더불어 고도로 정신을 집중할 수 있어야
우리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마을로 내려오신 미륵’을 만날 수 있다. 폐사된 절터에서 업어온 부처님을 미륵으로 모시기도 하고, 특별한 암석이나 땅속ㆍ바다ㆍ강에서 나온 큰 돌을 세워놓고 미륵으로 받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에 모신 미륵을 아기 점지를 바라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의 대상으로 섬긴 전통은 뿌리가 깊다. 미륵이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보편성을 지니게 된 것은, ‘구세주적 성격’과 ‘존재 방식의 친연성’에서 찾을 수 있다. 미륵은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났을 때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제도하게 된다는 미래불(未來佛
불교에서 나를 윤회하게 만드는 ‘이것’을 ‘업(業, Karma)’이라고 한다. 업이란 무엇일까? 업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대장엄경론〉 속 어느 바라문의 질문을 살펴보자. “친교 바라문이 (붓다의) 무아(無我)의 설을 듣고 의심이 나서 물었다. ‘만약 나라는 것이 없다고 하면, 윤회에 있어서 누가 후세에 태어난단 말입니까?’ 제석천은 ‘과거세의 번뇌로 말미암아 여러 업을 지은 까닭에, 그 ‘업’에서 ‘현재의 몸’이 생겼거니와, 현재에 있어서도 다시 여러 업을 짓는다면, 내세에서 다시 거기에 해당하는 몸을 얻게 될 것이다. (중략)
봄이면 라일락 향기가 자우룩했을 큰 라일락 나뭇가지가 방 앞까지 늘어진 곳에서 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방문을 열었다.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간 스님이 벽장 속에서 책을 꺼내는 것 같았다.-이 책입니다. 제가 간직해 둔 겁니다.네 사람의 시선이 책으로 쏟아졌다. 경전이 아니었다. 사무엘 다커스의 불의 제전이었다. 소설이었다. 드륵하고 책갈피를 넘겼다. 책 중간쯤 종이쪽지 하나가 끼워진 것이 보였다. 종이쪽지를 집어 보다가 멈칫했다. A4용지 몇 장을 네 겹으로 접은 것이었다.-뭡니까?오오스마 기자라고 생각하며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모
최초의 화혼식(花婚式)근대 최초의 불교 혼례는 1918년 2월 조계사의 전신인 각황사(覺皇寺)에서 치러졌다. 처음 행하는 불교식 혼례라 장안의 화제가 되어, 몰려든 구경꾼이 일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문에는 사모관대를 갖춘 신랑, 족두리에 장삼을 입은 신부가 경건한 표정으로 부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의 사진이 실렸다. 이 혼례는 역사학자 이능화(李能和)가 1917년에 만든 ‘의정불식화혼법(擬定佛式花婚法)’에 따라 처음 행한 것이었다. 당시 혼례를 둘러싼 상황은 개항 이후 기독교 문물의 본격적인 유입과 함께, 이른바 ‘예배당결혼식
〈원문〉 부처님이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고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유루세계의 12류 중생의 본각묘명(本覺妙明)과 각원심체(覺圓心體)는 시방 부처님으로 더불어 둘도 없고 다름도 없건만 너희들 망상으로 진리에 미혹한 것이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어리석은 애욕(痴愛)이 발생하고 그리고는 두루 미혹해졌기 때문에 허공이 생겼으며, 변화되면서 미혹이 쉬지 아니하여 세계가 생겨남이 있게 되었으니 이 시방의 미진국토는 무루(無漏)가 아니라, 모두 미혹과 완고한 망상으로 안립된 것이니라. 마땅히 알라. 허공이 너의 마음 안에서 생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