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 모든 걸 놓고 편안하게, 와선이나 입선이나 행선이나 좌선이나 이런 거를 모두 한데 합쳐서 그냥 생활 자체를 참선으로 돌려야 됩니다. 그렇게 내마음의 용광로에다 다 놓게 되면 자동적으로 재생이 돼서 나갈 텐데 뭐가 걱정입니까. 길 아닌 길을 걸어가려면 문) 이 마음공부를 알고부터 모든 것을 주인공에 놓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길 아닌 길을 걸어 보려면 어떻게 마음을 내야 되는지요. 답)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벌써 원소를, 자기가 생명력을 가지고 나옵니다. 생명력을 가지고 거기 들어가서 모습을 받는단 얘기죠. 그런데 자기 원소가 그렇게 고생을 하고 수억겁을 거치면서 그렇게 진화하고 형성
관법이 별나게 다른 게 아닙니다. 수박을 갖다 놓고 ‘이게 뭣고?’ 하고 매사 걸 ‘뭣고’로 돌아가기보다는 두려움 없이 그냥 짜개서 드세요. 그러면 수박 맛이 어떠한가 알게 되고 또 수박 속에 씨가 있다는 것도 알게 돼서 세세생생 먹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3(남): 연일 계속되는 장마에도 하필이면 오늘 따라 이렇게 날씨가 쾌청하고, 또 제가 큰스님 앞에 이렇게 무릎을 꿇고 있으니까 벌써 준비했던 질문이 거의 반쯤은 풀린 듯도 합니다. 질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삼법인(三法印)중에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제법에는 이름하여 붙일 것이 없다.’ 하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법에 이름이 없다면 오늘 수행은 누가 하는
더운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매우 감사히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차원의 그릇에 따라서 모두 끼리끼리 모이게끔 돼 있는 것입니다. 멀어도 멀다 안 하시고 이렇게 왕림해서 한마음이 돼 주시는 것에 재차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마음을 생각할 때에 ‘마음이 참 요상한 놈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주 요상한 놈이라고 말입니다. 마음이 요상한 게 아니라 마음내는 게 요상하겠죠. 우리가 항상 몸을 중심으로 해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뜻대로 육근(六根)이라고 하고 육경(六境)이라고 하고 육식(六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의식이 색에 들고, 색은 의식에 포함돼서 항상 밝게, 어떠한 생각이든지 하게 하고 어떠한 거든지 보게 하
마음공부를 꼭 해야 하는 것인지요 문) 부처님 가르침은 너무나 방대해서 쉽게 공부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마음공부를 꼭 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답) 부처님께서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해서 가르치신 뜻은 너무나 크고 묘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주적인 문제보다도, 근본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자체에 세계적으로 퍼지고 퍼져서, 또 줄어들고 줄어들면서 또 퍼지고 하는 이 이치, 생했다 멸했다 생했다 멸했다 하는 반복되는 이 진리지만 이 속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그런, 여러분이 겪어 보지 않고 실감해 보지 않은 뜻이 있으며, 너무나 많은 법과 더불어 무서운 도리라고 생각됩니다. 만약에 알면은 너무나 좋고 자비하고 묘하고 광대무변하고 홀로이 우뚝 선 이 뜻이지마는 모른다 하면은 너무나
모든 거 하나하나 전부 나 아님 없고 내 스승 아님이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가르치지 않는 것이 없거든요. 그런데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좋게 생각을 해서 배워야 합니다. 나쁜 건 하지 말고 좋은 건 하고 내가 조금 밑지더라도 남을 이익하게 하면서 폭넓게 마음을 쓴다면 그대로 선지식이요, 부처가 될 거 아니겠습니까. (지난 호에 이어서) 우리 지금 생각을 가만히 해 보세요.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기막힌지요. 여러분이 일주일 내내 일하다가 토요일이 되고 일요일이 되면, ‘아, 일요일이 됐으니까 좀 늦게까지 자도 괜찮다.'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냥 푹 자 버려요. 요렇게 마음이 용도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내 마음먹는 데 따라서 모두 활용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모든 걸 천치 바보처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왔다면 앞뒤가 막힘이 없이 일체가 한마음 한뜻으로서 이세상의 물질이 오로지 다 공(空)했다고 하는 뜻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스님 : 어떻게 형제법회 회원이 아닌 분들이 이렇게 와서 주욱 앉았습니까? 사회자 : 큰스님께 미처 말씀 못 올렸는데요, 서울 시내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불자 선생님들입니다. 오늘 특별히 큰스님 말씀 듣고자 이렇게 참여했습니다. 큰스님 : 우리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뜻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마음이 즉, 불(佛)이다.’ 이런 말들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부처라고 하면서 그대로 부처 노릇을 하는 걸까요? ‘마음이 즉 불이다. 부처다.’ 이러는 거기에는 삼학(三學)의 진의도 들어 있으며
기복신앙이라고 우려하지만… 문) 스님들께서는 기복신앙을 우려하지만 그래도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진실하면 되는 것 아닌지요. 답) 많은 사람들이 기복으로만 많은 세월을 흘려 왔습니다. 그것이 아주 배서 인제는 아주 바깥에서 빌고 또 바깥에서 구하고 그러는 일들이 아주 습으로 남아 있어서 그것을 녹이기가 매우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가도 팔자 운명이나 그 인과응보에 끄달리는 이치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품 바깥에서 법을 구하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마음 바깥에서 부처를 찾아도 안 되거니와 성품 바깥에서 법을 구해도 안 된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이 몸으로써 고행을 해서 법을 구하겠다고, 또 옛 성현들
법당에 들어가면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부처님 모습과 우리들 모습이 둘이 아니다. 생명도 둘이 아니다. 마음도 둘이 아니다. 그러니까 더 높이 보지도 말고 내려다보지도 말고 평등하게 너와 같이만 생각해라. 그러면 자기가 자기 죽일 수 없고 자기가 자기 나쁘게 할 수 없으니 모든 게 평화롭고 즐겁고 자유롭다. 질문자1(외국인 여): 만약 어떤 다른 사람이요, 자기에 대해서 나쁜 생각과 나쁜 에너지를 계속 내뿜어서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데 그 생각이 계속되니까 몸도 좀 아프고 그런 영향을 계속 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큰스님: 그거는 모두 사람의 사량이에요. 사량에서 생기는 마음이에요. 체가 없는 내 마음은 이 허공과 같아서, 즉 말하자면 그쪽에서 마음내는 것도 영이고 내 마음
? 누가 나 대신 행복하게 살아주는 사람 없어요. 누가 대신 먹어주고 살아주는 사람도 없고, 잠을 자주는 것도 없고 또는 대신 아파주는 것도 없고, 대신 죽어주는 것도 없어요. 단, 내 힘으로써 내가 생각하고 밀고 나가는 게 법이에요, 그냥. 그게 공법이에요 기자1(외국인 남): 만남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기자1(외국인 남): 제 이름은 폴머스고요, 이 사람 이름은 헬렌 돌코프라고 합니다. 큰스님께서 여기 오늘 미국에 오신 목적하고요, 한국의 선을, 선 사상을 미국에 가져오는 데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거기에 관심이 있어서 왔습니다. 큰스님: 지금 물질계나 정신계를 따지고 볼 때 이 꽃나무만 생각들 하지 뿌리는 생각들을
? 내가 가는 이 길이 부처의 길입니다. 굶었든 먹었든 누가 와서 그냥 따귀를 대빵 주먹으로 갈기든 ‘이게 부처의 길이다.’이럭하고선 가보세요. 그럼 진짜 부처가 되죠. 도둑질을 해도 꾸준히 하다 보면 아주 그냥 도가 트듯이 이 공부도 줄창 그러다 보면 바로 자기가 진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오공의 뜻에 대하여 문) 스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오공 즉, 공심 공생 공용 공체 공식의 뜻에 대해 궁금합니다. 답) 내가 항상 둘로 보지 마시라, 둘로 생각하지 마시라, 둘로 행동하지 마시라고 합니다. 그렇게 아주 뿌리가 내려서 완벽하게 자기가 잡혔다면 꿈에도, 하다못해 벌레를 봐도 둘로 보지 않는다. 어떠한 무서운 귀신을 본다, 어떠한 뱀을 본다, 어떠한 큰
여러분은 인간의 도리를 잘 지키면서 나가셔야 합니다. 부처님 법은 언제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지도 않고 마음을 산란하게 두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주인공에 맡기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서 남을 증오하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으며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니까요. ?(지난 호에 이어서) 또 한 가지는, 아까 얘기했듯이 내 주인공을 믿고 맡기는 도리를 물러섬이 없이 공부하신다면 그것이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 혹성 자체가, 나로부터 전체가 지수화풍으로 뭉쳐져 있고 전체가 지수화풍 아닌 게 없는 까닭에 우리는 고마운 줄도 알아야 돼요. 물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네? 여러분은 공기 없이는 하루도 못 살죠? 근데 너무 흔해서인지 고마운 줄을 몰라요. 부모한테 받아
여러분의 업식에서 순간순간 나오는 데에 속지 마십시오. 그게 꼬드겨서 화도 나게 하고 즐겁게 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어떠한 즐거움이 있어도 ‘아, 감사하구나.’ 하고 근본에 맡겨 놓고 또 악한 일이 생기더라도 ‘아, 거기서밖에 해결 못하지.’ 하고 맡겨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부하는 데 지름길이요 모든 업식을 바꾸어서 보살로 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용광로에 헌 쇠를 집어넣으면 새 쇠로 다시 재생되어 나오듯이 근본자리에다 그업식을 다시 되놓는다면 바로 자동적으로 보살로 화해서 나온다 이겁니다 ?광주에 오랜만에 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을 만나 보니까 여기는 여기대로 아주 반갑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것은 생활에 직결된 불법 공부이기 때문에 무슨
? 마음 자체는 체가 없는 거라 이 우주 전체를 한 찰나에 갈 수도 있고 올 수도 있습니다. 한 가정이다 할지라도 전등은 많지만 한 방에 전력은 다 똑같듯이 전력을 끌어쓰는 것은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건 정신계와 물질계가 서로 상통하면서 작용을 해야만이 삶이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으며 죽어도 죽은 사이가 없고 살아도 산 사이가 없는 대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팔정도를 바르게 실천하고 싶어요 문) 보통 불교에서는 그 실천 수행 방법으로 육바라밀과 팔정도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시점에서 저도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정도를 잘 실천함으로써 참된 불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
여러분! 진짜 열심히 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몇 발자국이나 떼어놓고 이 모습이 없어지겠습니까. 이 모습이 없어지기 전에 이 도리는 꼭 알아야 묵은 빚도 갚을 수 있고 새 햇빛도 줄 수 있고 그 뿌리에 물도 줄 수 있고 꽃도 피고 열매가 열려서 영원토록 굶지 않고 먹게 해줄 수 있는 바로 무종(無終)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러니까 부모가 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이구, 이거는 지겨워서 어쩌나.’ 이런 생각 마시고 ‘아, 이것도 바로 내 탓이로다. 내가 이런 인연을 안 지었더라면 왜 내 앞에 왔을까? 그러니 얼마 안 있다가 또 모습을 타고 나오실 텐데 얼마 안 있다가 낸들 안 그러랴.’ 하고 내 모습으로 생각하고 바로 그렇게 공경을 잘하십시오.
? 부처님도 똑갇은 인간이었는데 여러분은 왜 자유스럽게 살지 못하고 자기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합니까. 과감하게 뛰어넘어야 합니다. 입에 밥 들어가지 못할까봐 걱정, 옷 헐벗을까봐 걱정, 거리로 나앉아서 잘까봐 걱정, 죽을까봐 걱정. 이런 걱정을 하다보니 옹졸한 마음이 돼서 항상 노예로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감하셔야 됩니다. 먼데 각 지원에서 어저께 오셔서 오늘까지 고생이 많으시리라고 믿습니다. 하여튼 한마음으로 마음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다섯 가지 마음의 향을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제일 첫 번째 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 더 말씀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해탈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렇게 하는 수행 자체가 바
자기 성품 보고 싶어요 문) 6조 스님께서는 “딴 부처님만 생각해서는 생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요, 자기의 본심을 지키면 곧 저 언덕에 이른다.”고 했고 또한 “부처는 제 성품 속에서 지을 것이며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도 하셨다는데 어떻게 하면 자기 성품을 볼 수 있겠습니까. 답) 그것을 볼 때에 우리가 무슨 가톨릭교나 기독교나 저 불법의 부처님들이나 바깥에서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찾는 사람들은 생사를 면치 못하죠. 어떻게 면합니까? 아무리 정성스럽게 내가 기도를 하고 아무리 저거 해도, 잘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만날 빌어먹는 인과밖에는 못 찾을 겁니다. 자유스럽게 내가 모든 것을 남을 줄 때는 주고, 남을 도울 때는 돕고, 내가 갈 때는 가고, 내가 먹을 때는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죽든지 살든지 진짜로 믿어야 합니다. 더 잘살려고 아무리 해봐도…, 차라리 아예‘이젠 너 알아서 해!’ 하고, ‘나는 부지런히 뛰어줄게, 너 알아서 해!’ 하고 거기다가 맡겨 놓는 게 더 상책이 아닐까요? 더 살기가 편안하고요.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잘 알겠습니다. 네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불교에 귀의한 지가 한 25년 됩니다. 그런데 뭐가 잘 되지를 않아요, 아예. 잘 안됩니다. 그래서 최근에 무슨 작정을 하나 했습니다. 계획을 하나 세웠다 이 말씀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돌장승이 애기 낳는 법을 알아야 불법을 안다.’ 이런 구절이 있어서 거기에 무척 공감이 가서 계획을 세워서 지금 시행을 좀 하고 있습니다. 한 30년 예정을 해 가지고요. 그런데
? 구정물을 맑은 물로 그냥 대치해서 써라. 그 과정을 새삼스럽게 다 거치고 거쳐서 이렇게 한다면 언제 우리가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대로 집어 먹고 그대로 맛을 알고 그대로 행하라 이소립니다. 이렇게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에 같이 한자리를 하게 돼서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마음의 봄날이 온다면, 각계 각층 무엇을 막론해 놓고 다 녹일 수가 있고 얼릴 수도 있어서 자유스러울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럴 수 있도록 서로 도반으로서 잘해 나가 봅시다. 오늘은 더군다나 또 서로 토론하고 서로서로의 모자라는 거를 메꾸면서 해 나가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질문과 답으로써 서로 나누겠습니다. 질문자1(남): 스님께 두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주인공
? 집착을 벗어나는 길은 문) 모든 고의 원인이 집착이라 한다면 그 집착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지요. 답) 우리는 모두 일체가 공했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살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산다고 하고 내가 봤다고 하고 내가 들었다고 하고 내가 했다고 하고 내가 해서 망했다고 하고 모두, 만남도 그렇고 가고 옴도 그렇고 모두 내가 했다는 생각에서 잠재해 있거든요. 그것이 뭐냐 하면은 착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겹겹이 이렇게 착이 누적된다 이거죠. 쌓인다. 그래서 그릇이 넘치도록 그릇이 비질 않는다. 유전성이라든가 업보성 인과성 영계성, 이 모든 것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착으로 인해서 생기는 겁니다. 만약에 착이 없다면 그냥 다 벗어나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겹겹이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오신통에서 벗어나서, 그 통에서 벗어나서 그거를 굴릴 줄 아는 누진이 돼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저 조금 보이기만 했다, 좀 들리기만 했다, 좀 이랬다고 하면 이건 장땡이다, 내가 오신통을 한다, 뭘 한다, 이 짓들을 하거든요. 이거는 잘못하면 마구니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에게 해를 입힙니다. 그러니까 사기를 치는 사람도 그렇고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그렇고 다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라고 하는데, 정신이 있으니까 바로 정심이 있죠. 또 자성신이라고 하고 자성불이라고 합니다. 불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입니다. 이 세상만사 생명 없는 게 없는 것을 외국에서는 바로 블랙홀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불바퀴라고 합니다.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