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눈까지?붉게?물드네 봄의?첫?전령?납월홍매 순천?금둔사 언제부턴가?햇살이?가까워지고?훈풍이?코내음을?자극하더니,?마침내?여기저기서?꽃소식이?들려온다.?봄이다.?봄이?또?온다.?따뜻한?이름으로?지은?이름,?봄.?우리가?추운?눈을?감는?사이?따뜻한?바람으로?길을?내고,?그?달라진?길에?꽃을?피우며?한?발?한?발?다가온?봄.?그래서?우리는?그?계절이라는?이름의?시간을?“온다”고?했고,?그?‘온다’는?그렇게?길을?가진?‘온다’였다. 봄?길은?꽃길이다.?겨울을?지나온?동백을?비롯해?매화,?산수유,?목련,?개나리,?진달래와?이름?없이?피는?꽃들까지.?꽃길이?시작됐다.?봄이다.?십?획도?안?되는?‘봄’이라는?글자?한?자에?모두는?설레고,?바람?한?점에도?흔들리는?꽃?한?송이가?세상
3월?하순부터?4월?중순까지?전국은?울긋불긋?‘꽃대궐’이?된다.?산하대지?꽃대궐?안에는?봄꽃산사가?자리하고?있다.?진분홍?진달래부터?봄꽃의?중심?벚꽃,?샛노란?유채?등은?사찰?주변을?장엄하며?화엄세계로?만든다. 올해에도?봄꽃은?어김없이?피었다.?용혜원?시인이?봄꽃이?피는?날을?이렇게?노래한다.?‘봄?꽃피는?날/난?알았습니다./?내?마음에도/?꽃이?활짝?피어나는?걸.’ 봄꽃?부처님이?현현한?전국?산사에서?내?마음에?꽃이?피는?날을?만끽해보자. 진달래-??진달래는?봄을?알리는?꽃이다.?두견화,?참꽃이라고도?한다.?한반도?전체에?피지만?여수?영취산,?창원?천주산,?거제?대금산이?진달래?3대?군락지로?손꼽힌다. 영취산?진달래?사자후?여수?흥국사 여수?영취산이라는?이름부터가?불교적이다.?인
끝없는 물음으로 자아 일깨워야 무문관에 들어 온지 3개월이 다 되었다. 석 달 동안 잠겨있던 문이 열리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하늘을 볼 것이다. 해제(解制)가 되면 전국 선방에 문이 열리고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은 만행(萬行)을 나설 것이다. 걸망을 짊어지고 머무는 곳마다 겨울 한철 갈고 닦은 깨달음을 풀어놓고 한편으로는 아직 잠이 덜 깬 산속의 봄기운도 부려 놓을 것이다. 3개월 정진 끝에 문 열리는 날 내설악은 ‘無言 설법’ 설하고 걸림없는 자유 있음 깨닫게 해 다시 한 번 무문관에 들어가서 생사 넘어 萬年토록 앉고 싶다 독방에서 해방된다는 들뜬 기분에 하루 종일 화두도 들지 않았다. 그동안 쉬는 시간을 틈타 보았던 조그마한 집 한 채를 바라보았다. 한 평도 안 된 집 한 채가
화두를 듣고 참구를 하다보면 순일무잡하게 정진이 계속 될 때도 있고 하루 종일 번뇌 망상에 시달릴 때가 있다. 이때마다 나는 〈임제록(臨濟錄)〉을 꺼내 읽는다. 첫째, 그의 일언일구에 정신이 번쩍 들고 메말라 있는 머리에서 맑은 영혼의 샘물이 솟는 신선함을 느낀다. 그는 화두를 통해 본질을 찾고 자아를 탐색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인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인식의 변화가 나를 새롭게 일깨우게 한다. 정진 순일 못하면 〈임제록〉 읽어 임제 일언일구에 정신 번쩍 들어 파격의 禪語, 얽매임·안주에 경책 ‘살불살조’, 극복해 나아가란 당부 살아있는 믿음은 틀에 갇히지 않아 그의 법어는 평범하거나 진부하지도 않고 아울러 상식적인데 머물러 있지도 않다. 구절마다 영혼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부처·조사의 틀에 갇히지 말라 탐구의 목적은 본질을 찾는데 있고 그 본질의 탐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려면 자기 자신이 사유의 틀 속에 갇혀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특히 선방(禪房)에 앉아 정진을 하는 사람들은 조사(祖師)의 어록에서 자유스러워져야 하고 부처와 조사에 얽매여 있는지 반문해 보아야한다. 선(禪)은 모방이 아니고 창조이고 마음의 바탕을 통해 본래적 자기를 직관적 증득하는 행위이다. 禪은 모방이 아닌 창조의 수행 부처·조사의 틀에 갇혀선 안돼 자주적 부처로서 ‘原音’ 찾아야 마음을 조복받은 적이 있었는가 만약 부처와 조사를 닮으려고 한다면 덕산(德山)의 방을 피하기 어렵고, 임제의 할(喝)에 영혼이 찢기고 말 것이다. 누구나 한 가지의 일에 몰두하고 반복하면 습관이 이루어지고
올라갈수록 울창한 숲은 다가서고 계곡은 깊어진다. 누가 이곳에 길을 열고 계곡을 만들었을까 분명히 천기(天氣)가 움직여 바람과 구름이 일고 천둥이 쳐서 길을 내고 암벽을 부수는 벼락이 쳤을 것이다. 한참동안 고개 길을 돌아 올라 갔지만 그때마다 다가서는 것은 산(山)의 신령스러움과 계곡에서 스며오는 차가운 골기(骨氣)였다.백담사 숲을 거쳐 도착한 무문관문 여니 ‘無名의 그’ 먼저 와있네선사들 ‘그’를 마음·眞人이라 불러볼 수도 들을 수 없는 ‘그’를 찾아확장된 사색 공간서 ‘이뭣꼬’ 참구잠깐 쉬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봉정에서
붓다의 연기법에서 불교의 자비 사상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이 모든 존재는 시방삼세 존재자들의 상호적인 관계에서 나온 선물이다. 따라서 연기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의 존재와 삶이 우주적 연쇄의 존재가 주는 선물임을 깨닫고 다른 존재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비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느끼는 사랑을 다른 형태의 모든 존재에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래즐로의 ‘자연시스템에 대한 존경(reverence for natural system)’과 마찬가지로 자비는 다른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에 열려 있다. ?이런 우주적인 자비 구현의 모습은 초기 불교의 에서부터 대승불교의 보살 정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촘촘히 표현되고 있다. 자비 구현은 이론과 관념으로는 어렵지 않
강원도 화암사 산내암자 영은암에 주석중인 정휴 스님은 현재 조계종의 종헌·종법 기틀을 만든 장본인이자 승려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4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끝으로 일체 공직을 맡지 않은 스님은 2010년 3월 법정 스님의 입적으로 마음의 큰 변화를 겪고, 그해 11월 동안거에 백담사 무문관으로 들어간다. 2017년 정유년 동안거 해제를 맞아 정휴 스님은 본지에 무문관 입방 계기와 그 안에서의 사유와 성찰, 깨달음을 담은 글 일부를 보내왔다. 스님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백담사 문무관 是甚? 日記(가칭)〉를 발간할 예정이다. 정휴 스님이 무문관에서 이룬 성찰과 깨달음의 궤적들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연기법은 불교 사상의 출발점이다. 불교 공부를 시작할 때 처음 접하는 것이 바로 연기적 인과론이다. 연기법에서 무아와 공의 사상이 나온다. 붓다가 밝혀낸 연기법은 경이롭고 위대한 사상이다. 인류 정신사에 이런 엄청난 사례가 어디 있었던가? 초월적 대상에 대한 신앙 없이 연기법이 토대가 되는 종교가 지구별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가. 연기법을 체감하는 것이 공명 생활하고 실천하는 삶이 요동 그 요동이 바로 자비행이다. 개인과 사회변화의 변증법을 붓다의 연기법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연기법에 대한 나의 찬탄은 결코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연기법을 덤덤하게 바라보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학문을 배우고 인과론적인 자연과학 방법론의 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연
[현대불교=노덕현 기자] 대명절 ‘설날’ 유난히 짧은 연휴에 교통 체증까지, 고향에 내려갔다 온 사람도, 내려가지 않은 사람도 명절 후유증에 시달린다. 차라리 설연휴를 사찰에서 보내는건 어떨까. 당신의 지쳐있는 마음을 달래줄 작은 휴식시간을 추천한다. 바로 ‘템플스테이’다. ‘템플스테이’에서는 자연 속에서 내 안의 자유로움을 찾아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을 덜어낼 수 있다. 올해 설연휴에는 눈이 소복히 쌓인 산사에서 따듯한 차를 마시며 그동안 쌓인 피로도 함께 풀어보자.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수암)은 ‘설날’을 맞아 전국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에서 를 개최한다. 전국 40여 곳 사찰에서 진행될 이번 설맞이 템플스테이는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으로 가득하다.
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다양한 선물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고가의 선물 대신 의미가 있는 선물을 주고 받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사회 흐름에 맞춰 불교계에는 승려복지와 소외계층 나눔 등에 수익금을 사용하는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올해는 이런 나눔과 자비실천으로 선물의 의미를 더해보는 건 어떨까? 이번 설을 맞아 다양한 불교관련 상품과 판매처를 소개한다. 노덕현 기자 noduc@hyunbul.com ? 승려복지에 수익 활용 jogyebook.com 조계종 출판사 유통사업부가 운영하는 ‘승소’의 수익금은 조계종에서 진행하는 승려복지에 사용된다. 이번 설을 맞아서는 ‘福 선물세트’ 19종을 출
붓다와 불교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언뜻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이 제일 어렵고 의미심장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붓다 다르마는 불교에서 올바르게 구현되고 있는가? 불교 없는 붓다는 과연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붓다의 가르침이 불교의 틀 안에서만 존재 하는가? 이렇게 붓다와 불교의 관계는 우리에게 많은 고뇌를 던지고 있다. 붓다 다르마 담은 제도적 불교는 자신이 처한 연기적 조건 속에서 스스로 갱신하면서 다양하게 나타나? 순수한 ‘붓다 다르마’는 있어도 변치 않는 ‘순수한 불교’는 없다 첫 선각자가 떠나면 그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따르기 위해 스승의 말씀을 정리하고 체계화시킨다. 여기에 여러 뛰어난 제자들이 나름대로 선각자의 사상
② 경전의 바다 어떻게 건널 것인가?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출발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불교 경전에 있다. 그런데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해 보고자 고개를 돌리면, 먼저 엄청난 문헌의 양에 압도되어 기가 질린다. 다양한 경전의 내용에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르침까지 있어 우리를 혼돈케 하고 당황시킨다. 〈아함경〉의 내용을 인용해 보면 붓다도 그 혼란을 이미 예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붓다와 일체가 되도록 노력하자 붓다의 고뇌 함께하고 가르침을 체감하는 게 붓다와 하나 되는 행위이다. 경전의 바다를 넘는 것 자체가 수행의 길이 아닌가 싶다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인과 법칙(연기론)의 심심 미묘함이라니. 그것은 참으로 심오합니다. 그렇지만 제
①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이 글은 붓다와 불교에 대한 자전적 글쓰기다. 그런데 웬 천로역정(天路歷程)인가? 〈천로역정〉은 영국의 존 버니언(John Bunyan)의 소설로, 하나님의 구원을 찾아 가는 내용인데 기독교인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는 책이라고 한다. 붓다를 찾아가면서 왜 천로역정을 차용하는가? 글쎄다. 직관적으로 차용해 보았는데 이 글을 마무리할 때쯤 되면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나오리라 생각해 볼 뿐이다. 필자는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래 지금까지 그 인연을 매우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긍지와 감사의 마음을 항상 지녀왔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친께서 주신 ‘관세음보살’ 사진을 항상 지니고 다녔으며, 사진이 낡으면 재인화해서 지금까지 지니고 있다. 서부 전선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
지난해는 유난히 다사다난 했다. 북한의 핵실험, 한미 사드배치 갈등, 경주 대지진 등 큰 사건들로 넘쳐 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하나만으로 대한민국은 공항 상태가 됐다. 이는 결국 블랙홀이 돼 대통령 탄핵에까지 이르렀다. 경제도 더욱 힘들어졌다. 온통 악재들이 양수겹장으로 터지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제 다시 밝아온 2017년 정유년 새 아침에는 그 수습의 가닥이 잡힐까? 그리고 선지식들은 그 해법을 알고 계실까? 1956년 15세에 출가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선수행으로 일관한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은 스스로 참선 수행의 오묘한 이치를 체득, 1986년 제석사 옛 절터에 선원을 창건해 후학 양성에 매진 중이다. 특히 오등선원은 전국 제방 선
연말이면 늘 ‘한 해가 다사다난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근래 여느 해보다 산란했다. 국정농단으로 빚어진 촛불민심은 한반도를 밝히고, 뿌리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불교계에서는 대표 신행단체 수장들이 새롭게 바뀌었다. 새 얼굴로 새해를 맞이하는 수장들은 최우선 조직운영 가치로 하나 같이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불통’이 가져온 국가적 위기를 여실히 느낀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롭게 문을 여는 한 해에 첫발을 내디딘 신임 신행단체장들의 포부를 들어봤다. 윤호섭 기자 “새해에는 ‘천만불자모연’ 운동을 전개해 청소년·
동국대 HK연구단 주최 3~6월 韓中日 3국 학자 ‘원효’로 만나 한국불교학회, 원효 논문 공모 성철 스님 백일법문 50주년 맞아? ‘중도 사상’ 주제 포럼 출범 계획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는 불교계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 해이다. 화쟁국사로 숭앙받는 원효 스님 탄신 1400주년이자 현재 한국불교의 기틀을 만든 봉암사 결사 7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종교지도자인 성철 스님이 백일법문을 설한지 꼭 반세기를 맞는다. 이에 맞춰 불교계도 기념사업들이 준비 중이다. 원효 스님 탄신 1400년 가장 눈길이 가는 기념행사는 원효 스님 탄신 1400주년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산하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단(단장 김종욱)은 한·중·일 3개국을 순환하며 원효 스님의 저술
붓다와 원효 분황 원효(617~686)는 우리에게 생각하는 방법과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고대 이래의 천신(天), 산신(地), 무속(人) 신앙을 아우른 풍류도(三才)와 접목한 불교를 통하여 종교적 ‘삶의 품’과 철학적 ‘앎의 격’을 높여 주었다. 원효는 지난밤(땅막)과 오늘밤(무덤) 잠자리 사이에서 ‘일심(一心)’을 발견하고 대자유를 얻었다. 그는 부처와 중생의 관계를 ‘일심지원(一心之源)’과 ‘일심(一心)’의 관계로 해명하였다. 원효는 유식의 아뢰야식과 여래장의 진망화합식의 구조를 통해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상호인정-배려-소통-행복 구조 ‘화쟁회통’ 논법… 현대 사회 대안 동아시아 사상가에 미친 영향 지대 100여 명명과 설화서 존재감 드러나 이러한 그의 시
부처님 당시부터 생활불교 우리나라의 역사만큼이나 장구한 것이 바로 불교 역사지만 최근 그 위상은 예전과 다르다. 시대가 발전하면 할수록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게 되고 불교 또한 예외는 아니다. 문명이 끝없이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불교의 위치는 어디인가?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불교는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보다 교세면에서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에 불교계 안팎에서는 불교가 사회구성원 개개인 뿐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부처님, “중생 위해 직접 교화나서 불교 일상생활 분야 활동 평가 낮아 “현대인 요구에 대응과제 남아” 불교는 태생부터 자리이타와 함께 하화중생을 위한 종교였다. 에 나오는 부처님 당시의 일화다. 부처님께서
보조·성철 스님 등이 결사한 이유는 “이대로 안 되겠다”는 문제의식 때문 결사 근본은 “부처님 法은 무엇인가” 佛法대로 수행·운력했던 봉암사 결사 ‘부처님 법대로 살자’ 보인 실천 도량 2017년은 원효 스님 탄신 1400주년이 되는 해이면서, 동시에 봉암사 결사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원효 스님 탄신 1400주년을 맞이하는 움직임은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우리 불교 학술 단체들이 제일 앞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봉암사 결사 70주년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크게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2016년 9월, 그동안(‘그동안’은 사반세기, 즉 25년이었다) 붙들고 있었던 결사 주제의 논문 7편을 묶어서 책을 펴냈다. 그 결과물이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