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팔만사천의 법입니다. 번뇌가 아니라 법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업보를 지어서 이렇게 번뇌가 일어날까? 죄를 얼마나 지었길래 이런 악한 것이 닥칠까? 이런다면 점점 더합니다. 그냥 불난 데 기름 갖다가 퍼붓는 거나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담요로다가 탁 덮으시면 불은 잔잔하게 꺼지듯이 그렇게 하십시오. (지난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큰스님께서 이렇게 귀한 자리를,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두 가지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서산대사께서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이 마
내 마음이 따뜻하지 못하면 남의 마음도 따뜻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이 따뜻하지 못한데 어찌 남의 마음이 따뜻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내 마음이 악하게 되면 그건 무간지옥이라 그랬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 반면에 정심으로써 지혜롭게 따뜻한 마음으로 둘이 아닌도리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고 상대를 대한다면 마음은 체가 없는 거라 스스로 상대도 밝아져서 나와 더불어 밝게 불을 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아래에 앉았는데 제가 법상 위에 올라앉은 것은, 내가 높고 여러분이 낮아서 이렇게 앉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나의 모습을 쳐다보는 반면에 나도 여러분을 다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지 내가 높아서 이 법상에 올라앉은 게 아닙니다.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겨서 해결을 하도록 하십시오. 죽는 것도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으니까요. 절실히 믿고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서 하신다면 어떠한 거든지 풀리지 않을 게 없고 자유스럽지 않을 게 없다고 봅니다. 내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만 어떤 문제들에 부딪치면 어느 새 상대 탓을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마음공부의 길이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요? 답) 왜 자기를 자기가 못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용광로에 넣듯이 작업을 그렇게 하라고, 안되는 것도 찰나, 되는 것도 찰나라면 여러분, 고정된 게 하나도 없죠?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가고 오는 것. 고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모두가 그러니 공했단 얘기죠.
수억겁 전부터 같이 진화하면서 모습을 바꾸고 바꾸고 해서 자기를 형성시켜 온 그 절친한 벗, 누구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그 절친한 벗은 누구냐? 자기 주인공입니다. 영원한 자기 생명의 근본 주인공입니다. 그 주인공은 죽으나 사나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딜 믿으실 겁니까. 나 자신을 버리고 무엇을 찾아야 합니까? 그렇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것과 더불어 이렇게 끌려다니고 끌고 다니면서 둘이 아니게 같이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몸뚱이 속에 업식이 뭉쳐 있습니다. 업식을 받아 가지고 나왔으니까 고덩어리죠. 우리 중생은 고덩어리를 짊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인등을 켠다고 하시죠? 그것은 인등이 아닙니다.여러분의 마음 그 자체가 인등입니다. 몸뚱이는 등이요 마음 중심은 촛대요 마음내는 것은 불이라는 얘깁니다. 촛불!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일임하고 마음 편안하게 사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항상 불은 켜져 있는 것이고 항상 돌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야외법회로 한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법회 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염불 소리가 합쳐지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 여러분이 스님들을 따라서 같이 해 주십시오. 빨리 하거나 늦게 해 버리면 맞질 않습니다. 그러니 스님네들 하는 대로 따라서 해 주시면 듣기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님들도 너무 빠르게 하면 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 하더라도 주인공에다가 탁 놓고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로 믿는 사람은 믿는다는 생각도 없이 믿어지거든요. 그러면 우그러졌던 물건이 이렇게 변해서 확 펴듯이 그냥 펴지는 겁니다. 인생을 그렇게 쉽게 살아보세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 데 문)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다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요. 답) 여러분이 말하고 움죽거리죠? 만약에 생명의 근본이 없으면 그건 무효입니다. 또 육신이 없어도 무효고, 생각 내는 게 없어도 목석이에요. 이 몸뚱이, 육근, 육진, 육식이 움죽거리는 게 다 우주의 혹성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이게 없어도 아니 되고 저게 없어도 아니 되는데, 그것이 종합된 근본이 불성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
모든 건 그저 공해서 찰나찰나 돌아갈 뿐인데 그걸 붙들고 늘어진다면 오히려 고가 생깁니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길이 첩첩 쌓이게 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죽는 게 뭐가 그렇게 원통합니까?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듯이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기가 곤충인 줄 알고, 자기가 새인 줄 알고, 자기가 뱀인 줄 알고, 자기가 개인 줄 알고, 자기가 소인 줄 알고, 돼지인 줄 알기 때문에 우리 인간처럼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이 소립니다. 도끼로 머리를 때려서 죽이고, 매달아놓고 태우고 이래도 자기는 즐겁게 생각을 한답니다. 왜냐? 그 모습을 하나하나 벗겨나가니까 말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건 줄 안다면은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엉뚱하게 사람 짓을 한다고 해서 사람의 대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보지 않는다면 되돌아나올 수가 없고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통이라는 것도 무섭게 생각하지 마시고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다 하고 주인공에다 놓을 때 그냥 용광로에 들어가서 녹아지듯 녹아지는 것입니다. 봄이 오니깐 활동하시기가 좀 유하시죠? 아주 추울 때보다는.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마음의 봄이 와도 살기에 좀 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 진리를 배우는 데 세 가지의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진리에 순응해야 하고, 둘째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셋째는 시대에 따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 세 가지가 어긋날 때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과 같아서 그거는 불제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이
한마음 주인공에다 무조건 믿고 맡겨 놔야 됩니다. 무조건 맡겨 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화살을 쏘면 똑바로 탁 들어가야 되는데 화살이 일로 가서 맞고 절로 가서 맞는다면 그게 되겠습니까. 전체를 그냥, 중심을 꿰뚫는 공분데 말입니다. 견성이라는 말을 하는데… 문) 불교에서 견성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 일반적으로 견성을 했다는 스님들의 행적이나 어록, 또는 경전에서도 내면의 이끎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견성할 수 있는 것인지요. 답) 우리가 경전을 파악해 가지고서 모든 것을 알고 그 경전을 증득한 거하고, 내 마음을 증득한 거하고는 다릅니다. 경전을 증득한 거는 말이나 모든 것은 다 유창해도 결정적인 문제에 가서는 해결을 못해요. 그러니까 생활 속
어떠한 문제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흥! 코웃음 탁 치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 모든 걸 타파하고 넘어갈 수 있는 공부재료로 알고 공부들 열심히 하십시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럼 여러분이 마음공부 하는데 그냥 왔다 갔다만 하고 애고가 있고 병고가 있다고 해서 금방 그것만 애원하지 말고, ‘그것이 바로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다.’ 이렇게 생각을 돌려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그냥 그것만 앞장 세우고 그냥 애탄지탄하지 마시고 ‘야, 이런 수확이 어딨어? 이런 게 닥쳤기 때문에 내가 공부할 수 있다. 그리고 실험을 해서 체험을 하겠다.’ 한다면 고(苦)도 고가 아니에요. 어디 갈 때, 길을 걸을 때, 지루할 때 말입니다, 차가 갈 때에 그 차가 밀려서 지루하게 쉴 때가 있죠. 어
우리가 한생각을 잘 굴려서 내면은 일체 모든 게 생기고 구해지고 한생각을 쉬게 되면 모든 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마음이라는 자체가 바로 우주 삼라만상을 빚어내기도 하고 삼라만상의 모든 일체 만물만생을 다 마음으로 그려내기도 하고 마음으로 짓기도 합니다. 이 마음은 정말 어디다 비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그래서 한생각을 잘 굴려서 내면은 일체 모든 게 생기고 구해지지만 한 생각을 쉬게 되면 모든 고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두가 소멸된다 이 소립니다. 이 고가 다 소멸된다는 그 자체가 한생각에 어떻게 그렇게 다 소멸될 수 있을까 하지만, 믿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생사에 관한 건도 모든 것이 다 놔집니다. 죽고 사는 것도 다 놓게 되면은 고에서
정말 진짜로 가는 곳곳마다 그렇게 웃고 사세요 그냥 막 우그러져서 즉, 조상이라든가 무슨 일이 있어서 집안이 낭가가 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빨리빨리 생각나는 대로 펴야지, 우물쭈물하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는 펴지도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문)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된 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믿음을 갖고 참된 도의 길을 갈 수 있는지요? 답) 우리가 지금 종교라고 해서 믿고 다닌다 이런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종교를 믿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자신들, 이 껍데기인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살고 있고 이끌어 가는 내가 있으니까 꼭 그것은 서로가 상봉하고 받아야 되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믿어야 되겠다. 믿지 않는다
여러분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믿지 못하니까 모든 것을 거기다가 맡길 수도 없고 맡기지 못하니까 방황하게 되고 방황하니까 일이 잘 안되고 이런 거뿐입니다. 그러니까 알아서들 하십시오. (지난 호에 이어서) 한마디로 말해서, 요새 그 어디 화엄경에 보니까 뭐가 써있느냐 하면요, ‘이외에 공심(共心)인 부처님 세계에 작은 티끌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또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광대무변이라. 광대무변하니라.’ 그게 이름이라는 거예요. 또 ‘보배장엄이라.’ 이 이름을 똑같이 써놓고 똑같이 그렇게 해나가는 거예요. 그러니 그 이름이 전체 부처님 이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광대합니까, 이게. 그러나 따지고 보면 형체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오는 것 막지 말고 가는 것 잡지 말고 아무리 우리 도량에 누가 소 한 마리를 잡아왔다 하더라도 공손한 마음으로 지극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이 그게 진짜 부처님 법입니다. 이 도량이 비좁아서 여러분이 바깥에 저렇게 전부 서 계신 걸 생각하니 죄송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식당이고 어디고 꽉꽉 들어차면서도 마당에 저렇게 섰어야 하는 여러분께 뭐라고 죄송한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마음공부 하는 데는 공부라고 하기 이전에 생활이 공부니까 이것 저것을 따지고 자리가 좁다고 해서 안 올 정도라면 그건 공부 다했죠. 진짜 100% 인간 될 수 있는 그 공부가 지금 시급한 시대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겁니다. 왜 우리가 정월이면 촛불재를 올리느냐 하는 것에 대
알고보면 하나도 나를 내세울 게 없는 겁니다. 나 아닌 나가 있으니까요. 나 아닌 나가 나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체 만법을 가지고 있고 일체 화현의 도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싶어요 문) 마음공부에 대한 욕심은 많은데 체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믿음이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여러분 개개인에게 불성이 있습니다. 불성을 한번 돌려서 말하면 성불이죠. 여러분이 그냥 보통 이렇게 최초부터, 생명이 생길 때부터 가지고 계신 보배이기 때문에 그 보배로 인해서 이렇게 움죽거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알고 이 법이 옳은가 그른가도 생각을 해 보게 되고, 팔정도로 말을 그렇게 해 놨으니까 여
한마음 속에 온 누리를 다 덮고도 남음이 있고 온 누리에 통신 안됨이 없으니 온 누리에 한마음으로서 바로 공심으로 돌아갈 때 그 조상의 마음도 그냥 거기 한자리를 하는 것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천도재를 지냈습니다마는 어느 도량에 가든, 돌아가신 조상님이나 살아 계신 분에게 천도를 많이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시고, 곁들여서 영(靈)의 세계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그 뭐, 그 얘기 하면 영도 들어가는데 뭐를 또 붙였습니까? 하하하…. 그것도 세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차원은 모를 때에, 모르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그냥 따라서 천도식을 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흉내를 낸다,
목마르면 그냥 물 마시는 것, 그게 바로 불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가 붙지 않는 데서, 나라는 걸 세우지 않는 데서 바로 구경경지를 이루어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1(남): 큰스님, 제가 질문 드리겠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불법의 공부 과정을 삼단계로 가르쳐 주셨는데 첫째는 참나의 발견, 즉 자아(自我)의 발견과 완성, 둘째는 모두와 하나가 되는 것, 즉 전체 속에 자기가 있음을, 셋째는 이런 수행을 거쳐 보살도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둔한 저희들은 평소 큰스님의 법문을 통하여 여러 번 가르침을 받아 왔지만 아직까지 미혹한 가운데 있습니다. 차제에 이 삼 단계의 공부 과정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여러분한테 항상 말씀드리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얼른 와 닿
? 주인공에다 모든 걸 놓고 하라,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구정물 들어오는 것도 맑은 물 들어오는 것도 탓하지 말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그 물로 바꿔 써라. 천도는 마음으로 마음을 녹이는 거라는데 문) 이제 새해를 맞이하면서 촛불재로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제가 어느 스님께 절에서 천도재를 모실 때 스님들께서 영가를 보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조상 영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마음을 녹여 주시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천도하는 조상의 모습을 못 보면서 어떻게 재사를 모시는지 궁금합니다. 답) 옛날에 이런 점이 있었죠. 어느 분이 재사를 지내러 왔는데, 처음 오시는 분인데 그 난리 때 어떻게 돌아가셨대요, 부모님이. 그랬는데 내가 왜 부모를 담요에다 이렇게
자기부터 알고 자기 중생부터 제도해야 합니다 내 몸뚱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말고 다 내놔라. 다 내놓게 돼서 다 나 아님이 없을 때에 비로소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지난 호에 이어서) 내가 그전에도 얘기를 했죠. 그 뜨물 한 그릇 얻어먹고 나뭇짐을 해다 주려고 그랬는데, 은사가 그냥 한 번 때려 제껴서는 쓰러뜨려 놓고 “이놈아! 나무 한 짐으로써 무주상 보시가 될 수 있겠느냐?”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행하고 난 뒤에는 “아차, 무주상 보시가 이렇게 광대무변한 걸 몰랐구나. 그 핵심적인 여기에서의 한생각이면 무주상 보시의 행을 할 거를 내가 이 나뭇짐을 하느라고 이렇게 끄달렸구나.” 하곤 그냥 무르팍을 탁 치고, 무르팍 깨진 거를 어루만지면서 “고맙다, 고마워.” 했다는 얘기 말이에요. 이렇게
세계적으로 지금 부패되고 하는 그 모두가 마음에서 나오는 염파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잔잔하게 하고 안정되게 하고 전 세계를 파악해서 올라가는 거는 좀 내리고, 또 내려가는 거는 좀 올리고 이렇게 균형을 맞추면서 세계를 조정할 수 있는 그러한 주장자가 바로 여러분의 핵심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생각 좀 해 보십시오. 안방에 앉아서 세계를 봅니다. 또 인공위성을 통해 여기 한국의 신문이 미국으로 떨어지는데 한 찰나에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가 가르치는 것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걸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오신통이라는 그 시스템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여러분이 잘 아시겠죠. 전자에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해 놓으신 것이 지금 실천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