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마음과 조상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 풀 한 포기의 마음이 둘이 아니게 모두 합쳐서 나의 마음속에 찰나찰나 들고 나시니 어찌 내가 당당치 않으리오. (지난 호에 이어서) 모두가 그렇게 돌아가는 그 자체를, 즐거워도 즐거워하지도 말고 거기에 착 놓고 ‘이 즐거움도 거기서 즐겁게 나오게 했구나. 또 괴로움도 거기서 괴롭게 나오게 했구나. 모두가 그놈한테서 나온 거로구나!’ 이러면서 지켜보시라 이겁니다. 팥죽 속에서 팥죽 방울이 다 나온 거지 팥죽이 없는데 어떻게 팥죽 방울이 나오겠습니까, 네? 그러니 그렇게 팥죽 방울이 많이 나와서 꺼지고 일어나고 꺼지고 일어나고 꺼지고 일어나고 그러듯이, 여러분의 살림살이가 다 팥죽 솥에서 팥죽 끓듯 하는 살림살이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먹고 싸 버리고,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남을 이익하게 하는 일은 하시고, 악한 마음이 나올 때는 근본에다 놓고 한번 굴려서 다시 좋은 마음으로 나오게끔 다스리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과 더불어 광명선원 신축 건물 착공식을 한마음으로 한 몸으로 이렇게 같이 행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이 세상에 나서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 흙을 파내도 흙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물도 말없이 흐르고, 봄이 오면 말없이 잎이 푸르르게 나오고 꽃이 피는가 하면 가을이 되어 저절로 낙엽이 져서 떨어지곤 하지요. 이 무상의 도리를 여러분이 알아야만 이 세상을 살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무상의 도리다’ 한다면 무심의 도리도 알아야 합
진짜로 내 몸뚱이 하나와 더불어 같이 그냥 송두리째 죽고 산다 뭐, 괴롭다 괴롭지 않다를 다 당신 주인공에다 일임해 버리면 죽고 사는 것도 아랑곳 없어요. 그럼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인데 걱정할 게 뭐 있습니까. 좀 허허 웃고 사세요. 좀 더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길은 문) 직장 생활이 바빠서 절에 나가기는 힘들지만 나름대로 참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답)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모든 걸 주인공에 맡기고 살아라, 맡겨 놔라 이럽니다. ‘맡기고 살아라.’ 이러면 여러분이 더 실감이 날 거 같아서 맡기라고 그랬습니다. 한군데다 맡겨라. 한군데다 믿고 맡겨라. 믿지 못하면은 맡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맡겨라.’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어요. 여러분이 콧방귀 탕 뀌면 탕 뀌는 대로예요.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아니, 사람의 마음 밖에 더 무서운 게 어디 있습니까. 또 부처님 마음과도 둘이 아니요 우주하고도, 세상하고도 둘이 아닌데 말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우리는 태도와 하고 다니는 모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옷은 기워 입든 꿰매어 입든 얼룩얼룩하든 상관이 없어요. 아무리 옷 빛깔이 그렇다 하더라도 정갈스럽고 정돈이 돼 있어야죠. 신발도 그렇고 양말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이빨도 그렇고, 이 모든 것이 정돈되지 않았다면 바보 병신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그렇게 보인다면 벌써 상대방에게 간판이 무시를 당하는 겁니다. 이건 어디에나 다 그렇다고 봅
우리가 이왕지사 칼을 뽑았으면 그 칼로 내 동료들도 살리고 이웃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고 모든 일체 만물의 은혜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법을 배운다면 모든 조상들과 일체제불의 은혜도 돌 쪼가리 하나 나무 한 그루의 은혜도 다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활하시는 것을 보면 항상 자기 마음에서 나오니까 자기 마음인 줄만 아시고 그것을 다스리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여러분이 과거에 살 때 인연 지은 악업 선업의 그 생명체들이 과거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러분 몸속에 다 주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돼서 말입니다. 한 덩어리에 있죠. 그런데 그 한 덩어리가 컴퓨터라면 바로 그 덩어리 속에 의식들이 잠재하고 있어요. 잠재하고 있다가 살아나가는 데에 차
자기주인공이 없다면 지금 몸도 정신계도 없어요. 내가 없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꼭 알아야 되겠다. 이 세상에 나와서 절대 그냥 갈 수 없다. 나를 움죽거리게 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야 되겠다.’ 하고 좀 그러란 말입니다. 한마음 주인공이 무엇인지요 문) 이제 갓 불교에 입문하게 된 불자입니다. 그런데 한마음 주인공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 예를 들어서 큰 불기둥이 하나 하늘을 꿰고 땅을 딛고 이렇게 있다고 봅시다. 그런데 이 우리가 돌아가는 수레가, 우리가 생활하고 돌아가는 수레가 그 불기둥을 가운데다 끼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사는 게. 그냥 쉬는 사이 없이 그대로 돌아가요. 그런데 벌써 주인공을 내가 일부러 찾아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용도가 오든 이렇게도 굴리고 저렇게도 굴려서 자기네가 지혜를 낳아서 작용하는 거지 어떻게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가르쳐줍니까. 그러니까 지혜롭게 네 스승을 네 스스로 찾아라 이겁니다. 네 스승을 스스로 찾는다면 그 안에서 다 길잡이도 되고 용도에 따라서 나오는 대로 처리하면서 굴리는 도리가 스스로 지혜롭게 나온다 이겁니다. 자기가 먹어봐야 맛을 알듯이.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1(남): 저희들 생활에서 신행의 자세에 대하여 한 말씀 여쭙고자 합니다. 큰스님 말씀대로 저희들이 주인공 믿음 하나만 가지고 그냥 안으로 녹이고 들어가면 그걸로써 모든 것이 다 끝이지, 그 외에 다른 말씀들은 다 군더더기고 사족인 걸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만, 또 저희
앉아서 세상을 다 굴리고 세계를 다 굴리고 우주를 다 굴릴 수 있는데 어째서 그렇게 비천하게 자기 한 발짝 떼어 놓으라는데도 못 떼어 놓습니까? 여러분한테 질문을 한번 해 볼까요? 만약에 이 세계가 빌딩이라면, 우리가 그 빌딩 안에 있는데 빌딩에서 불이 났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옴치고 뛸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죠? 거기에서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왜 말을 못하십니까? 뭐, 이 생각 저 생각 들겠습니까? 가까운 예로, 만약에 어느 빌딩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불이 나서 나갈 구멍만 찾는 상황이라면, 남을 건지기는커녕 나부터 건져져야 하는 것이죠? 그럴 때 그 안에서 무슨 생각이 나겠습니까?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아무 생각도 없어요? 신도1(남): 살아야겠다는
오직 자기 주인공만이 자기를 지켜주고 자기를 이끌어주고 모든 해결은 그로부터 된다고 믿어야 됩니다. 닥치는 모든 경계 지혜롭게 해결하려면 문) 마음공부를 한다 하면서도 어떤 문제는 마음을 비우고 잘 관해지지만 어떤 문제는 거기에 끄달려 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떡하면 닥치는 모든 경계를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는지요. 답) 제일 첫째에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걸어왔든 앞으로 한 발 한 발 떼어 놓는 그 진리 속에 어떻게 해야만이 그 한 발 한 발 떼어 놓는 것을 그렇게 항상 그릇을 비울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참는다면, 속으로 참고 내색을 안 하고 좋은 소리를 하고 그래도 그건 참는 까닭에 항상 그릇에 넘쳐 담기지 않죠. 참는 게 아니라 한 발 떼어 놓는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팔만사천의 법입니다. 번뇌가 아니라 법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업보를 지어서 이렇게 번뇌가 일어날까? 죄를 얼마나 지었길래 이런 악한 것이 닥칠까? 이런다면 점점 더합니다. 그냥 불난 데 기름 갖다가 퍼붓는 거나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담요로다가 탁 덮으시면 불은 잔잔하게 꺼지듯이 그렇게 하십시오. (지난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큰스님께서 이렇게 귀한 자리를,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두 가지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서산대사께서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이 마
내 마음이 따뜻하지 못하면 남의 마음도 따뜻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이 따뜻하지 못한데 어찌 남의 마음이 따뜻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내 마음이 악하게 되면 그건 무간지옥이라 그랬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 반면에 정심으로써 지혜롭게 따뜻한 마음으로 둘이 아닌도리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고 상대를 대한다면 마음은 체가 없는 거라 스스로 상대도 밝아져서 나와 더불어 밝게 불을 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아래에 앉았는데 제가 법상 위에 올라앉은 것은, 내가 높고 여러분이 낮아서 이렇게 앉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나의 모습을 쳐다보는 반면에 나도 여러분을 다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지 내가 높아서 이 법상에 올라앉은 게 아닙니다.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겨서 해결을 하도록 하십시오. 죽는 것도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으니까요. 절실히 믿고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서 하신다면 어떠한 거든지 풀리지 않을 게 없고 자유스럽지 않을 게 없다고 봅니다. 내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문)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만 어떤 문제들에 부딪치면 어느 새 상대 탓을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마음공부의 길이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요? 답) 왜 자기를 자기가 못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용광로에 넣듯이 작업을 그렇게 하라고, 안되는 것도 찰나, 되는 것도 찰나라면 여러분, 고정된 게 하나도 없죠?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가고 오는 것. 고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모두가 그러니 공했단 얘기죠.
수억겁 전부터 같이 진화하면서 모습을 바꾸고 바꾸고 해서 자기를 형성시켜 온 그 절친한 벗, 누구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그 절친한 벗은 누구냐? 자기 주인공입니다. 영원한 자기 생명의 근본 주인공입니다. 그 주인공은 죽으나 사나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딜 믿으실 겁니까. 나 자신을 버리고 무엇을 찾아야 합니까? 그렇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것과 더불어 이렇게 끌려다니고 끌고 다니면서 둘이 아니게 같이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몸뚱이 속에 업식이 뭉쳐 있습니다. 업식을 받아 가지고 나왔으니까 고덩어리죠. 우리 중생은 고덩어리를 짊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인등을 켠다고 하시죠? 그것은 인등이 아닙니다.여러분의 마음 그 자체가 인등입니다. 몸뚱이는 등이요 마음 중심은 촛대요 마음내는 것은 불이라는 얘깁니다. 촛불!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일임하고 마음 편안하게 사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항상 불은 켜져 있는 것이고 항상 돌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야외법회로 한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법회 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염불 소리가 합쳐지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 여러분이 스님들을 따라서 같이 해 주십시오. 빨리 하거나 늦게 해 버리면 맞질 않습니다. 그러니 스님네들 하는 대로 따라서 해 주시면 듣기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님들도 너무 빠르게 하면 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 하더라도 주인공에다가 탁 놓고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로 믿는 사람은 믿는다는 생각도 없이 믿어지거든요. 그러면 우그러졌던 물건이 이렇게 변해서 확 펴듯이 그냥 펴지는 겁니다. 인생을 그렇게 쉽게 살아보세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 데 문)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다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요. 답) 여러분이 말하고 움죽거리죠? 만약에 생명의 근본이 없으면 그건 무효입니다. 또 육신이 없어도 무효고, 생각 내는 게 없어도 목석이에요. 이 몸뚱이, 육근, 육진, 육식이 움죽거리는 게 다 우주의 혹성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이게 없어도 아니 되고 저게 없어도 아니 되는데, 그것이 종합된 근본이 불성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
모든 건 그저 공해서 찰나찰나 돌아갈 뿐인데 그걸 붙들고 늘어진다면 오히려 고가 생깁니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길이 첩첩 쌓이게 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죽는 게 뭐가 그렇게 원통합니까?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듯이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기가 곤충인 줄 알고, 자기가 새인 줄 알고, 자기가 뱀인 줄 알고, 자기가 개인 줄 알고, 자기가 소인 줄 알고, 돼지인 줄 알기 때문에 우리 인간처럼 고통을 받지 않는다 이 소립니다. 도끼로 머리를 때려서 죽이고, 매달아놓고 태우고 이래도 자기는 즐겁게 생각을 한답니다. 왜냐? 그 모습을 하나하나 벗겨나가니까 말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건 줄 안다면은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엉뚱하게 사람 짓을 한다고 해서 사람의 대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보지 않는다면 되돌아나올 수가 없고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통이라는 것도 무섭게 생각하지 마시고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다 하고 주인공에다 놓을 때 그냥 용광로에 들어가서 녹아지듯 녹아지는 것입니다. 봄이 오니깐 활동하시기가 좀 유하시죠? 아주 추울 때보다는.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마음의 봄이 와도 살기에 좀 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 진리를 배우는 데 세 가지의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진리에 순응해야 하고, 둘째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셋째는 시대에 따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 세 가지가 어긋날 때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과 같아서 그거는 불제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이
한마음 주인공에다 무조건 믿고 맡겨 놔야 됩니다. 무조건 맡겨 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화살을 쏘면 똑바로 탁 들어가야 되는데 화살이 일로 가서 맞고 절로 가서 맞는다면 그게 되겠습니까. 전체를 그냥, 중심을 꿰뚫는 공분데 말입니다. 견성이라는 말을 하는데… 문) 불교에서 견성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 일반적으로 견성을 했다는 스님들의 행적이나 어록, 또는 경전에서도 내면의 이끎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견성할 수 있는 것인지요. 답) 우리가 경전을 파악해 가지고서 모든 것을 알고 그 경전을 증득한 거하고, 내 마음을 증득한 거하고는 다릅니다. 경전을 증득한 거는 말이나 모든 것은 다 유창해도 결정적인 문제에 가서는 해결을 못해요. 그러니까 생활 속
어떠한 문제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흥! 코웃음 탁 치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물러서지 않는 믿음으로 모든 걸 타파하고 넘어갈 수 있는 공부재료로 알고 공부들 열심히 하십시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럼 여러분이 마음공부 하는데 그냥 왔다 갔다만 하고 애고가 있고 병고가 있다고 해서 금방 그것만 애원하지 말고, ‘그것이 바로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다.’ 이렇게 생각을 돌려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그냥 그것만 앞장 세우고 그냥 애탄지탄하지 마시고 ‘야, 이런 수확이 어딨어? 이런 게 닥쳤기 때문에 내가 공부할 수 있다. 그리고 실험을 해서 체험을 하겠다.’ 한다면 고(苦)도 고가 아니에요. 어디 갈 때, 길을 걸을 때, 지루할 때 말입니다, 차가 갈 때에 그 차가 밀려서 지루하게 쉴 때가 있죠. 어
우리가 한생각을 잘 굴려서 내면은 일체 모든 게 생기고 구해지고 한생각을 쉬게 되면 모든 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마음이라는 자체가 바로 우주 삼라만상을 빚어내기도 하고 삼라만상의 모든 일체 만물만생을 다 마음으로 그려내기도 하고 마음으로 짓기도 합니다. 이 마음은 정말 어디다 비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그래서 한생각을 잘 굴려서 내면은 일체 모든 게 생기고 구해지지만 한 생각을 쉬게 되면 모든 고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두가 소멸된다 이 소립니다. 이 고가 다 소멸된다는 그 자체가 한생각에 어떻게 그렇게 다 소멸될 수 있을까 하지만, 믿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생사에 관한 건도 모든 것이 다 놔집니다. 죽고 사는 것도 다 놓게 되면은 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