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터 알고 자기 중생부터 제도해야 합니다 내 몸뚱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말고 다 내놔라. 다 내놓게 돼서 다 나 아님이 없을 때에 비로소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지난 호에 이어서) 내가 그전에도 얘기를 했죠. 그 뜨물 한 그릇 얻어먹고 나뭇짐을 해다 주려고 그랬는데, 은사가 그냥 한 번 때려 제껴서는 쓰러뜨려 놓고 “이놈아! 나무 한 짐으로써 무주상 보시가 될 수 있겠느냐?”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행하고 난 뒤에는 “아차, 무주상 보시가 이렇게 광대무변한 걸 몰랐구나. 그 핵심적인 여기에서의 한생각이면 무주상 보시의 행을 할 거를 내가 이 나뭇짐을 하느라고 이렇게 끄달렸구나.” 하곤 그냥 무르팍을 탁 치고, 무르팍 깨진 거를 어루만지면서 “고맙다, 고마워.” 했다는 얘기 말이에요. 이렇게
세계적으로 지금 부패되고 하는 그 모두가 마음에서 나오는 염파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잔잔하게 하고 안정되게 하고 전 세계를 파악해서 올라가는 거는 좀 내리고, 또 내려가는 거는 좀 올리고 이렇게 균형을 맞추면서 세계를 조정할 수 있는 그러한 주장자가 바로 여러분의 핵심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생각 좀 해 보십시오. 안방에 앉아서 세계를 봅니다. 또 인공위성을 통해 여기 한국의 신문이 미국으로 떨어지는데 한 찰나에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내가 가르치는 것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걸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오신통이라는 그 시스템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여러분이 잘 아시겠죠. 전자에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해 놓으신 것이 지금 실천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
생활 속에서 이 마음도리를 공부하면서 실험하고 체험해보세요. 얼마나 묘하고 광대무변한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어렵더라도 잘 넘기면서 직발 활을 쏠 수 있는 심력을 기르도록 하세요. 이것도 기복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 문) 저는 엄마와 두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요, 엄마는 아파서 드러누워 있고, 때문에 제가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서 관을 많이 하게 돼요. 그런데 가끔 이렇게 관하고 맡기다 보면 이것도 기복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하는데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답) 기복이라는 건 상대를 두고 믿는 거를 기복이라고 그러죠. 절대 상대를 두고 믿는다면은 그건 기복이에요. 그러나 이게 불성, 생명의 근본은 다 똑같은 것입니다. 다 똑같은데 마음 쓰는 거라든가 차원이라든가 모
집착을 하지 마시고 그대로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겸손하고 의리있고 도의에서 벗어나지 않게 자기를 자기가 다스리면서 모든 것을 부드럽게 해 나가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옛날에는 당나귀 끌고 다니던 마부가 많이 있었죠. 당나귀를 끌고 다니는 마부가 얼마나 때리고 일을 부려먹었는지 당나귀가 앙심을 먹고 죽어서 그냥 남편으로 태어나고 마부를 부인으로 해서 맞아들였어요. 하하하…. 그래 가지고는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그냥 때리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삽니까? 옛날에야 함부로 이혼도 못하고 시집도 마음대로 못 갔으니 말이죠. 그러니까 그냥 울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냐고, 자기가 지은 죄는 모르고요. 아, 이러고 울고불고 그러는데 어느 스님이 탁발을 하러 오셨더랍니다. 그래서
믿음이 진실하고 넉넉하다면 어떠한 것도 다 잊어버리고 허허 웃을 수 있습니다. 허허 웃을 수 있어야 웃을 수 있게끔 다시 돌아옵니다. 여러분과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 항상 한마음으로 행하시길 빌면서…, 즐겁습니다. 올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듯합니다. 우리가 배급을 탈 때 연방 돌아가서 뒤에 서고 또 서고 하는 거와 같이, 사람 사는 도리도 역시 그러합니다. 지구의 끝을 찾으려고 계속 가니까 처음 자기가 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는 얘기가 있듯이, 우리가 죽는다 하는 것도 아주 죽는 게 아니라 그 재료로 인해서 다시 형성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천당 지옥이 따로 숨겨져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 죽으면 사흘 이내로, 다시 어떠한 모습으로 형성되게끔
여러분이 이 마음공부를 하는 데는 무조건 들을 줄 알아야 되고, 무조건 받을 줄 알아야 되고 무조건 삼킬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하나 삼키다보면 나중엔 몽땅 다 삼키게 돼요. 어떻게 한꺼번에 몰락 다 삼키겠어요? 주인공은 무엇이고 어떻게 관하는 것인지요. 문)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스님의 법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무엇이며 관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요. 답) 자기 마음이 자기 육체를 끌고 다니죠? 그게 바로 주인공이에요. 자기 육체를 끌고 다니는 자기 마음이 주인공이에요. 그래, 그 근본이 되지요. 말하자면 불성도 될 수 있고, 불성과 영혼 둘이 합쳐진 것이 그대로 한마음이고 말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머니 아버지한테 몸을 받아서 과거에 살던 인과들을 다 이렇게 같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정말 멋쟁이로 삽시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인간으로서 진실하게 산다면 무엇이 두려울 게 있습니까. 정말입니다. 자기 양심이 진실하다면 무엇이 두려울 게 있습니까. (지난 호에 이어서) 그러니 여기서 밝게 켜는 그 장본인의 자가발전소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거지 딴 데서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지구의 주인은 여러분이고, 또 그 지구는 우리의 집입니다. 그 집과 주인과 둘이 아닌 까닭에 지구에서도 대기권이 있고, 나쁜 거는 레이더망이 막아서 이렇게 하고 있는 이런 문제들도 개발되어 알게 되고, 천문학으로써 그걸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죠. 인간에게도, 이 허공에 오고 가는 그 길에도 그저 모습 없는 모습, 생명들이 꽉 차 있어요. 그런데
오계를 받는다는 것은, 삼계에 두루 하니 두루 하는 그 모습들이여, 영가들이여. 그 생명 그 자체가 영가들이 따로 없고 현재 생명들이 따로 없는 바로 도심으로서 여여하고, 생활이 실상이니 우리 한마음으로 뭉쳐 그 도리를 알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오늘 오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마음공부를 증득하지 못하고 오계를 방편으로만 설하고 방편으로만 받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둘이 아니며 둘이 아닌 까닭에 부처님의 온 누리의 그 뜻이 한 찰나에 서리니, 오계를 받은 분들은 앞으로 더 오계를 받을 필요가 없고, 첫째는 악한 병고에 휘달리지 않을 것이고 두번째, 모든 이 한마음으로서 돌아가는 그 공부에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여우 꼬랑지
일부러 잡아다가 방생한다는 것이… 문) 예전에 아는 사람이 방생하러 간다고 하기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제 생각엔 고기를 일부러 잡아다가 방생한다는 것이 좀 이해가 안 갑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는데 이런 방생도 부처님 뜻에 맞는 것인지요. 답) 그건 놀부의 짓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에만 넣으면 사는 줄 알지 마십시오. 물도 몫몫이 다 있어요. 여러분이 볼 때는 물이면 물, 그냥 다 똑같은 줄 아시지만, 우리가 또 어떤 동네라도 영등포가 있고 종로가 있듯이, 또 그 어구에 들어가면 지게꾼도 “야, 너 여기 어딘 줄 알고 들어와? 여기 구역은 내 구역이야.” 이렇게 합니다. 이런 거와 마찬가지로 물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통방통합니까. 그렇듯이 고기도 다 자기 자리를 알고 고
어떠한 문제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말로써 몸뚱이를 잡으려 해서는 잡혀지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고장난 건 마음으로 고쳐야 됩니다. ?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1(남): 세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 질문은 제가 주인공 관(觀)하는 법을 듣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 느낀 것을 질문드리겠습니다. 주인공을 믿고 계속 관을 하다 보니까 물론 몸에 병이라든지 어려운 일이 해결되는 예를 저로서는 수차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지나고 나서 제 마음 상태가 항상 욕심을 내는지, 화를 내는지, 미워하는 마음을 내는지,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내고 있는지를 거의 알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것이 경계이기 때문에 이 미혹한 경계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마음을 밝은 쪽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 마음의 용광로에다 모든 것을 맡겨놓으세요 벽을 치면 봇장이 울리듯이 나는 업이 많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고가 많다고 생각지도 말고 죄가 많아서 이렇다는 생각도 말고 모든 것을 용광로에 집어넣듯 다 놔버리세요. 한마음의 눈빛이, 서로서로를 왕래할 수 있는 자리가 돼서 참 감사합니다. 엊그저께 오며 가며 텔레비전을 보니까 요즘뿐만은 아니겠지만 장애자들이 많이 난다고 합니다. 장애자들이 나오는 것에 대해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일이 있다고 봅니다. 항상 말씀드리기를 내 내면의 용광로에다가 모든 것을 맡겨놔라 이랬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입력이 돼 있기 때문에 현실에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온 것이니까 제
모습 있는 자기는 모습 없는 자기를 진짜로 믿어야 됩니다. 진짜로 믿어야 태평해지죠. 진짜로 믿어야 ‘너만이 할 수 있어!’ 하고 갖다 맡겨도 그게 진짜로 실천으로 옮겨지고 그게 법이 땅에 한데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공법으로서의 공용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공부 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겠죠? 문)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데도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러니 나를 알고자 하는 이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답) 여러분한테 이런 말을 합니다. 듣기 싫은 말은 남편에게도 하지 말고, 여자에게도 하지 말고, 자식에게도 하지 말고 이렇게 인의롭게 슬슬 돌려서 좀 거북하게 걸리지 않도록 말을 잘해 주면서 안으로 굴리라고요. 안으로 굴리는 그
여러분은 꼭 마음공부를 하셔야 됩니다. 각자 여러분의 뿌리를 진짜로 믿으십시오. 마음으로는 그 몸을 다스리면서 행동하셔야 되고 안으로는 믿고 가셔야 합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지금 금속이나 전력이 곳곳에 쓰이지 않는 데가 없듯이 우리의 마음의 금강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아니 쓰여지는 데가 없다 이 소립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내가 아프면 의사가 되고 내가 명이 짧을 때는 칠성이 돼 주고, 물에서 어려운 일이 있어서 거기다가 모든 걸 맡겨 놓고 ‘너만이 잘 가게 할 수 있다.’ 했을 때에는 바로 용신이 돼 주고, 먼 길을 갈 때 바로 내면세계의 주인공에다 맡겨 놓으면 지신이 돼 준단 말입니다. 이거를 못 믿겠걸랑 한번 여러분 가정을 들여다보세요. 아버지가 아버지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우리는 한 치도 에누리가 없는 아주 정확한 진리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것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시대는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중용을 하고 돌아가야만이 자유를 느끼며 살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물질계의 50%만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걸림이 많은지 그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의 진의를 완전히 터득해서 알아야만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잘 가르친다는 건 아닙니다. 나는 심부름만 할 뿐이지 내가 말하는 것도 없고 내가 하는 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우리가 다 죽는다 하더라도 불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돼서 우리가 다 죽는다 하더라도 불교가 끊어지지 않는가.
모든 걸 내 안의 자동적인 컴퓨터에 놔라. 거기다 맡겨놓고 거기서만이 진행되는 걸 지켜봐라. 그렇게 되면 실험이 되고 체험을 하게 된다. 체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참 선의 직속길이다. ? 왜 인간들이 점점 더 흉악해지는 것일까요 문) 요즘은 정신적으로 정말 많이 메말라가는 것 같습니다. 가족끼리도 서로 죽고 죽이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걸 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다 인간들이 이렇게 점점 더 흉악해지는 걸까요? 답) 우리가 부모 밑에서 올바르게 길러지는 자식은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걷는데, 궤도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어른이나 애나 다 똑같습니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즉 말하자면 이것이 자석처럼, 마음이 자석처럼 붙어 돌아가는 겁
여러분은 살려고만 하시는데 그러지 마세요. 마음이 진짜 살 수 있어야 몸도 살 수 있는 거지 마음이 살 수 없는 마음, 흔들리는 마음이라면 몸도 죽습니다. 그러니까 ‘살리든지 죽이든지 하여튼 주인공 뿌리 너한테 달려 있으니까, 당신한테 달려 있으니까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하고 모든 걸 관하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부처님을 찾고 경전을 보기 이전에 내 마음부터 그렇게 단련을 해 가지고 경전을 한번 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싱그럽고 광대무변한 것인지를 아실 겁니다. 경이라는 것도 교입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다스리면서 배우고 나갈 수 있는 교입니다. 그 경을 보고 배우는 것도 자기의 마음 다스림에 의해서 결부돼야지 아무것도 모르고 경만 읽으면 잘
너부터 알라. 너부터 알고 너부터 믿고 너부터 그 본래 있는 거를 찾는다면 이 세상 우주 만물이 돌아가는 섭류를 네 자신이 잘 알 수 있느니라. 그럼으로써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느니라. ?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일체제불과 저와 여러 스님들과 더불어 같이 본래 한자리로 돌아갑니다. 더우기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인데도 모두 그냥 ‘비 오거나 말거나 맞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이렇게 하시는 것을 오늘 역력히 보았습니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하다가 정히 비가 와서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면 비가 오지 않게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 정성 여하에 달린 그 자신들의 마음을 시험해 보는 것도 됩니다. 하여튼 여러분 장하십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여러분이 스님들보다 더 신심이 돈독하지 않나 하는 생
우리는 봄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꾸준히 밑 빠진 구멍에 모든 것을 믿고 놓아야 합니다. 먹고선 싸지 않으면 부작용으로 죽습니다. 싸야 살듯이 놔야 삽니다. 몸이 있을 때 이 공부를 안 하면 세세생생 가슴찢고 울부 짖으며 창살 없는 감옥처럼 그렇게 자유스럽지 못하게 지낼 터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알음알이로 쉽게 말은 하지만… 문) 불법을 공부한다 하면서 행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웠는데 사실은 저도 그러고 있더라고요. 누가 뭐라 하면 ‘둘이 아니잖아.’ 하고 알음알이로 쉽게 말은 하지만 정작 저 자신도 행은 안되거든요. 열심히 해서 이 도리를 알고 싶은데 어찌 공부하면 좋겠습니까. 답) 사람마다 누구나가 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우리가 둘이 아닌 것이라고 하
일체의 모든 것을 거기다 맡겨놔라. 이 우주 천하에 직결돼 있는 근본이 모두 사람의 마음에 직결돼 있는 것을 알고 그 직결돼 있는 주인공을 믿고 거기다가 모든 것을 맡겨놔라. (지난 호에 이어서) 큰스님: 아까 끄트머리로 말씀하신 것은 아까, 뭐라 그랬죠? 질문자1(남): 산소를 잘못 건드렸을 때 자손에게 화가 미친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큰스님: 네. 그거는요, 여기서는 그런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소승이다, 대승이다 하는 교리를 다 놓고 돌아가는 이 진리를 탐구하는데 무슨 그것이 잘못되고 잘되고가 있습니까? 일체 만법에 뭐, 마음은 체가 없는 겁니다. 그렇죠? 영(靈), 의식은 수만 개가 들어와도 들어온 사이가 없고 내놔도 내놓은 사이가 없고, 또 내가 가다가 ‘아, 여기가 좋
?어느 누구든지 깔보지 않고 병신이든 병신이 아니든 똑똑하든 똑똑지 않든 누구를 막론해놓고 웃으면서 대해줄 수 있으며 ‘내가 못 배웠을 때 내 모습이다. 바로 나인 것이다.’ 이렇게 사랑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을 때 바로 모든 것에서 몰락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눈을 마주하면서 서로 토론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말을 하면 여러분이 먹을 것이요, 여러분이 질문을 해도 내가 먹고 없는 것입니다. 함이 없이 하는 도리가 바로 이 도린가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지금 이러한 도리를 공부하는 데 대해서 갈등이 있거나 방황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고도 또 이건 대승(大乘)이니 소승(小乘)이니 하면서, 여기는 체계가 잡혔느니 잡히지 않았느니 하고 생각들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