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서)잘 들으세요. 세 가지 여건이 있습니다. 말 보시, 말 보시도 무주상 보시입니다. 내가 여러분처럼 학식을 많이 쌓아서 그걸 봐 가지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뽑아 가지고선 여러분에게 해 드리면 쉬워요. 그러나 여러분한테는 마음이 있습니다. 요만한 마음이 전체의 우주를 덮고 받치고 굴리면서, 여러분한테 극진히 내 마음을, 내 몸을 조금도 가리지 않고 말씀해 드리는 이건 무주상 보시가 아닙니까? 또 물질 보시가 있습니다, 물질 보시! 여러분한테 이렇게 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참, 말은 안 합니다마는 없으면 없는 대로 물
차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지름길은 차를 만드는 원리를 아는 것이다. 다사(茶事)의 핵심은 좋은 차를 감별할 수 있는 능력에 있고, 이에 따라 차의 격조가 다르게 구현되기 때문이다. 물론 차의 이치에 두루 밝은 다인(茶人)이라면 좋은 차를 감별할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차의 진수를 드러낼 조건이 무엇에 있는지를 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차를 잘 즐기기 위한 첫째 조건은 차의 품질을 잘 감별할 안목을 갖추는 것인데, 이는 제다의 오묘한 원리를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결국 다사는 차를 즐기는 전반 사항으로, 차의 진수는 제다
계곡 물소리가 부처의 설법계곡의 폭포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무진장 설법인데(溪聲便是廣長舌)어찌 산천의 아름다운 경치가 청정한 부처의 몸이 아니랴(山色豈非淸淨身)밤새도록 쏟아진 팔만사천 미묘한 무정(無情) 법문을(夜來八萬四千偈)다른 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 이치를 설명해 보일 수 있을까(他日如何擧似人)이 오도송은 소동파(蘇東坡, 1036~ 1101)가 중국 선종의 오가칠종인 임제종 황룡파의 개조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선법을 이은 상총(常總)선사로부터 인가(認可)를 받은 선시이다. 소동파는 중국 송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서예가이며
불가의 ‘승소’란 탐식을 경계하는 수행자들마저 미소로 허락하게 만드는 먹을거리다. 국수와 떡, 두부, 만두 등이 바로 그것이다. 2주에 한 번 ‘승소’를 찾는 새로운 여정에서 이 봄, 제철 음식인 오이와 표고버섯으로 만든 오이만두를 만나본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동그란 눈이 가만 웃는다. 자그마한 창문처럼 안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눈에 한 수행자가 머무는 세상이 있다. 자유와 행복, 그 영원한 꿈을 고스란히 품은 세상. 그곳의 주인과 함께 나눈 어느 봄날의 소박하고 맛있는 이야기. 스님을 웃게 하는 맛스님이 웃는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에 불암산 불암사(佛巖寺)를 찾았다. 봄기운이 완연해서 불암사 경내의 수목(樹木)들에는 새싹이 돋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새싹은 자라서 꽃을 피울 것이다. 신록(新綠)이 돋아서 녹음(綠陰)이 우거지고, 단풍이 들어서 조락(凋落) 끝에 나목(裸木)이 되는 사계의 법칙을 관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해님의 얼굴(日面)이리라. 약속 시간에 맞춰 종무소를 찾으니 두산 일면 대종사가 필자를 반겼다. 일면 스님은 자신의 주석처로 필자를 안내했다. 주석처 앞에서 왼쪽을 올려다보니 기암(奇巖)이 서 있다. 아마
용장곡 석조여래좌상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 것 같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 글을 보고 아쉬움에 잠 못 들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계단을 오르면 바로 1000년을 넘게 삼릉계곡을 지키고 계신 관세음보살님이 서 계시기 때문이다. 일명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입상이다. 무엇보다 조선 500년 숭유억불의 풍파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서 계신 늠름한 향기가 풍기는 보살상이다.조선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던 주자학을 근본으로 해 1392년 건국된 국가다. 조선에서 불교는 탄압받고 파괴되는 모습을
SF는 영어로 Science Fiction, 그러니까 과학에 대한 허구적 이야기를 지어내는 장르이고, 관습적으로는 ‘공상과학’이라고 번역하곤 한다. 그런데 사실 SF장르 안에 ‘공상’과 ‘과학’에 고르게 방점을 둔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개봉 전부터 전 세계 흥행을 노린 〈듄: 파트2〉 같은 작품은 원작인 소설이나, 그 소설의 설정을 가져다가 만든 컴퓨터 게임이나 1984년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연출했던 〈듄〉(이 영화를 당시에는 ‘사구’, 그러니까 ‘모래 언덕’이라고 소개됐던 작품)이나, 최근작까지 아무리 살펴봐도 설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면 간만큼 땅을 다 차지할 수 있는 마을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안간힘으로 더 멀리 내달렸지만, 아무도 제때 돌아오지 못했다. 한때 어두운 새벽에 별을 보며 출근했다가 캄캄한 저녁에 별을 보며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집은 오직 씻고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며, 오래 고민하고 산 좋은 오디오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했고 좋은 자전거가 있어도 마음껏 달려보지 못했다. 산이 좋아 산 가까이 이사를 했음에도 등산 한번 하지 못했다. 뭔가 거꾸로 사는 느낌, 내 삶에 내가 주인이 아니라 객이 된 느낌이 들었
대학생 지도법사를 하면서 꿈꾸는 일들이 많아졌다. 대학생들에겐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생각보다 더 기발한 아이디어와 진중한 사유 체계가 이들에게선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를 대하는 태도가 스님인 나로 하여금 스님의 상을 벗게 만든다.2024년을 시작하며 대학생 법우들과 해외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종단에서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불교문화행사 국고보조금 지원사업 공모가 있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주변에 10년 넘게 스리랑카 해외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는 스님이 계셔서 조언을
아침마다 온라인 줌(ZOOM)으로 함께 을 공부 중인 민희(가명)님은 사건이 있던 그날 밤부터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아팠는데, 다음날 마침 온라인으로 하는 100일간의 108배와 공부 안내를 보고는 ‘나를 위한 공부구나’ 싶어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인생은 타이밍이다! 법문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에선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아픈 상처가 떠오를 땐 한동안 울먹이던 그녀가 그날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저는 형제가 저 혼자뿐이에요. 자라면서 형제 없이 모든 걸 혼자 결정해오다 보니까
이름값을 한다는 것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 하나씩 더 가지고 있습니다. 입문자를 위한 기초교육을 마치면 스님에게서 법명을 받거나 오래 전에 스님에게 법명을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대체로 이름이란 내가 “이 이름으로 해주세요”라고 콕 집어서 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 마음인 경우가 많지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도 그렇고 절에서 받은 이름도 그렇습니다. 또 법명은 하나만 지니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불자들은 여러 스님에게서 법명을 받아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쓰기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 한자리에, 항상 한자리를 하면서도 또 한자리를 한 것 같습니다. 우주의 섭리와 더불어 우리 생활이 같이 돌아가면서도 너 나가 있듯이, 너 나가 있으면서도 한자리 하고, 한자리를 하면서도 한자리가 아니고 한자리가 아니면서도 한자리를 할 수 있는 깊은 뜻, 그 깊은 뜻에 의해서 우리는 움죽거리고 있는 것입니다.항상 여러분한테 말씀해 드리는 것은 말로 그냥 떨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 법이 돼서 여러분한테 이익이 가고 여러분 생활에 지침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문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책을 보고 어떠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