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찰의 계단 가운데에서 불국사의 청운·백운교와 연화·칠보교의 아름다움을 따라 갈만한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종교건축물을 대상으로 생각해봐도 불국사의 계단처럼 조형성과 상징성을 철철 넘치도록 표현하고 있는 대상을 찾아보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불국사가 창건된 것이 751년도이니, 불국사 계단의 나이는 1250살이나 된다. 그 시대에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세련된 디자인은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 계단에 그렇게 깊은 의미를 부여한 이는 과연 누구였던가! 청운·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紫霞門)을 지나 석가모니부처님이 상주하시는 불국정토로 들어가게 되고, 연화·칠보교로 오르면 안양문(安養門)을 지나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시는 극락정토로 들어가게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전통사찰의 지정요건을 적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대적 특색을 뚜렷하게 지녀야하고, 한국 고유의 불교·문화·예술 및 건축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특히 필요해야 하며, 한국 문화의 생성과 변화를 고찰할 때 전형적인 모형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통사찰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한국사찰이 지녀야 할 진정성과 완전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고문헌이나 발굴자료를 통해서 살펴보면, 불교전래초기에 지어진 사찰들은 대체로 탑을 중심으로 금당과 강당이 축선 상에 배치되고, 회랑이 중심공간을 위요하는 형식을 가진다. 우리나라 사찰이 다른 나라의 사찰과 다른 것 가운데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역시 석탑과 석
우리나라 사찰은 한마디로 말해서 토종공간이다. 현대사찰의 경우 실내공간도 현대인들의 생활에 편리하도록 꾸밀 수 있지만, 전통사찰의 경우에는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우리네 사찰에서는 골기와를 씌운 지붕과 맨 땅으로 남겨둔 마당, 주변에서 주운 돌로 투박하게 쌓아올린 석축 그리고 화계나 화오에 심어진 목단과 작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찰마다 특화 전략을 수립해서 다른 사찰들과 차별화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사찰주변 산야에 꽃을 심어 특별한 경관을 만든 사찰, 산나물과 약초를 심어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를 만들어 불자들에게 다가가는 등 특화전략도 가지각색이다. 사찰의 특화전략 가운데에서도 아름다운 사찰을 만드는 것은 가장
우리나라 사찰의 이미지는 때에 따라서 청량하기도 하고 그윽하기도 하다. 새벽녘 잠이 깨어 절 마당에 나갔을 때의 쨍한 상쾌감이 청량한 기분이라면, 석양 무렵에 느끼는 편안하고 온화한 기분은 그윽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온 세상이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매화를 필두로 동백,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로 이어지던 봄소식은 화사한 왕벚나무가 꽃을 피우면서 절정에 이르렀고, 이제는 철쭉이 제철을 맞아 꽃을 피운다. 조금 있으면 목단이나 작약이 마당 한가득 탐스러운 꽃을 피울 것이니 사계절 중에서는 이때가 가장 생동감이 있고 희망적인 계절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은 절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절집이 자리한 산자락에도 봄은 찾아와 온갖 꽃들로 가득하며, 절 마당에도 이것저것 많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서 사찰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행사준비며, 사찰안팎 청소는 물론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기 위해 연등도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향, 등, 꽃, 과일, 차, 쌀과 같은 여섯 가지 의미 있는 것들을 부처님 전에 올려 부처님을 의지하고 그 공덕을 찬양하며, 유화선순(柔和善順)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살행을 다짐하는 불교의식을 치르는데, 이것이 곧 육법공양(六法供養)이다. 어렸을 적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가면 마당 가득 걸어놓았던 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머니와 같이 절 마당에 걸어놓은 많은 등 가운데에서 우리 등이 어떤 것인지를 찾았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들고 학교에서 조계사까지 걸었던 기억 또한 생생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은 그 문화재로 인해서 사격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문화재를 제대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문화재라는 것이 영구적으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재료에 따라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부식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보존처리하는 기술이 발달해서 예전과 같은 몹쓸 일이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문화재는 아기 보살피듯 보살펴야 그 생명력을 오래 유지할 수가 있다. 문화재를 원형대로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사찰에서는 문화재를 보존처리하거나 해체·수리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보존처리하거나 해체·수리할 경우에는 가설 덧집을 씌우고 작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렇게 하는
전통사찰은 우리나라 문화재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성지이다. 문화재는 다시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구분하며, 문화재의 가치와 관리주체에 따라서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 그리고 문화재자료로 나눈다.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문화재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원형을 보호하게 된다. 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각을 짓고, 외부에 노출된 마애불이나 비석 등 석조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보호각을 짓는 것 등이 바로 문화재의 원형유지를 위한 방법이 된다. 또한 석탑이나 석등, 노거수(오래된 나무) 등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점적 형태의 문화재는 보호펜스를 둘러서 문화재의 원형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절 마당은 본시 비워둔 공간이었다. 법당이 작아서 치르기 어려운 행사나 외부공간에 적합한 의식은 마당에서 봉행하는 것이 상례였다. 괘불대에 괘불을 걸어놓고 야단법석을 여는 장소가 바로 절 마당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절 마당은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덮여있던 흙 그대로이거나 흙 위에 마사토를 깔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포장방법이었다. 별로 특별한 기술이나 공법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싸리비로 쓸어놓은 마당을 보면 정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요즘 일부 사찰에서는 장식성이나 기능성을 높이고자 마당에 잔디를 까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잔디를 깔아서 마당을 아름답고 정갈하게 관리하려는 마음이야 높이 살만하지만 잔디를 관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잔디는 매우 까다로운 식물재료라
최근에 여러 사찰에서 그 절에서만 볼 수 있는 특화된 매력요소를 도입하여 다른 사찰과 차별화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구절초를 절 주변의 산에 심어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꽃차까지 만들어 마실거리까지 풍성하도록 만든 사찰, 절 주변의 산에 부처님교화공원을 만들면서 철따라 아름다운 꽃을 피도록 하여 이곳을 찾는 불자들에게 꽃보시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사찰, 절 주변의 밭에 연지를 만들어 연꽃의 아름다움과 진한 연향을 선물하는 사찰, 비료를 주지 않은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먹을거리를 제공하여 불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사찰, 절 주변에 찾아오는 철새들의 신비로운 생태를 만날 수 있도록 만든 사찰이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 사찰이 불법승 삼보를 모시고 수행과 기도와 재를 올리는 사찰 고유의
요즘 담뱃값 인상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담뱃값을 올리면 담배를 덜 피우게 될 것이라는 측과 담배를 덜 피우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담뱃값을 올리는 것은 소비자를 볼모로 잡는 좋지 않은 짓이라는 측의 의견이 팽팽하다. 담배가 해로운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각종 암이나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게 만드는 좋지 않은 작용을 한다는 것쯤은 각종 매스컴이나 입소문을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따르면 담배로 인해서 6.5초 간격으로 사람이 사망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담배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이 멋있어 보여 아버지 담배를 몰래 꺼내려다 들켜서 호되게 야단맞았던 기억은 얼핏 낭만적인 추억거리로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때는 담배가 이렇게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이 봄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슬그머니 도망간 자리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남녘에서는 동백이며, 매화며, 산수유, 목련 같은 꽃들이 꽃망울을 열었고 조금 더 지나면 진달래, 철쭉, 개나리,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벚나무도 꽃을 피워 온 세상이 꽃 잔치로 떠들썩할 것이다. 예로부터 사찰에서는 꽃 공양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사찰주변은 물론이거니와 사찰경내에도 꽃이 피는 나무와 초화류들을 많이 심었다. 철따라 피는 꽃을 부처님에게 공양함은 물론 스님들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몇몇 서적을 보면 지난날 사찰에 심었던 나무나 꽃들에 대한 기록이 있어서 흥미롭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화암사(花巖寺) 못가에 창포가 우거져 있고, 섬돌 앞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빔비사라왕이 지어드린 죽림정사와 수닷타장자가 지어드린 기원정사는 부처님이 제자들과 더불어 수행하시고, 설법하신 초기형태의 사찰이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다음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가 중심이 되는 사찰이 지어지고, 불상이 만들어지게 되면 스투파의 중심에 불상을 모시게 된다. 인도의 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삼보를 모신 사찰의 형식이 변화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변형된 스투파를 중심으로 승원이 둘러싸는 형식으로, 중국에서는 파고다라는 또 다른 형식의 탑을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전각이 배치되는 형식을 보이게 된다. 사찰은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이 불법승 삼보를 모신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공통적 속성을 가진다. 그래서 이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