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자나불, 法을 인격화한 법신 남향의 보광전에 동향으로 배치 화엄주불로 867년 조영한 법신불 광배 하단 물고기 유영하는 연지 법의 세 가지 용법 법(法)은 인도어 ‘다르마’의 한문 번역어다. 일본 불교학자 마즈다니 후미오는 〈현대불교 입문〉에서 불교 술어로써 ‘법(法)’은 대략 세 가지 용법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첫째는 ‘제법무아(諸法無我)’와 같은 용법에 쓰이는 우주만유의 존재 그 자체이고, 둘째는 부처님의 출현 여부에 관계없이 존재 자체에 성립하는 법칙성, 셋째는 여래께서 무상정등각을 얻어 중생의 능력에 맞춰 설하신 가르침 등이다. 물론 그 셋은 서로 관계없는 것이 아니다.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과정을 통해 진리법에 도달하는 것이다. 불교 궁극의 법은 상의성(相依性)의 연기법(緣起法)에 이
기하학적인 형태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위적인 의도에 의하여 만들어진 도형들은 색채와 함께 새로운 변화와 이미지를 보여주며 마음을 움직인다. 도형과 색채 통해 이미지 표현 명상 통해 새로운 정신성 관심 “집중해서 작품을 봐주십시오 지금 보이는 게 자신의 마음” 케네스 놀란드(Kenneth Noland, 1924~2010, 미국)는 초기 추상표현주의에서 사용하던 방식들에서 새로운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등장시킨다. 잭슨 폴록, 드 쿠닝 등 초기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주로 표현방식으로 사용했던 행위적인 액션들에서 벗어나 명상적인 방법들을 도입하는 것이다. 미국 추상표현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인 놀란드는 기하하적인 도형과 색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명상을 통하여 새로운 정신
남자, 시부모 봉양 女 몫이라 여겨 일방적 희생 강요… 고부갈등 시작 시부모-아내 ‘내가 만든 인연’ 명심 책임감 갖고 임하면 아내도 변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종손(宗孫)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종손이란 그 집안의 장남으로만 이어 내려오는 남자의 다른 이름이다. 나의 어린 시절만 해도 이런 종손의 위세는 대단했다. 지금이야 명절에 사촌들 얼굴 보기도 어렵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형제 많은 가족의 종손 집에는 차례 지내러 오는 식구들의 수가 40~50명씩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문화가 존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부모 봉양의 전통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장남이 모시고 살며, 집안의 제사를
부부싸움, 단편적 이유 때문 아냐 ‘나와 똑같아야 해’란 생각 탓 남녀 본질적 차이도 한 이유 ‘이것만은 꼭’ 실천과제 지킬 것 예전에 어머니는 그 시절 어머니들이 대부분 그러셨듯이 아버지 귀가가 늦는 날이면 따뜻한 밥 한 그릇 떠서 아랫목에 묻어두시곤 했다. 아마 그 시절을 살았던 분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아버지들은 어떨까? 소위 ‘삼식이’란 단어가 이제는 보통명사화 되고 있듯이 집에서 밥 한 끼 먹기 녹록치 않다. 물론 이는 세태의 영향이 크다. 부부 맞벌이에 양육의 어려움까지 끊임없이 증가하는 이 시대에 아버지가 늦은 저녁 밥상은 고사하고, 같이 출근하는 아내에게 아침을 바라는 호사를 누린다는 것은 큰 욕심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집에서 아
자신의 젊은 시절 실수 자녀는 범하지 않길 바라며 솔직한 대화 하고 싶지만 잔소리로 그치는 경우 많아 자녀 말, 온 마음으로 들을 것? “아빠한테 원하는 거 3가지만 얘기해봐.” 대학교에 갓 입학한 딸에게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다. “음, 전화하지 말 것, 문자하지 말 것, 언제 들어 오냐고 물어보지 말 것.” “….” 한마음아버지마당에서는 첫 주를 마치면 아버지들에게 아내와 자녀가 원하는 것 세 가지를 알아오라는 과제를 준다. 단 조건이 있다. 아내와 자녀가 자신에게 원할 것이라 생각되는 세 가지를 본인이 먼저 적고, 그 다음에 물어보도록 했다. 전 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의 아버지세대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가치이다. 자녀들도 당연히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 되는 법’ 배운 적 없어 가족과 사회 요구 앞에서 ‘갈팡질팡’ 점점 더 설 곳 없는 존재 되어가 ‘아버지 행복법’ 연구 필요성 느껴 얼마 전 종영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넉넉지 않은 가정서 언니와 생일이 같아 한 개의 케이크에 촛불만 새로 켜서 생일축가를 부르는 가족. 그리고 그게 싫어 화를 내고 울면서 뛰쳐나간 둘째 딸을 보며, 아빠는 새로 장만한 생일케이크를 손에 들고 딸을 찾아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안해, 아빠가 아버지 역할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우리 딸이 이 아빠를 이해해줘.” 단순히 드라마로 흘려듣기에 이 대사는 이 세상 아버지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필자를 포함한 한국 아버지들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내 사랑은 지나고 보면 늘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상대에게 끌려 애틋하고 그립고 매일 보고 싶어지면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고, 그 사랑이 영원하길 성급하게 꿈꿨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언제나 나 홀로 낯선 곳에서 찬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얼굴과 가슴에 몰아친 흙바람도 사랑을 위한 시련이라 여기며 미련하게 견디며 기다렸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온몸이 모래에 파묻혀 더 나아가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난 억울하지 않다. 결실을 맺은 사랑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혼자만 영원한 사랑이라 믿고 애태웠어도, 사랑은 온전히 아름답다. ‘사랑’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설렌다.
외나무다리는 깨달음 의미 강물의 시체는 육신 초탈 목숨 건 도전이 곧 수행 부처님 땅에 도달해서 만나는 갈림길…. 낡은 통나무로 된 아득한 외나무다리, 밑바닥 없는 배. 이것들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그렇게 고생스럽게 도달한 현장법사 일행을 끝까지 괴롭히기 위한 시험? 그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시험이라면 다시 요괴를 등장시킨다던가 하겠지요. 그렇다면 이 갈림길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아득한 외나무다리는 깨달음에 이르는 마지막 외길을 이야기하는 것이겠네요. 수만 갈래의 길이 있지만 결국 마지막은 외길일 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수천 수만 가지 방편을 통해 깨달음을 지향하지만 결국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향한 외길 하나뿐이라는 것이지요. 수만 갈래의 길, 그 길이 겉으로는
1620~1640년대 불상 제작 주도 조각승 청헌 스님과 사형사제 현진 스님과 청헌 스님과 불상 제작 파주 보광사 봉안 불상에 흔적 남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번의 전쟁이 끝나고 사찰의 중창과 중수로 명산대찰(名山大刹)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후, 1640년대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는 17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조각승인 현진 스님, 수연(守衍) 스님, 인균 스님 등에게 불교조각을 배운 스님들이 수화승이 되어 불상 제작을 주도하게 된다. 1630~1650년대 전국적으로 사찰의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100여명의 조각승들이 불상을 만든다. 대형 불상을 제작할 시에는 공동 작업이 행해진다. 이 가운데 근래 수화승으로 제작한 불상이 발견된 조각승 영색 스님이
사찰에 현존하는 목각탱은 8점 문경, 예천 등 경북북부에 중점분포 삼존불상과 일체형의 후불 목각탱 맨 아래 하단부는 구품연지의 세계 목각탱, 후불탱화의 조각화 일반적으로 대웅보전 석가모니삼존불 후불벽에는 영산회상도를,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후불벽에는 극락회상도를 후불탱화로 봉안한다. 후불탱화의 재질은 삼베 천이거나 벽화의 경우 마감한 흙벽 자체가 바탕이 된다. 불전건물의 본존불 뒤에 후불탱화를 배치하는 작례는 한국 특유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후불탱화 대부분은 천이나 흙벽에 조성한 평면회화다. 그런데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전란 이후 17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문경, 예천, 상주 일원을 중심으로 대단히 창의적인 후불탱의 양식이 시도되어 주목을 끈다. 평면회화 양식의 후불탱을 입체적 목조조각으로 표현한 것
정몽주 문하서 성리학 공부 조선 전기 나라 기반 다져 〈척불소〉 상소 올렸지만 불교 교유는 계속 이어가? 조선 전기의 문인 하연(河演, 1376~ 1453)은 조선이 건국된 후 성리학을 토대로 나라의 기반을 다지는 데 공헌했다. 그의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 또는 신희옹(新稀翁)이다. 어린 시절부터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과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19)에게 뛰어난 필법과 재주를 인정받았으며 대학자 정몽주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고려의 은택을 입었는데 조선이 건국되자 부친 하자종(河自宗, ?~1433)은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들 하연이 식년문과에 급제, 봉상시 녹사에 중용되자 마음을 바꾸어 조정에 나아
현실은 사실일까? 진실일까? 현실을 대하는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인식이 되며 동일한 현실 속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진실한 인식을 하는 방법들을 찾아 나선 작가가 있다. 선사상 접하며 인식의 확장 현실의 표면 아닌 본질 추구 추상미술로써 현실을 표현해 ‘卽心是佛’의 메시지 읽어야 블링키 팔라모(Blinky Palermo, 1943~1977, 독일)는 미니멀적 추상미술의 선두주자에 들어가는 작가이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며 세상 속에 묻혀있던 그의 작품들이 1980년대 이후 많은 찬사를 받으며 다시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요셉 보이스의 제자이며 몬드리안의 미학적 개념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는 예술의 정신성에 대하여 많은 고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