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것도 자기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아침저녁 자고 깨는 것도 실감 나지만 우리가 흩어졌다가 모이는 것도 실감 나죠. 허허허…. 이렇게 흩어졌다가 모이는 것도 일종의…, 우주 자체도 그렇게 흩어졌다가 모이고, 모였다 흩어지고 하는 작용을 쉴 사이 없이 하거든요. 먹고살기 위해서, 가정생활 속에서 내 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 또는 내가 살고 있는 그 자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생각해 보지도 못하면서 살아나가는 수가 많습니다. 자기 죽을 날도 생각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죽을 날은 생각지 않
어떻게 참선을 해 나가야 하는지요질문 이 마음 도리를 알려면 어떻게 참선을 해 나가야 하는지요답변 우리가 콩씨를 심어서 콩이 화해서 없어지고 콩 싹으로 화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모두들 화두를 가지고 그 과거의 콩씨를 찾는다면 어디 가 찾아요? 자기가, 그 콩씨가 싹이 돼 버렸는데 어디 가 콩씨를 찾느냐고요. 싹이 있는 데 콩이 또 달리는 법이지 어디서 콩을 찾아요? 그거는 백 년, 천 년, 만 년이 가도 못 찾아요. 자기가 싹으로 돼 있으니까. 그 콩이 화해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그 콩 싹이 화한 거를 알고 무조건 그냥 콩씨를 그냥
(지난 호에 이어서)달마 대사가 양 무제더러 너는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한 말과 그 뜻을 아시죠? 그리고 또 유마힐 거사가 내 중생부터 나아야 내 병이 낫겠다고 한 말, 그거는 내면의 여러분 생명들이 다 나아야, 병이 들지 않고 파워를 일으키지 않아야 여러분이 건강하고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건강하며 화목하다 이겁니다. 자식들도 그렇고, 나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욕하고 때리고 그러지 말고, 또 어떠한 일이 생기거나 사회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거론이 된다 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고 그렇게 하지 말고 내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잘못된 것
부산의 대덕 스님 여러분, 그리고 시장님과 더불어 신도님들과 한자리를 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말이 서툴러서 실례가 되더라도 좀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시대는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중용을 하고 돌아가야만이 자유를 느끼며 살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물질계의 50%만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걸림이 많은지 그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의 진의를 완전히 터득해서 알아야만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잘 가르친다는 건 아닙니다. 나는 심
참자기를 발견하려면질문: 인간으로 태어나서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되겠는데 참자기를 발견하는 지름길은 무엇인지요.답변: 모든 걸 주인공에 맡기고 살아라. 맡겨 놔라. “맡기고 살아라.” 이러면 여러분이 더 실감이 날 거 같아서 맡기라고 그랬습니다. 한군데다 맡겨라. 믿고 맡겨라. 믿지 못하면 맡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맡겨라.” 이렇게 했죠. 무조건 맡김으로써 그것이 맡기게 되면 어디로 통과가 되느냐 하면 벌써 시각부터 통과가 되고 청각이나 촉각, 후각이 발로가 돼요. 그래 감각이 아주 영리하게 이 안의 심안이 밝아지죠.
(지난 호에 이어서)질문자1(남) 스님, 감사합니다. 아까 처음 질문 올린 대로, 그런 정신병이라든지 암이라든지 이런 난치 불치병 환자들은 큰스님 같은 대 선지식을 만나서 그 고리를 풀든지, 아니면 본인이 수행을 열심히 해서 그거를 녹이지 않으면, 한 생을 마감하고도 다음 생에 또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큰스님 그거야 그렇죠. 그런데 길을 가다가 댁 같은 사람만 만나도 고리가 풀어질 거야, 아마. 하하하….알든 모르든 자기 몸뚱이를 이끌어 가는 자기 근본을 진짜로 믿고어디를 가든, 어떠한 일을 하든 모든
어느 땐가는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알게 되겠죠.질문자1(남) 스님께서 제게 내려 주신 불명이 용방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의 지혜 그릇은 간장 종지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간장 종지 자체도 고정돼 있지 않기에 언젠가는 용방이 될 것을 믿으며 몇 가지 질문을 올립니다.안팎이 공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믿고, 조금씩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여전히 고정된 나가 있고 고정된 너가 있어 괴로울 때도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팎이 공한 이치를 뼛속 깊이 체득할 수 있는지 먼저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우리
우리는 왜 태어나 고통받으며 사나질문 태초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편했을 텐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인간까지 와서 수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지요.답변 생각을 가만히 해 보세요. 바람이 있고 흙먼지가 있고 물이 있고 이건 스스로 자생으로서 그냥 생긴 거죠. 이건 자연의 원리면서 자연의 이치예요. 그렇게 생겨서 우리가 모아지고 모아지고 하다 보니깐 원기가 생긴 거죠. 그래서 생명체가 생기는 거죠. 그렇게 이날까지 진화돼서 이렇게 인간도 제일 나중에 됐다 합니다. 그런데 제일 나중에 돼서 인간이 살다 보니깐, 진화도 되고 문
(지난 호에 이어서)옛날에, 하다못해 콩 한 알갱이 이렇게 따서…. 다 거둬 가고 줄기에 콩이 하나든지 둘이든지 붙어 있어요, 다 베어 가고 나머지가요. 고춧잎과 고추를 다 따 간 뒤에도 조그만 고추들이 붙어 있죠. 이슬 맞기 전에도 그렇고 이슬 맞고도 그렇고. 그거를 무심코 따서 입에 넣었다가 이 공부에 대해서, 지금 내가 말했던 이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죠나는 없구나.내가 없으니 어떠한 업보도 애고도아무것도 붙을 자리가 없구나.‘너, 누구를 먹여 살리려고 그러느냐? 너를 먹여 살리려고 그러느냐, 네 육 속에 있는 생명들을 살
여러분께서 한자리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늦도록 기다려 주시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다 바쁘신 줄로 알고 있는데, 그 바쁜 것을 다 제치고 이렇게 한자리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여러분 자체가 이 세상에 나지 않았다면어디 상대가 있고 세상이 있고우주가 있겠습니까?참, 마음이라는 것이 상당히 요상합니다. 색깔도, 보이지도 않는 것을, 마음 내기 이전을 말해서 자기 불성이라고 하죠. 영원한 근본이라고도 하고 뿌리라고도 하죠. 그런데 그 마음을 냈다 하면 법신(法身)이라고 하고, 그 마음에 따라서 육체가 움죽거
칠석과 백중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요질문 : 불교에서는 해마다 칠석, 특히 백중이 큰 행사로 치러지는데 칠석과 백중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요.답변 : 우리가 칠석날은 견우와 직녀를 많이 상상하시죠. 옛날이야기든 뭐든 이치가 담겨 있지 않는 말은 없을 겁니다. 옛말에도 까치는 산 사람들을 위해서 인연을 이어 주고, 까마귀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전달을 해 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알아 둘 것은 전체가 인연 아닌 것이 없지만 칠석이라고 하는 자체가 우리가 태어남을 뜻합니다. 모두가 태어나는 길을 말합니다.우리가 탄생하는 날을 기
(지난 호에 이어서)전에 그런 얘기 한 예가 있어요. “지구는 지금 그림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동그랗지가 않다.” 이런 얘기 한 예가 있거든요. 지구는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이렇게 생겼다 그러니까 “아닙니다.” 이겁니다. “그래, 그래!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은지도 모르지.” 하고선 그냥 대답을 해 두었습니다마는 그렇게 정확하게 봐도 보는 것이 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듣는 것도 그렇지. 전체를 다 듣는다 하더라도…, 우린 묘한 게 있죠. 이 듣는 것도요, 물속이나 허공이나 이 땅속이나 전부 법망이 가설이 돼
큰스님 일방적인 설법보다는 우리 서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토론하는 입장으로 해 보시는 게 어때요?질문자1(남) 제가 한 말씀 여쭤 보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원래 낚시꾼이었거든요. 얼마 전에 제가 낚시를 갔습니다. 향어 낚시인데 좀 큰 거였거든요. 두 마리를 잡았는데 도로 놔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놔준 것이 잘한 것인지, 놔준 게 꼭 잘했다고 볼 수만은 없더란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큰스님 사람은 어디까지나 그때의 용도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주어지는 대로 자기 그 지혜로운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
모든 업을 녹이고 자성을 발견하려면질문 모든 업을 녹이고 자성을 발견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좀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요.답변 부처님께서는 “고, 집, 멸, 도” 이랬습니다. 고덩어리. 우리 인간이 살아나가는데 왜 ‘고’ 라고 그랬을까요? 그러면 악업 선업이 거기 포함해서 여러분 육신의 세포에, 이것이 인간에게도 혹성과 같아서, 이 육신으로 봐서는 이게 법망입니다. 세균이 나갈 때도 들어올 때도 이게 적응을 할 수 있는 세포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모두가 그 악업 선업이, 예를 들어서 부모의 인연이든
(지난 호에 이어서)불(佛)은 뭐냐. 불바퀴는 왜 불바퀴라고 그랬느냐. 그냥 생명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생명이 바로 영원하기 때문에 불바퀴라고 했습니다. 불이라고 한 것은 여러분의 생명의 근본, 즉 말하자면 영원한 생명의 근본, 그걸 불이라고 했다 이겁니다. 본래 자성불은 있는 건데, 자기 자성불에서 모든 거를, 나고 드는 것이 전부 그 능력으로 나오는 건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성불은 믿지 않고 저기 계신 딴 부처님을 믿고선 “부처님, 날 좀 잘되게 해 주시오.” 하는데 그건 기복이지 공덕이 아니야. 공덕이라는 건 무엇 때문에 공덕인
여러분 앞에 내가 잘 안다 모른다를 떠나서 항상 한 도반으로서 말씀드려 온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태어나기에 얼마나 쫓고 쫓기며 왔겠습니까. 마음이 진화되니까 몸도 바뀌어지고 이렇게 돼서 인간까지 왔다는 사실을 여러분 앞에 항상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비디오테이프나 카세트테이프에 아마 그 말이 실려 있으며 또는 회보에도 실려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말하고 금방 딴 말을 할 때 벌써 한마디 한 거는 과거로 돌아가고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구에 매달리고 글자 풀이에 매달린다면 이 공부는 천부당만부당하게 돌아가고
마음 도리 모르고 몸을 벗는다면…질문 우리가 이 마음의 도리를 모르고 몸을 벗는다면 어떻게 될까요?답변 우리가 이 공부를 안 하면 무서운 도리가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그 학으로만 배우고 이렇게 해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그 도리를 모르고, 둘이 아님을 모르고, 둘 아닌 데서 참나라는 것이 있는 거를 모르고, 우주 전체와 내가 더불어 같이 있는 거를 모를 때, 너무나 애석한 것은 우리가 이 도리를 모르고 만약에 이 옷을 벗는다면 식(識)만 있지 분별이 없어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식만 있죠. 그래서 분간을 못합니다. 여러분
오늘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얘기해 봅시다. 지구에 관한 건도 옛부터 활동하고 시각적으로 움죽거리던 장소가 지금 장소와 둘이 아니라는 거, 예전에도 우리가 있었고 지금도 우리가 이렇게 있노라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여러분이 공부를 할 때, 재차 말씀드리지마는 모든 것을 놓는다,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 하는 그것이 방하착(放下着)이라면 첫째, 모든 잡념과 전자에서부터 얻은 그 습성을 다 녹여 버리고 자기의 그 참 생수 맛을 봐서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또 이차적으로 자기를 다시 한번 체험하면서 상대방과 나와 다시
사계절이 있으면서 나날이 화창하게 햇볕만 나는 것도 아니고 구름도 끼고 비도 오고 눈도 오고 춥기도 하고 바람도 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계절을 지낼 때에 우리는 모두 그런 역경을 겪으면서 돌아가야만 하는 인생살이입니다.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설법하는 것도 여러분에 의해서 때에 따라서는 하치 못하게, 때에 따라서는 귀중하게, 때에 따라서는 ‘그 별것도 아닌데….’ 할 수 있으리만큼 이렇게 그대로 말이 나가는 것입니다.망상이 없다면 부처를 이룰 수가 없으니망상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녹이라는 것입니다.한마음으로 돌리라는 것입니다.우리
어떻게 참선 공부를 해 나가야…질문 생활 참선이라는데 일상생활 하면서는 어떻게 참선 공부를 해 나가야 하겠는지요.답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거일동이 참선 아닌 게 없습니다. 지금은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시대에 맞추어서 우리는 참선을, “눈 하나 깜빡거리는 것도 참선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일체를 쉬어라. 놔라. 맡겨라. 물러서지 마라. 그리고 감사해라. 너의 몸뚱이는 네 주인의 시자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 시자는 주인에 의해서 움죽거릴 뿐이니 너는 쉬어야 된다. 너와 더불어 모